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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발 바통터치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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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이트코리아
  • 승인 2015.03.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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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속도 내는 ‘3세 경영’

재계의 경영승계 작업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3, 4세들의 약진이 눈에 두드러진다. 삼성과 현대차, 신세계 등 주요 그룹은 이미 3세들에게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기업경영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3세 경영의 현주소를 진단해 봤다. 

미국에서 가족소유 기업이 3세대 이상 살아남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미국의 프라이빗 뱅킹 업체 US Trust가 2008년 기업 가치가 미화 200만 달러를 초과하는 기업 242곳을 조사한 결과이다. 10개 기업 중 8개 이상의 기업이 3대를 넘지 못하고 사라지는 셈이다. 가족 소유 기업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는 리서치 업체 FF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 소유 기업이 4세대까지 가면 살아남는 비율은 고작 4%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 대상이 된 가족기업이란 한 일가족이 회사의 최대 주주인 기업을 말한다. 창업주의 3세가 경영주이거나 전문 경영인을 고용한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국내의 경우, 사실상 거의 모든 기업에서 소유주는 곧 경영주이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을 아울렀을 때의 생존율이 15%라면 오너기업의 3세대 이상 생존율은 얼마나 될까?
국내 대기업에서도 창업주의 3세들이 속속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그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움직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재계 역사가 60년이 넘어가면서 기업의 경영진이 2세에서 3세로의 세대교체 시점에 들어선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은 이미 전면에 등장했으며, 한화의 김동관 실장, 금호아시아나의 박세창 부장 등 젊은 30대들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3대 이상 살아남은 가족 소유 해외기업 대다수는 오너와 경영을 분리하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방식은 1932년 벌리와 민스가 제창한 이래 미국식 기업경영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다.

 소유-경영 분리 가능성은 ‘희박’

경제학자들은 전문경영인 고용의 장점으로 다른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 인센티브 제도를 통한 이윤 극대화의 추구, 기업문화 및 조직의 혁신에 유리한 포지션, 투명한 지배 구조 등을 꼽는다. 미국의 비공개 기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한 해 매출이 1340억 달러에 달한다는 카길, M&M초콜릿으로 친숙한 마스, 포춘 500 선정 2007년 매출 기준 세계 최대 기업의 위용을 뽐내는 월마트 등은 모두 창업주 일가가 최대 주주이지만, CEO를 따로 고용해 경영을 일임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포르쉐 역시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가족 싸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가족 구성원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기로 합의, 1970년 이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물론 창업주의 3세가 경영에 직접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들도 있다. 미국의 언론 재벌 콕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은 창업주의 손자 제임스 C. 케네디이다. 1988년 그가 CEO로 취임한 이래 콕스 엔터프라이즈의 수익은 18억 달러에서 147억 달러로 급등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에는 포르쉐와 폴크스바겐의 창시자 포르쉐 박사의 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있다. 현재 감독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1993년 파산 직전의 폴크스바겐을 극적으로 회생시킨 주역이며, 2012년에는 포르쉐와의 M&A 전쟁에서 승리하여 포르쉐를 폴크스바겐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전적을 올렸다.
그러나 케네디와 피에히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오너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케네디는 1972년 콕스 엔터프라이즈에 입사해 리포터, 광고 세일즈, 카피 에디터 등의 분야를 전전하며 실무 경험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피에히 역시 폴크스바겐의 회장이기 이전에 이름난 엔지니어였다. 그가 포르쉐,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등을 거치면서 아우디 콰트로, 부가티 베이론 등의 명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이 이들을 전문 경영인으로 만들었고, 실무를 통한 경영 수업이 이들이 거대 기업의 총수로서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는 설명이다.

