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제한 족쇄’ 풀린 이재용, ‘부회장 총수’ 딱지 언제 떼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 다하겠다” 10년 전 44세 부회장 승진…4대 그룹 총수 중 부회장 유일

2022-08-16     장진혁 기자
이재용

[인사이트코리아=장진혁 기자] “앞으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을 다하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일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밝힌 소감이다. 재계에선 ‘취업제한 족쇄’가 풀린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형기는 지난달 29일 종료됐지만, 공식적인 경영활동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5년간 취업제한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부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삼성을 진두지휘하면서 주력 사업인 ‘반도체 초격차’ 확대를 위한 광폭 행보를 펼치는 한편 미래 먹거리 육성과 신시장 개척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고,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정부의 배려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고려하면, 삼성이 지난 5월 발표한 향후 5년간 450조원 규모의 투자와 8만명 신규 고용 계획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인수합병(M&A)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124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삼성의 대형 M&A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멈춘 상태다. 향후 이 부회장이 반도체·바이오·신성장IT 등 미래 신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적극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뉴시스

유일한 부회장 총수, 연내 회장 취임 유력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연내 적당한 시기에 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을 크다고 보고 있다.

올해 54세인 이 부회장은 2012년 12월 44세의 나이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현재까지 10년째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19년부터 무보수 미등기임원으로 경영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4대 그룹 가운데 회장 타이틀을 달지 못한 총수는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회장 승진은 법률상의 직함은 아니어서 사내 주요 경영진이 모여 결정하면 이뤄진다.

이 부회장이 회장직에 오르면 본격적인 ‘이재용의 뉴삼성’ 시대가 열리게 된다. 1987년 12월 45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이건희 회장보다 10년 늦은 셈이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시기는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인 10월 25일이나 삼성그룹 창업주이자 조부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35주기인 11월 19일 전후, 또는 사장단 정기 인사 시즌인 12월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이 등기임원에 오를지도 관심사다. 이 경우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은 가석방 상태여서 등기임원을 맡을 수 없었지만, 다시 등기임원이 될 길이 열린 만큼 책임경영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본인 의지에 달려있다”며 “이 부회장이 그룹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장기간 공석으로 비워뒀던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것은 대내외적인 위상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앞에 놓인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회장 승진과 등기임원 복귀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의혹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회장 승진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도 있다. 그는 2017년 12월 27일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 ‘지배구조·승계 방식’ 어떻게 바뀌나

이 부회장이 복권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 지배구조 외에도 이 부회장이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선언한 바 있어 오너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2월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2기는 3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ESG 경영 확립’을 꼽은 바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지난해 ESG 평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종합 ESG 등급은 B+등급이다. 구체적으로 환경(E)과 사회(S) 부문은 각각 A와 A+등급으로 준수한 반면, 지배구조(G) 부문은 B등급으로 비교적 취약했다. B등급은 전체 7등급 중 5등급에 해당한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안 마련을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로, 최종 보고서는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논의는 소유구조 개편, 승계 방식 등 여러 갈래로 진행된다. 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사실상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구조로, 과거부터 삼성물산 개인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이 지분이 적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취약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어 꾸준히 문제로 지적됐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사후 지분 상속을 받아 삼성생명의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한 상태지만, 현재 야당이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 소유구조의 변수로 꼽히고 있다.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대부분을 매각해야 하므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약화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승계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주요 논의 대상이다. 일각에선 스웨덴의 최대 기업집단인 발렌베리 그룹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발렌베리가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각 자회사의 경영권을 독립적으로 일임하고,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지주사 인베스터는 발렌베리 재단이 지배한다.

재계에선 5대째 가족 세습을 이어가지만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발렌베리 가문의 원칙처럼 삼성 오너가는 유지하되 직접적인 지배 대신 재단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