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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1-26 18:51 (수) 기사제보 구독신청
[피터 드러커의 질문] 프로이트 박사는 황제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야?
[피터 드러커의 질문] 프로이트 박사는 황제보다도 더 높은 사람이야?
  • 양준영
  • 승인 2010.01.11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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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세 번의 큰 깨달음 뒤에야 비로소 우주와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Nichola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은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꾸었고, 19세기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은 생명 현상을 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렸으며, 20세기 초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인간에게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내면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 비유를 연장하자면, 나중의 일이지만, 드러커는 ‘자본’과 ‘노동’ 대신에 ‘지식’이 생산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식을 지식에 적용하는 ‘지식 혁명’을 일으켰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은 점잖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선주에게 “프로이트를 아시나요?”라고 묻는다. 19세기 상류사회의 위선과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그녀에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20세기식 자유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기성 질서를 상징하는 타이타닉호 선주는 엉뚱하게도 “프로이트 씨가 우리 고객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말년의 프로이트 사상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인류 문명 저변에 깔린 파괴 본능을 탐사했다. 인간은 성욕, 즉 에로스(eros)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능, 즉 타나토스(tanatos)가 있기 때문에 자멸의 길을 선택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늘 기억해야 할 20세기의 발견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회상

드러커는 8~9세경에 프로이트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드러커의 부모는 둘 다 프로이트와 오랜 친지간이었다. 게다가 드러커의 모친은 시집을 오기 전에 의학도로서 프로이트에게서 배웠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1900년 발행 초판본도 구입했으며, 프로이트가 존경하고 있던 정신의학자 브로일러(Breuler)가 주재하는 취리히의 심리연구소에 1년간 봉직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드러커 부친보다 20세 이상이나 연상이었으므로 게니아의 살롱 또는 산책길 같은 데서 만났을 때는 먼저 부친 쪽에서 공손히 머리를 숙였고, 그것을 받아 프로이트가 천천히 답례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무렵 게니아 슈바르츠발트가 운영하던 식당 하나가 베르크가세에 있는 프로이트의 아파트 이웃에 있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드러커의 가족과 프로이트의 가족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드러커는 부친의 재촉으로 프로이트와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부친은 이렇게 속삭였다. “피터, 오늘을 꼭 기억해두어라. 지금 만난 분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다.” 
드러커가 조용히 되물었다. “아빠, 그럼 프란츠 요제프 황제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야?” 
부친은 짧게 대답했다. “그렇단다.”
어쩌면 드러커는 이때 사람의 가치는 권력의 고하와는 관계없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 영역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꿈의 해석

20세기는 《꿈의 해석》과 함께 꿈처럼 열렸다. 이 책의 초판본은 1899년 11월 4일 오스트리아에서 발행되었지만, 발행 연도를 1900년으로 표기한 것은 새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출판사의 의도였다. 오늘날에는 20세기를 움직인 현대의 고전으로 추앙되지만, 독일어로 쓰인 초판본 600부가 다 팔리는 데는 무려 8년이나 걸렸다. 당시 빈의 의학계가 유태인인 프로이트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빈의 의학계 자체가 역설적으로 바로 지극히 유태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에 대한 빈 의학계의 비판은, 정신분석의 신봉자까지도 표명한 비판은, 첫째, 프로이트가 유태인 치료자로서의 기본적 윤리를 짓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자선 구제 환자, 즉 무료 환자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 전문 의사는 무료로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 된다. 아니 환자에게 충분히 치료비를 내게 하지 않는 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까지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빈의 대다수 의사가 믿고 있던 유태 전통에 비추어서 말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비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의사는 환자에게 일절 동정심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 환자 개인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된다. 가령 의사가 환자를 인간적으로 취급하면 환자의 용태를 악화시키고 환자의 의뢰심을 조장하여 회복을 방해할 뿐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환자는 의사의 동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의사를 치료자로부터 기계공으로 격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빈의 유태인 의사 전원에게 있어, 아니 유태인 의사에 한하지 않고 어느 의사에게 있어서나 이것은 그들이 의사가 된 이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또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그들의 신조를 분명히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산업사회의 지도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시하거나 가르치기만 했다.
수십 년 동안 프로이트는 한 번도 동료 의사들에게 충고를 구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오로지 “좋은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미건조하고 명료하고 환상이 없어야 한다”는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스탕달(Stendhal, 본명 Marie Henri Beyle, 1783~1842)의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명료함이란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모든 인간의 발언이나 언어적 표현에서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가치였다. 프로이트는 환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드러커는 이렇게 지적했다. “산업사회의 우수한 지도자들, 예를 들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Karl Marx, 1813~1883), 그리고 테일러(Frederic W. Taylor, 1856~1915) 등은 그들의 치료와 연구의 대상인 환자, 그리고 땀 흘리는 노동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지시하거나 가르치기만 했다.” 
맥루한은 드러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드러커는 자신을 ‘자격증이 없는 정신의학자’라고 지칭한 적이 있는데, 이는 현대 산업사회의 영향으로 가족 조직이 파괴될 때 프로이트가 현대 정신의학을 인간의 내면에 적용한 것과 같이, 드러커는 인간 사회의 외부 조직 구조에 질서를 파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드러커는 경영 활동 과정에서 ‘성과’에 대한 정의, 그리고 쌍방향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프로이트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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