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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24 17:15 (수) 기사제보 구독신청
“우리는 영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입니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5.08.0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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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옥 국가대표선수회 사무총장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새기고,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꿈 꿔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모두가 영웅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들이 뭉쳤다. 올해로 출범 4년 차에 접어든 사단법인 국가대표선수회(www.kantm.co.kr)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을지 양종옥 사무총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가대표’에 모든 것을 걸다!

“스포츠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어요. 그 옛날 어려웠던 시절, 국민 여러분들은 우리 선수들이 맨주먹으로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모습을 보면서 꿈을 키웠죠. IMF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일 때 LPGA무대를 휩쓸며 맨발의 투혼을 펼친 박세리 선수와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의 활약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왔습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우리 국민들은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선수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잖아요. 이런 걸 보면 ‘국가대표’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양종옥 사무총장은 ‘국가대표’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86년 세계 대학유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까지 줄곧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했다.
“국가대표들이 시합에 나갈 때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국민들이 나를 성원해 주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상당히 짙어요. 흔히 엘리트 체육이라고 하잖아요? 온 국민의 성원을 한몸에 받고,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겨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죠. 하지만 그 자리에 서면 그런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죠. 이 작은 나라가 세계 대회 때마다 그토록 깜짝 놀랄만한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을 만나는 다른 선수들은 우리의 정신력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체격도 작고, 타고난 신체적 능력도 뛰어나지 않지만 우리 선수들은 ‘국가대표’라는 단어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곤 한다.

홍차옥 전 탁구 국가대표와 결혼

양 사무총장의 가족은 부인과 아들 모두 스포츠와 관련 있는 체육인 가족이다. 
‘유도의 달인’답게 듬직하고 남성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부인인 홍차옥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를 몹시 아끼는 애처가다운 면모도 지니고 있다. 그녀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여자탁구 복식경기에서 현정화 선수와 짝을 이뤄 중국을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한 주역이다.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제 부인도 국가대표 탁구선수였습니다. 아들은 현재 대학교에서 사회체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고요. 90년대 초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홍차옥 선수를 아시나요? 현정화 선수와 복식 호흡을 맞추기도 했죠. 그 사람이 제 안 사람입니다. 태릉선수촌의 한 모임에서 알게 된 인연에서 국가대표 은퇴 후 부부의 연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경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탁구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홍차옥 선수는 은퇴 후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양 사무총장도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녀가 청소년들에게 스포츠를 넘어선 멘토역할을 수행한 것은 양 사무총장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안 사람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물론 일반 청소년들에게도 스포츠 교실을 통해 탁구를 알려주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탁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사람입니다. 제 부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에요. 우리 주변에 말 못할 사정을 가진 청소년들이 꽤 많거든요. 그 아이들과 단순하게 탁구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활동도 겸하고 있어요. 한번은 집사람이 강의하는 것을 봤는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다들 눈을 크게 뜨고 흥미로워 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준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고, 자극도 받았죠.”

우리는 평생 국가대표

은퇴한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국가대표와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는 양 사무총장의 눈빛은 별처럼 빛났다.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다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예외로 보였다. 이렇게 아이처럼 신나보이던 양 사무총장은 후배들과 관련된 질문에서는 다소 침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저는 참 독특한 케이스죠. 나름 괜찮게 일이 풀린 편이예요. 아무것도 모르던 레미콘 영업에 이어 보험 영업 분야에까지 뛰어들어 지금까지 선방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오직 국가를 위한 헌신과 국민을 위한 봉사만 생각하며 운동만 하다가 처음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어음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정말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국가대표’라는 자부심 하나로요. 비록 시합에 나설 수 없는 은퇴한 국가대표였지만 그 경험들은 제 삶을 오롯이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됐어요. 하지만 저 같은 사례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은퇴 후 방황하곤 하니까요.”
그러면서 양 사무총장은 불현듯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 국가대표 선수들의 스토리를 떠올리기도 했다. 전 국민적인 영웅대접을 받다가 어느새 ‘무명인’이 되어 종적을 감춰버린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 오직 메달을 목표로 비오듯 땀 흘리며 운동에만 매진하던 그 선수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여 그들에게 ‘국가대표’라는 감투를 씌워주고 한 순간의 통쾌함과 짜릿한 승리만 기대하고 만끽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사실 모든 것을 걸고 운동에 전력투구했을 때에는 은퇴만 하면 여기저기서 코치로 오라고 불러주는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은 너무나 순진하고 잘못돼 있었던 거죠. 막상 선수를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더라고요.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난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 왔을까’라는 생각도 했죠.”
스포츠 후배들을 걱정하던 양 사무총장은 잠시 자신의 은퇴시기를 회상했다. 그리고 자신 있는 분야에서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후배들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 대한 졸업 후 쌍용양회 유도팀에서 실업선수 생활을 했었죠. 92년 은퇴 후 지도자로 불러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1년 후 전 소속팀 쌍용양회에서 직장에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레미콘 영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존의 쌍용양회 유도팀에서 현업에 근무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어 7년 동안 영업을 했습니다. 선수에서 지도자가 되는 비율은 8% 남짓이에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를 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죠. 국가대표 선수들은 한 분야에서 거의 국내외 최고의 수준까지 올라가 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인재들입니다. 그들이 지닌 잠재적인 역량을 계속 발휘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죠. 잘 할 수 있는 것을 두고 다른 영역에서 애쓰고 있는 모습들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했고요. 16년째 하고 있는 현재의 보험 영업이 은퇴한 선수들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국가대표연구소’ 설립에 주력

