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R
    9℃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H
    9℃
    미세먼지
  • 부산
    H
    10℃
    미세먼지
  • 강원
    H
    8℃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R
    10℃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H
    10℃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사람이 사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 없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 없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5.06.01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l Pepe’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의 어록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나에게 가난한 자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단순하게 살 뿐이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 없다”
“가방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라. 그래서 물질이 네 자유를 탐하지 못하게 하라”
“중독 중에 좋은 게 있다면 그건 오직 사랑 뿐이다. 나머지는 다 잊어버려라”
“권력을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 그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를 에워싼 사람들 때문에”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경영했던 작은 농장은 도산했고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국가에서 필수적으로 지원하는 초등·중등교육과정을 간신히 수료한 그는 1960년대 도시게릴라 조직인 투파마로스(Tupamaros)에서 활동하며 20대를 보냈다. 그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다가 총 4차례 체포당했고 6곳의 총상을 입기도 했다. 1971년 투옥돼 한차례 탈옥했으나 곧바로 붙잡혀 재수감됐으며 14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50세가 되던 해인 1985년 석방됐다. 1989년 정당을 조직,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해 하원·상원의원에 연이어 당선되는 쾌거를 일으켰다. 이윽고 엘 페페(El Pepe)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국민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2010년 우루과이 제 4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화같이 파란만장한 이 삶의 주인공은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79)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다.

박흥순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정계 스캔들 때문일까? 지난 3월 퇴임한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BC 등 주요 외신들도 그의 퇴장에 주목했다. 그가 대통령직을 내려놓던 날 BBC는 “가장 이상적이고 정직했던 대통령이 떠난다”며, “이 ‘이상한’ 지도자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정치인이란 원래 소박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보도했다. 남미의 언론 텔레수르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 임기를 마쳤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자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가 지닌 리더십의 원천은 무엇일까?

소박·검소…눈높이 맞춰 대화

남미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좌파정부로 평가받는 우루과이는 1인당 GDP가 1만6천332달러(2014년 기준)로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꼽힌다. 이런 국가에서 제일가는 권력을 손에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2010년 3월 대통령 취임 시 1천800달러(한화 약 195만 원)의 재산을 신고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이런 생활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대통령 직에서 물러날 당시 그의 재산액은 부인의 농가 절반과 트랙터 두 대를 더해 총 32만2천 달러(한화 약 3억5천만 원)였다.
우루과이 대통령의 월급은 약 1천300만 원 선. 그러나 재임 기간 중 무히카 전 대통령은 이중 90%를 사회에 환원한 후 매월 130만원을 가지고 생활했다. 약 55만 달러를 자신의 정당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와 사회에 기증한 무히카 전 대통령은 그 이유에 대해 “현 정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월급을 보태서라도 서민 주택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려는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무히카 대통령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면서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평소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기회”라고 말하곤 했는데, 대통령이 된 후 이런 평소의 지론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대통령궁을 노숙자쉼터로…강한 추진력으로 경제 위기 극복

추진력도 그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천 중 하나다. 추진력은 그 방향이 어긋날 경우 독선으로 보일 수 있는 민감한 요소다. 하지만 무히카 전 대통령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일례로 한 매체에서 무히카 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시행했는데 택시기사 한 사람만이 反무히카 성향을 보였을 뿐 대다수가 그의 정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히카 전 대통령의 추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대통령궁 개방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취임 직후 직원 42명이 관리하던 대통령궁을 노숙자쉼터로 개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어 휴양도시의 해변에 있던 대통령 별장은 매각해 버렸다. 대통령궁을 내어준 그는 수도 몬테비데오 인근 교외에 위치한 허름한 농가에서 생활했다. 

25년 된 낡은 이 집은 거실과 방 부엌이 1개씩 밖에 없어 대통령의 자택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으로 경호원도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찰관 두 명이 전부였다. 이런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렬하게 그를 지지했다. 2010년 대통령 취임 시 52%였던 지지율은 퇴임을 눈앞에 두고 65%까지 증가했다. 그는 검소하면서 소박한 이미지로 인기몰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 국민을 비롯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여지없이 추진했다. 

“발전이 ‘행복’을 저해해선 안 된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그 추진력은 빛을 발했다. 주말에는 직접 농사를 짓고, 태풍이 오면 이웃 주민들의 집을 고쳐주기 위해 뛰어다니면서도 우루과이의 경제성장은 10년간 연평균 5.7%를 달성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6%가 늘었고, 40%에 달하던 빈곤율은 13%대로 떨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지속됐음에도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는 상대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대통령 취임이전부터 부의 불평등 문제를 외면하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부의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2012년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리우+20)’에서 “발전이 행복을 저해해선 안된다”면서, “공생공존을 위해 현 사회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구 350여만 명의 소국 우루과이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10년 사이 경제성장을 연평균 5.5%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분배 정책 덕분이었다”며, 이는 노·사가 함께 논쟁하고 결정한 것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는 “재계는 이윤 증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결국 정부가 개입해 노동자들에게 소득이 많이 가게 할 수밖에 없고, 가난한 사람이 줄어들면 기업들의 장사도 더 잘 될 것”이라며 자신의 경제정책을 설명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구촌이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를 통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이 궁극적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정책을 펼친 그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귀 기울이고 섬기는 ‘하인 리더십’ 실천

서번트 리더십은 1970년 미국의 학자 로버트 그린리프가 처음 주장한 이론으로 ‘다른 사람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하인이 결국은 모두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서번트 리더십은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는 진정한 리더십이다. 
실제로 무히카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행한 정책을 살펴보면 ‘친서민·인류행복’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옛날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장수 오기(吳起)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그 무릎을 굽혀 일반 대중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것도 주변의 이웃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평생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내 목표는 우루과이에서 불공정한 사회현실을 다소나마 바로잡아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적 사고방식을 남겨두고 떠나려는 것입니다.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승리가 가까운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지상낙원을 이룩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공익이 우선적인 것이 되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은 사라져 버리겠죠. 그러나 내 일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 나간다면 내 삶은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만인의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돈을 갖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죠. 왜냐하면 국민들이 뽑은 것이니까요. 대통령은 실수할 수 있지만 절대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라며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의 성원에 훌륭한 정치로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가의 리더였지만 생계를 위해 국화를 재배하고, 일반 병원에서 진료를 위해 차례를 기다리며, 변기뚜껑을 사기 위해 시장을 활보하던 대통령. 국민과 눈높이를 같이 하는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우리나라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것같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