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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他山之石’ 일본 CEO들은…
‘他山之石’ 일본 CEO들은…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5.11.02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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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으면 ‘영구퇴출’ 된다

한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거치면서 초토화된 땅 위에서 국민들은 혼란과 가난 속에서 고통 받았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에 급속도로 성장해 오늘날과 같은 풍요를 이뤘다. 1953년 13억 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62년 사이 1115배나 증가해 2014년에는 1조 4495억 달러가 됐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도 67달러에서 2만8739달러로 429배나 급증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정·관·재계의 ‘철의 삼각편대’가 온전히 제 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일본이 경제발전을 이룩할 때 사용했던 방식이다. 과거 일본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산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반면, 한국은 소수의 기업을 선정해 육성했다는 방식만 다를 뿐 메커니즘은 동일했다. 기본적인 성장의 틀이 같으니 저성장시대의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허황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 해리 덴트(Harry Dent)는 일본의 사례와 미국 노동통계청의 자료를 통해 한국은 2018년 저성장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본을 빼놓을 수 없고, 실제로도 약간의 시간차이가 있을 뿐 한국과 일본의 경제발전 추세는 같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진. 해리 덴트)일본의 전후 55년 체제를 뒤흔든 ‘잃어버린 20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일본이 저성장기에 돌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생산가능인구 감소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국이 아직 저성장 초입에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저성장시대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2018년까지라면 적어도 3년의 시간이 남아 있고 제로성장이 예측되는 2020년대 후반 까지는 약 10여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기간 대응만 잘 하면 경제를 다시 활성화 시킬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을 바로 옆에 두고 있다. 일본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성장을 맞이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저성장과 그 대응책을 심도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가 아무리 저성장기에 접어들더라도 성장하는 기업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일본의 기업 중에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잘 연구해 저성장속에서도 성장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린 후 건너지 않는다”

일본은 1955년부터 1990년까지 35년간 역사상 유례없는 고성장기를 구가했다. 1973년 오일쇼크 전까지는 연평균 10%에 가까운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이 와중에 1995년 쇼크가 발생했다. 전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1995년 8717만 명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일본경제의 생산성은 정체됐고 1996년부터는 소매매출액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기민하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들이었지만 늘 그랬듯 이것 또한 ‘지나가는’ 위기로 생각했다. 그것이 ‘저성장시대’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종신고용을 자랑하던 일본의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사업부 개편 및 계열사 축소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본 기업이 지닌 보수성이 위기를 초래했다.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문화가 ‘돌다리도 두드린 후 건너지 않는’ 형태로 변형되면서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들의 신중함은 9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바람에서 뒤처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이 시점에서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신흥시장을 놓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의 대표 기업들은 대부분 국내시장 중심형이거나 최근 들어 해외시장을 급속히 개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자동차나 전자 기업처럼 일찍부터 세계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기업도 많이 있지만 이 또한 대부분 선진국 시장중심이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은 에어컨을 생산하는 다이킨공업이나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유니참 정도밖에 없다.

손 놓고 있었던 ‘주군경영’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 이 정도니 다른 기업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의 리더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경영자가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대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서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시대에 일본 경영자들이 행한 리더십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본 기업의 리더는 전통적으로 ‘주군경영’이었기 때문이다. 에도시대 각 번의 주군처럼 조직의 리더는 존재만 할 뿐 군림을 하지 않는 전통을 이어받았다. 기업에 있어서도 이런 주군처럼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고도 성장기 일본의 전형적인 경영자 모습이었다.
이들은 모든 것을 현장에 위임하고 자신은 회사의 얼굴로서 회사의 경영이념이나 자신의 경영철학을 제시하는 역할만 했다. 이것은 일본 기업의 현장조직이 너무나 강력해 모든 것을 위임해도 잘 돌아갔기 때문이다. 가끔씩 현장에서 의견이 올라오면 이것을 추인하는 선에서 하의상달식(Bottom Up) 형태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일본 사회에서는 기업의 경영이념이나 경영자의 철학이 대단히 중요시되는 특징이 있다. 기업이 고객제일주의나 사업보국, 사회공헌과 같은 경영이념을 갖추고 있을수록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경영자가 회사의 경영이념을 전파하거나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이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에서는 원활하게 돌아갔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생산·영업현장이 잘 돌아가니 경영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저성장시대로 들어서면서 주군과 같은 리더는 위기를 잘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 앞장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을 변화시켜나갈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고도성장이 이어지다보니 기업의 일선 경영자들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기 십상이었고 큰 리스크를 동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려본 적도 없었다. 젊은 시절 현장에서 체득한 능력마저도 오랫동안 경영자로 있으면서 퇴화했다. 이들에게 ‘이제 환경이 변했으니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주문도 먹혀들리 만무했다. 