 경영능력 검증 잇달아

국내 기업들에서 경영과 소유의 분리를 통한 승계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이는 ‘과도기적 선택’에 불과하다. 이는 재산뿐만 아니라 경영권으로 대표되는 권력도 함께 물려주고자 하는 한국적 가부장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는 미국과는 풍토가 다르기 때문에, 국내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오너 경영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오너 경영의 장점으로 신속한 의사결정, 높은 책임감, 그리고 강력한 조직 문화가 형성 가능한 점 등을 제시한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년간 공기업을 제외한 30대 민간 기업집단을 조사한 결과, 오너그룹의 매출액 증가율은 55.8%, 전문경영인 그룹의 매출액 증가율은 34.5%를 나타냈다. 적절한 경영능력을 갖춘 리더를 만났을 경우 오너 그룹이 예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수치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가 3세 경영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오너 경영의 장점 중 하나인 강력한 조직 문화가 3세 경영 승계 과정에서 오히려 뿌리째 흔들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다수의 3세 경영인들이 경영수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자사에 입사해 경험을 쌓는다. 201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임원급으로 승진하는 데에는 평균적으로 3.8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대기업 공채로 입사한 일반 신입사원은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19.9년이 소요된다는 재벌닷컴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취업 및 인사 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직장인 49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73.4%가 이런 3, 4세 경영인의 이른 승진에 대해 ‘비정상적인 현상이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응답했다. ‘일반 사원들에게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줄 수 있어서(48.4%)’라는 이유에서였다. 3, 4세 경영인의 이른 승진은 오너 경영의 장점인 조직 문화를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너 경영 그 자체에 대한 우려의 시각 역시 존재한다. 경영학자들은 오너 경영의 단점으로 독단적인 의사 결정 방식, 오너의 선호에 따라 기업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 기업 문화 및 조직 혁신이 쉽지 않은 점 등을 언급한다. 이런 단점은 3, 4세 경영인들이 임원을 거쳐 총수 자리에 오르기 이전의 기간이 매우 짧아 실무적 경영 수업이 부족하다는 부분과 맞물려 불안감을 자아낸다. 대기업의 총수가 독단적으로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경우의 손실은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3세 경영 시대를 맞이한 대기업들이 15% 생존율의 벽을 뛰어넘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오너 경영 체제의 장점을 살리기조차 힘들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 길만이 ‘세습경영’이라는 비판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인물들이다.

워커홀릭 정의선 부회장 ‘靜中動’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경영능력과 관련해 다른 재벌 3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평가가 좋은 편이다. 정 부회장은 주변에서 경영승계 얘기가 나오면 “아버지가 건재하시는데 왜 그런 말이 나오느냐”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아침형 CEO’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워커홀릭인 것은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빼닮았다.
정 부회장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새로운 슬로건 ‘모던 프리미엄’을 내걸던 2011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신형 그랜저 발표 행사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언론 노출을 극히 자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신형 제네시스 발표장에도 참석은 했지만 연단에 올라가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올해에도 계속 되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고 지난 2월 북미 출장을 다녀온 것이 외부에 노출된 전부다. 다보스포럼은 9년째 참석해오던 일정이고, 북미 출장은 현지공장 점검과 판매독려를 위해 긴급히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의 이런 조용한 행보는 오히려 경영 승계를 앞두고 ‘정중동’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영승계 구축에 따른 외부 저항이나 마찰 등을 고려해 가급적 대외노출을 자제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정몽구 회장이 앞장서 일들을 처리하는 모양새가 더욱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신형 제네시스 발표, 현대제철 산재 등 굵직한 현안들은 정 회장이 직접 나서서 처리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 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에서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과 행보도 빼놓지 않았다. 정 부회장을 위한 ‘정 회장의 길 닦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 부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에 과장으로 입사했으나 1년 만에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MBA 학위 취득 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002년까지 국내영업본부 영업담당 겸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 상무를 맡았다. 2002년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전무로 승진했고 2003년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겸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05년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는데, ‘디자인 경영’을 통해 취임 2년 만에 기아차를 흑자 전환시켰다. 정 부회장이 광폭 행보를 보여주던 때였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정 부회장은 2009년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기아차 경영의 성과를 기반으로 현대기아차 그룹의 얼굴로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에게도 허물이 있다. 바로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된 뒤 계열사들이 물류관련 일감을 몰아주면서 급성장했다. 2004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안정적 매출 구조 덕분에 주가가 급등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와 편법 자산증여 실태를 조사하고 공개했는데, 정 부회장도 이름이 올랐다.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최초로 출자한 금액이 20억원 수준이었지만 2004년 상장된 이후 보유 주식가치가 약 2조원으로 불어났다. 정몽구 회장의 재산이 정 부회장에게 간접적으로 이전됐다는 비난을 받았다.