이런 현실을 극복해 보자는 의지를 지닌 이들은 장윤창 회장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를 조직했다. 지난 4년 동안 차근차근 저변을 넓혀온 국가대표선수회가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국가대표연구소’ 설립이다. 양 사무총장은 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연구소 설립이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연구소가 설립되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국가대표였던 사람들을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은퇴 후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한 사람들을 멘토로 초청해 후배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입니다. 또 다른 계획은 ‘Athletic Training(AT)’프로그램입니다. 선수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깨닫게 되거든요. 그 부분을 극대화 하는 방안도 구상중이에요. 현재 AT는 많은 곳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수생활을 하지 않은 비전문가분들이 많더라고요. 이분들에게도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은퇴한 국가대표선수들에게 일자리까지 제공할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양 사무총장은 AT같은 분야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운동을 해온 선수들이기에 운동과 관련 있는 일자리가 가장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한번은 후배 한 명이 찾아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우려 한 적도 있어요.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도와줬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자기는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회사를 그만두더군요. 평생 몸을 쓰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머리를 쓰려니 쫓아가지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인내심이 부족하지도 않고, 적응력도 빠른 친구인데 말이죠. 그런 친구가 장애인 양궁 트레이닝을 담당하게 됐는데 특별하게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일을 척척 잘해내더군요. 운동선수는 역시 운동과 관련된 일을 할 때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은퇴는 후반전 하프타임의 기점

양 사무총장은 국가대표선수회의 일원이기 전에 소위 잘 나가는 라이프플래너(LP)다. 그는 현재 푸르덴셜 생명보험의 이그제큐티브 라이프플래너(Executive life planner)로, 13년 연속 MDRT(상위 1% 고소득 보험설계사)를 차지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그가 국가대표선수회 사무총장직을 마다않는 이유는 자신의 신념과 꿈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연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으로 국민 여러분께 받은 사랑과 성원을 모두 되돌려 드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여러분에게 받은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는 건 은퇴 후에도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에 마침 국가대표선수회 사무총장직 제의를 받았고, 무언가 바꿔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무총장직을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무작정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단체가 명멸을 거듭하는 현실에 갈등하던 그를 움직인 것은 신념이었다.
“물론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단체들이 생겨나지만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꿈꿔왔던 것들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또, 그는 체육계의 미래를 위해 국가대표선수회에서 자신의 ‘인생의 후반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가대표로서 받은 국민들의 사랑을 은퇴 후 AT프로그램이나 다른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선한영향력을 미치며,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는 멘토가 되며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영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건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아봤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해봤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그 사랑을 모두 되돌려 드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동경기에서처럼 은퇴 후의 삶에도 하프타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 하프타임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후반전을 준비하는 상태죠. 은퇴라는 것을 하프타임의 기점이라고 본다면, 은퇴 후인 후반전에도 국민 여러분과 기업, 국가,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 하프타임 플랜(Halftime plan)을 구상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양 사무총장은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찬 ‘영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였다. 가족, 후배들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되고자 하는 그의 눈에서 의욕이 넘쳤다. 국가대표선수회와 그가 일구어 나갈 또 한 번의 값진 ‘메달’을 기대해 본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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