포터 “‘전략’이 없는 일본 경영”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일본 경영자들의 경영스타일을 ‘전략 없는 경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미국식 경영 전략을 도입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설프게 집중한 기업들은 휘청거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니(SONY)다.
소니는 저성장기에 적자가 누적되는 전자 부문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면서 이익이 나는 금융과 영화, 음악사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자 부문은 소니의 출발점이었고 전체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모태 사업이었다. 이 부문을 가위로 싹둑 자르듯 무분별하게 구조조정하면서 그간 축적해놨던 원천기술과 인력들을 대부분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또, 금융과 영화, 음악 사업에서 이익이 나더라도 각각 몇 천억 원 단위의 작은 이익 밖에 나지 않았다. 이것으로는 글로벌 기업이 된 소니를 지탱할 수도 없었다. 결국 전자 부문 중에 게임과 휴대전화, 이미지 센서와 같이 경쟁력 있는 부문에 다시 투자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상태였다. 
소니가 무너지던 시기, 다른 일본 기업들도 동반 몰락의 길을 걸었다. 파나소닉, 올림푸스, 도쿄전력 등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샤프, 산요, 르네사스, 다이에, 일본항공 등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기업 재생조치를 받았다. 물론 모든 일본 기업들이 이런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후지필름은 재빠르게 전자부품과 의료, 화학산업에 집중해 새롭게 부활했으며, 히타치도 소비재 산업을 버리고 인프라 비즈니스 같은 B2B산업으로 전환해 창업 후 최고의 매출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돌연변이’ 유니클로의 성공 인사이트

저성장에 빠진 일본 기업들 사이에는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이 유행했다. 기업은 과거의 성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다가오는 변화에 적응하면서 나아가야 생존할 수 있다. 과거의 지나친 성공 속에 많은 실패를 거듭한 일본 기업들에 이 사실은 뼈아픈 교훈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이고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의류SPA기업인 ‘유니클로(Uniqlo)’다.

유니클로는 1984년 일본 히로시마에 1호점을 낸 작은 의류 기업에서 출발했다. 일본이 저성장시대를 맞으면서 급속도로 성장했고 지금은 전세계 점포수 2243개, 매출액 1조 3829억 엔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됐고, 창업주 야나이 다다시(66) 회장은 4년간 일본 최고의 갑부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안 유니클로는 일본 기업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 유니클로가 획기적인 가격을 무기로 의류시장의 질서를 파괴해온 데다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으로 몰아가는 주범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의류산업은 도매업을 중심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어패럴 메이커라는 도매 기업이 전문화된 여러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하청에 하청을 주며 제품을 생산했다. 이렇게 생산한 제품은 백화점이나 패션 빌딩, 로드 사이드 점포에서 판매하고 이들은 높은 임대료를 주면서 고객사들에 대면판매 방식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였다.
또, 어패럴 메이커와 하청업체는 반품이 가능해 리스크를 함께 공유했다. 어패럴 메이커는 대단히 세분화해서 판매점들은 각각의 브랜드를 모두 입점 시키거나 여러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매입해 판매했다. 제품과 판매의 다양성은 있었지만 가격이 대단히 높았다.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유니클로는 이것을 파괴하며 시장을 공략해 나갔다. 
우선 유니클로는 베이직 의류에 특화했다. 어떤 연령층이 어떤 겉옷에도 잘 어울리는 의류와 내복에 집중하면서 소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제품의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또,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중국 공장에 대규모로 직접 발주해 생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것도 반품 없이 구매했기 때문에 구매단가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이렇게 생산한 제품을 간선도로변의 직영매장으로 통해 판매했다. 도심이 아니라 임대료가 저렴했고 창고형태로 만들어 건설비를 대폭 절약했다. 유니클로(Uniqlo:Unique Clothing Warehouse)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애초부터 유니클로는 시장 질서를 파괴하면서 혁신을 일으켰다. 
저성장이 절정에 달하던 1998년 유니클로는 대박을 터뜨린다. 보통 일본 점포에서 10만원 하던 후리스(Fleece)자켓을 1만9000원에 판매한 것이다. 모든 점포가 후리스를 구매하기 위한 고객들로 넘쳐났고 이 해에만 1000만장의 후리스를 판매했다. 이 열기는 3년간 계속 됐고 2000년에는 2600만장을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전문 등산복이던 후리스를 얇게 만들어 누구나 편히 입을 수 있게 만든 유니클로는 가격과 기능성은 물론 패션성도 가미해 고객가치와 감성이라는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그날의 성공은 그날 잊어버려라”