현대글로비스는 2006년 현대기아차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또다시 관심을 받게 된다. 당시 검찰은 내부제보자 진술을 토대로 현대글로비스 본사를 압수수색했는데 수십억 원의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가 들어 있는 금고가 발견됐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도 비자금 조성과 편법 증여에 관한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정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현대기아차그룹의 정 회장 지분을 물려받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자금줄로 여전히 현대글로비스가 꼽힌다. 정 부회장도 정당하지 못한 상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세금 문제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선두에 선 정용진 부회장…明暗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이미 ‘오너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지분을 완전히 상속받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오너로서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올해 초 신세계그룹의 장기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한 것은 전문경영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너경영체제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뒤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전권을 맡기는 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는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공식 출범할 때부터 전문경영인들이 그룹을 이끌어가게 했다. 이 회장은 오너이지만 조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달랐다. 정 부회장은 1995년 경영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 부회장이 이명희 회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2009년 신세계의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르면서 ‘오너 책임경영’의 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신세계그룹을 이끌었던 구학서 신세계 회장은 당시 정 부회장에게 총괄대표이사를 내주고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초 신세계그룹의 장기투자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2009년 부회장이 된 뒤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의 사실상 오너로서 위상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 부회장은 투자계획 발표를 통해 신세계그룹이 향후 10년 동안 총 31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17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부문별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12조8000억원, 쇼핑센터와 온라인 및 해외 사업 13조8000억원, 기타 브랜드 사업 4조8000억 원이다.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분야인 쇼핑센터와 온라인 및 해외사업은 신세계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설 때부터 진두지휘 해온 사업부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신세계그룹의 경영화두로 책임경영을 내놓았다. 그는 책임경영 선포식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커질 것”이라며 “책임경영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오너로서 책임경영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 부회장은 책임경영 선포식을 연 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은 2011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분할 당시부터 논의해 왔던 것”이라며 “각 계열사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문경영인들이 기존사업을, 정 부회장이 신사업을 맡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궁색해 보인다.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을 때는 빵집 계열사 신세계SVN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또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법원출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는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정 부회장은 등기이사에서 사퇴하면서 올해부터 시행된 등기임원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연봉 5억원 이상 상장사 등기임원의 경우 연봉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 부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 대부분은 등기임원이 아니기 때문에 연봉공개를 하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불화도 정 부회장 체제가 낳은 또 다른 어두운 면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 내부에서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꼽혔던 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과 불화를 겪었다. 결국 허인철 사장은 이마트 사장에서 물러났고 재계는 허 전 사장의 퇴임을 두고 오너경영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전문경영인의 최후라고 봤다. 허 전 사장은 구학서 회장과 최병렬 전 이마트 사장의 뒤를 잇는 신세계그룹의 간판급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는 1986년 삼성물산에 입사했고 1997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겼다. 경리, 총무, 재경 업무 등을 주로 맡아 재무통으로서 능력을 쌓았다. 허 전 사장은 2006년부터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아 하이마트, 전자랜드, 월마트 등을 인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11년 신세계를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으로 쪼갠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2012년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이마트를 이끌게 된다.
허 전 사장이 이마트를 이끈 첫 해인 2013년 이마트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줄지 않았다. 이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연결기준 13조3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6%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7351억 원으로 전년보다 1억 원 늘었다. 반면 경쟁업체인 롯데마트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줄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불똥이 허 전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허 전 사장이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되면서 정 부회장과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허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이마트 등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허 전 사장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난 의원들은 애초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던 정 부회장을 국감장으로 불러냈다. 정 부회장은 증인으로 참석해 “이마트 대표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허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이마트 단독대표에서 영업총괄부문 대표로 밀려났고 결국 사표를 썼다. 전 회장은 결국 신세계그룹이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례로 기록된다. 그 부담도 ‘오너 정용진’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신세계그룹의 오너경영체제는 정 부회장이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을 때 구축되겠지만 구학서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끝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도 있다. 구 회장은 정 부회장의 후견인이기에 앞서 신세계그룹 발전의 1등 공신이다. 그는 신세계그룹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정 부회장은 구 회장의 활약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내 인생의 결정적 계기는 구학서 회장과 만남”이라며 “신세계 성공의 역사는 구 회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정 부회장에게 구 회장은 스승이기도 했다.
