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삼성 회장 1주기,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은 과제는?

반도체 투자·지배구조·노사관계 등 현안 산적…가석방 후 ‘뉴삼성’ 기대감 높아져

2021-10-25     장진혁 기자
이재용

[인사이트코리아=장진혁 기자]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진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 설치된 이건희 회장의 흉상 제막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 별세 후 1년간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수감생활로 인해 제대로 된 경영활동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새해 첫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사업장을 방문해 “2021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며 ‘뉴삼성’을 예고했지만, 이로부터 2주 만에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뜻을 펼치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207일의 수감생활 끝에 광복절 직전인 지난 8월 13일 가석방됐지만, 취업제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신중한 경영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대국민 사과’를 하며 삼성의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4세 경영권 승계 포기와 무노조 경영 폐기, 준법경영 강화 등 파격적인 약속을 하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절반을 상속 받으면서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데 성공했다. 삼성 지배구조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회장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직 활동에 제약이 있는 가석방 상황인데다 삼성물산 합병 관련 의혹과 프로포폴 불법투약 의혹 등 2건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 타계 1주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경영행보에 나서 ‘뉴삼성’에 속도가 붙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용

다음달 미국 출장서 반도체 직접 챙길듯…‘미래 큰 그림’ 위해 경영보폭 넓히나

현재 이 부회장 앞에는 미완의 과제들이 쌓여있다. ‘뉴삼성’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다.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신규 투자를 조만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 부회장 가석방 직후인 지난 8월 말 미래 투자에 대한 큰 그림을 공개했다.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 사업, 5G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로봇 등에 향후 3년간 240조원의 신규 투자를 하겠다는 게 골자다.

삼성전자는 그간 총수 부재로 인해 주요 결정이 지연되면서 2017년 9조원을 들인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올해 5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공식화한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투자 계획도 인센티브 협상 등의 문제로 아직 최종 투자 지역이 결정되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다음달 직접 미국 출장길에 올라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 부지를 확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개선도 주목된다. 이 부회장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정립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는 삼성 지배구조 개편 방안과 관련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외부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여기에는 삼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유형의 준법의무 위반 사례 유형화, 평가지표·점검항목 설정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는 올해 하반기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삼성은 BCG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세부 검토를 마친 뒤 로드맵을 마련하는 등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할 예정이다. ‘오너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지주사 설립 등 다양한 방안들이 검토될 전망이다.

‘무노조 경영’으로 대표되는 이건희 시대 이후의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과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을 철폐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이후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8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사 화합 공동 선언을 발표하는 등 일부 진전을 이뤄냈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삼성에 회장 직급은 1년째 공석 상태로 남아있다. 총수인 이 부회장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등 2명만이 삼성에서 부회장 직급을 달고 있다. 이 부회장이 현재 가석방 신분인 만큼 회장 호칭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승진하는 대신 당분간은 지금처럼 부회장 타이틀로 그룹을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은지 6년 5개월 만이다. 고인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후 1987년 삼성 2대 회장에 오른 뒤 한국을 반도체와 모바일 산업 1등 국가로 만든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