야나이 다다시(66) 유니클로 회장은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다. 하지만 그가 졸업 후 선택한 길은 아버지의 작은 양복점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야나이 회장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한다. 조금만 사업이 잘되고 성공에 만족한다면 결국 안정지향적이 되고 실패의 불씨가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회사가 꾸준히 성장하던 2004년 그는 안정성장만을 추구하다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매출은 꾸준히 늘었지만 이익은 감소했다. 2005년 그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2008년 다시 사장으로 복귀해 모든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제2의 창업이라는 주제로 사내구조혁신에 나섰다. 
“성공의 기억은 그날 지워라. 도전 없는 안정은 없다. 안정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쇠퇴한다”는 그의 말처럼 야나이 회장은 도태되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는 과거 일본의 경영자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유니클로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결단의 리더, 고모리 후지필름 사장 

저성장시대에는 기업 경영의 변화뿐만 아니라 경영자의 경영능력도 강화돼야 한다. 기업경영방식의 변화를 조직의 원심력이라 한다면 경영자와 관련된 것은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시대의 일본에서는 과거 전통적인 주군경영자와 전혀 다른 CEO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 중 한명이 바로 후지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76) 사장이다.
일각에서는 고모리 사장을 ‘독재자’로 폄하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모리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사양길로 접어든 아날로그 필름 관련 사업을 신속하게 구조조정하면서 동시에 신규사업을 새롭게 육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경솔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연구개발부문을 모두 뒤져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고, 선택한 액정필름사업에 1조2000억 원을 고감히 투자하면서 ‘집중’했다.
새로운 신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2006년에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필름관련 인력 3분의 1을 정리했다. 약 7000억 원 가량의 원가를 절감하면서 버텼다. 인수합병(M&A)도 적극적으로 실시해 복사기 회사와 프린트회사, 의료기기 회사, 의약품 회사를 사들였다. 
이때 투자한 사업들로 후지필름은 창사 이래 최대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매출액의 45%는 복사기 사업에서 나오고 41%는 전자 재료나 의료기기 산업에서, 13%가 카메라 관련 사업에서 나온다. 과거 주력이었던 사진필름 산업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고모리 사장을 필두로 재빠르게 사업부 전환에 성공한 후지필름과 다르게 과거 경쟁 기업 코닥은 기업소생 절차를 밟고 있다. 고모리 사장은 CEO인 자신을 군사령관과 비교하며 “중요한건 우리가 미래를 걸만한 담력이 있는지 여부다. 결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저성장시대에는 경영자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화형 리더, 스즈키 세븐일레븐 회장

고모리 사장이 결단형 경영자라면 세븐일레븐으로 유명한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스즈키 도시후미(83) 회장은 대화형 경영을 추구한다. 과거 일본의 리더들을 보면 스즈키 회장은 ‘돌연변이’가 분명하다.
스즈키 회장은 일본의 할인점 이토요카도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하는 전무였다. 그때 그는 미국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일본에 도입해 일본 최고의 편의점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미국 세븐일레븐의 본사까지 매입하면서 세계 최고의 편의점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즈키 회장은 저성장시대에는 시장대응력이 빨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조직의 민첩성을 기르기 위해 조직도를 거꾸로 만들었다. 그리고 보니 이를 실천하기 위해 조직구성원과의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 스즈키 회장은 매주 화요일 수천 명의 직원을 본사에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홋카이도(北海道)부터 오키나와(沖繩島)까지 전 영업 담당자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출장비만 연간 수백억 원이 든다.
이 회의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전원이 모여 회사의 주요정보를 공유한 후 회장이 필요한 지시를 내린다. 이 회의에서 특히 중요시 되는 것은 현장에서의 성공과 실패 사례다. 특정지역에서 새로운 상품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나 특정 점주를 잘못 관리함으로써 생겨난 문제까지 세세히 분석해 보고하고 공유한다. 
스즈키 회장은 편의점의 기본 4원칙인 ‘상품 구색, 선도, 청결, 친절’을 강조하고 필요한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린다. 이 회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후부터는 각 멤버들끼리 그룹을 나눠 점포운영 회의, 지구별 회의 등을 열고 서로 대화를 나눌 것을 권장한다. 스즈키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세븐일레븐 정보망보다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의도, 배경, 문맥 등이 함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시가 함께 이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스즈키 회장과 세븐일레븐을 만들었다.

결단·소통 둘 다 잡는 리더 돼야

저성장시대. 민첩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경영자가 신속히 판단하고 결단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심도 깊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은 한국의 리더들에게 특히 요구 되는 사항이다. 
그간 한국의 경영자들은 오너 경영자들이 물러나고 2세나 3세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오너들처럼 과감한 결단력은 있을지 몰라도 현장을 직접 경험한 점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자신의 결정이 현장에 어떻게 전달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등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현장 직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전문경영인들은 소통측면에서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과감히 결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문제들을 한 번에 극복하는 것이 저성장시대 한국 기업의 큰 과제라 할 수 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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