이명희 회장에게 경영권 상속을 위해 세금을 제대로 내자고 설득한 것도 구 회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6년 “신세계는 도덕적 기반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깜짝 놀랄 만한 수준으로 세금(상속세)을 낼 준비를 하는 중”이라며 “규모는 약 1조 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에게 “윤리경영을 위해서 경영진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이자”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 회장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정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2007년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상속세로 3500억원 가량을 납부했다. 이 금액은 재계 역사상 최대 상속세로 기록됐다. 구 회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은 구 회장이 신세계의 경영이념으로 내세운 윤리경영이 토대가 됐다. 구 회장은 1999년 신세계 사장에 오르면서 국내 최초로 윤리경영을 선포했다.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는 이런 전문경영인체제의 기반 위에 서있다. 윤리경영의 토대 위에서 상속세를 제대로 냈기 때문에 여느 재벌과 달리 정 부회장이 사실상 오너로 나서도 부정적 인식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여전히 오너경영체제로 이행기에 있다. 그동안 쌓은 윤리경영의 기반 위에서 정 부회장이 내세운 책임경영이 얼마나 실천되느냐가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이다. 물론 정 부회장이 이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정상적으로 낼 것인가 하는 점도 정 부회장 오너경영체제 안착을 결정짓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입지 굳힌 木鷄’ 이재용 부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영국 BBC방송은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면서 “삼성선자는 미국의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생산회사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 회장이 1987년 삼성전자 경영권을 승계한 이래 주가가 130배 이상 상승했다”며 “지난해 삼성그룹 전체의 매출액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부친 이건희 회장에 대한 호평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삼성 인사들은 이 부회장이 23년 동안 핵심사업 관리를 이끌어왔다고 평가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삼성그룹 회장을 잇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꾸준히 삼성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받아왔지만 삼성의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을 내놓은 적은 없다. ‘은둔의 후계자’ 같은 모습이었고, ‘묵언’에 가까운 경영수업을 받는 것처럼 외부에 비쳐졌다. 이 부회장은 2012년 삼성전자 부회장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삼성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심의 시선이 만들어졌다. 그런 만큼 삼성에 이런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개의 기업들은 후계자를 내정하면 그 후계자의 능력을 포장해서라도 알리려 한다. 그래야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03년 이 부회장을 대동하고 스웨덴 발렌베리가문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찾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을 만나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경영권 승계방식을 벤치마킹했다.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재용체제로 전환을 눈앞에 둔 지금 이 부회장에 대해 불안한 시선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삼성은 왜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을까?
이 부회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한마디로 집약하면 이 부회장이 경영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과 비전에 대해 단 한 번도 자기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23년, 상무보로 승진해 임원이 된지 13년이 됐다. 그런데도 경영능력은 고사하고 이 부회장이 삼성에서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삼성을 이끌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의 발언은 지난 4월 중국의 보아오포럼에서 “삼성은 현재 의료분야에서 새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많은 연구개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삼성그룹의 이끌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삼성의 미래와 관련한 발언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이렇게 철저히 ‘은둔의 후계자’로 삼성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것은 삼성의 독특한 후계수업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이 회장도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을 때 똑같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유학을 마치고 삼성으로 첫 출근을 했을 때 이병철 창업자는 손수 붓글씨로 경청과 목계(木鷄)라는 글을 써 줬다고 한다. 경청은 경영자로서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들으라는 뜻이다. 목계는 나무로 만든 닭이라는 뜻인데 ‘장자’에 나온다. 싸움닭을 만드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닭이 허장성세가 심해 교만하면 싸움닭의 준비가 덜 된 것이고, 상대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모습만 보고도 싸우려 하면 그것도 훈련이 덜 된 탓이다. “상대 닭이 살기를 번득이며 싸움을 걸어도 아무 내색하지 않고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아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은 상태”가 돼야 싸움닭으로서 자질을 갖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런 교육 방침에 따라 삼성 입사 후 말수를 더욱 줄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11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 이병철 회장의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런 삼성가의 독특한 후계자 수업방식이 이 부회장에게도 전해져 외부에서 볼 때 마치 ‘은둔의 후계자’처럼 비쳐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회장이 경청과 목계를 이 부회장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이 부회장을 항상 데리고 다닌 것은 분명하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회장은 전 세계 주요 경영인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이 부회장을 대동했다. 이 부회장은 항상 멀찍이 떨어져서 이 회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것은 이병철 회장이 이 회장에게 한 후계자 수업방식과 일치한다. 이병철 회장도 이 회장을 늘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 회장 혼자 깨달아야 했다. 이 회장이 삼성의 후계자로 지목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회장이 쓰러진 뒤 이 부회장에 대해 삼성의 후임자로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보도했다. 그 근거는 이 부회장의 국제적 감각이었다.
이 부회장은 2010년 부사장에 오르면서 활발한 대외업무를 통해 ‘삼성 후계자의 이미지’를 쌓는 데 주력했다. 유럽 최대 규모의 국제가전전시회 IFA 참석,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가전쇼 CES 참석 등 대외활동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안의 반도체공장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고 현장안내를 맡았다. 이를 놓고 “삼성 후계자로서 이미지를 굳건히 했다”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올해 보아오포럼 이사로 선임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포함한 차세대 지도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부회장이 애플과 협상을 주도하는 등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물로서 세계적 인물들과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으며, 고객과 파트너십 강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부회장이 그동안 언론에 나온 것은 이런 모습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자라기보다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일일이 설명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이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현대重·한화·한진·금호…3세들 ‘앞으로’

최근 현대중공업, 한화, 현대, 금호, 한진 등 30대 기업 오너가 3세들이 핵심부서의 일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은 올해 32세로 지난해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에 합류했다. 대일외고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육군 중위로 제대한 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근무하다가 2011년 스탠퍼드대학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경영 후계구도를 위해 지난해 임원 승진대상자로 꼽히기도 했지만 나이와 회사 근무의 짧은 이력 탓에 미루어졌다. 사내에서는 젊다는 것을 유일한 단점으로 꼽을 만큼 업무능력 및 사교 등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호타이어 박세창 부사장도 눈에 띄는 3세 경영인이다. 그는 1975년생으로 연세대 생물학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MBA를 거친 뒤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 차장으로 그룹에 합류했다. 2011년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승진한 후 올 초 기획관리총괄 부사장을 맡아 경영전반의 기획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박철완 상무, 박준경 상무도 3세대 경영인으로 주목받는다. 박철완 상무는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 아들이며 박준경 상무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장남으로 모두 1978년생이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장남에 이어 차남도 경영수업을 받게 됐다. 차남인 김동원씨(29)는 3월 한화L&C에 입사해 평사원으로 일한다. 김 회장의 장남이자 형인 김동관씨(31)는 2010년 입사해 한화큐셀 전략마케팅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의 첫째 딸인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전무(38)가 11년째 그룹 경영에 참여 중이며 차녀 정영이씨(29)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2012년 6월부터 현대유엔아이 재무팀 대리로 입사해 재직 중이다. 한진그룹도 지난해 말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이 지주회사인 한진칼 대표이사로 겸직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시대의 막이 올랐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씨는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해 현재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을 대하거나 업무에 임할 때 항상 낮은 자세로 임한다는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보다 진급 속도가 빠르고 같은 직급에는 아버지뻘 같은 사람들도 포진해 있다. 임원 회의나 팀장 회의에 들어가서도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대부분 의견을 청취하거나 중요한 순간에만 나선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을 중시해 항상 소탈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재벌 오너가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대부분 수행비서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현대가, 금호가의 3세 경영인들은 수행비서 없이 혼자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회사에서는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회사 외부에서는 적극적인 면을 보인다. 대부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경영 수업을 받고 있어 해외 인맥을 최대한 사업에 이용하고 있다. 효성 조현상 부사장,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실장은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인맥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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