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 사기분양 논란②] 정몽규가 자랑한 아파트, 입주민 분노 폭발한 까닭은?

정몽규 HDC그룹 회장 ‘디벨로퍼 역량’ 강조하며 ‘수원아이파크시티’ 성공사례 꼽아 공동주택 부지 제외한 다수 잔여지로 남아…‘우범지역’화 하며 등굣길 위험투성이 실외체육시설 놓고 주민-수원시 대립…“시가 주민 협박” vs “주민 불안 고려해 개발”

2021-06-10     이하영 기자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최근 건설사에서 많이 뛰어드는 분야가 ‘개발 사업’이다. 건설사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 역할까지 맡는 거다. 건설업계에서 이 분야에 특화된 기업이 HDC현대산업개발이다. HDC현산은 2006년 민간 최초 도시개발을 내세우며 수원시 권선지구에 ‘미니 신도시’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도시개발 사업은 10년여가 지난 지금 입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HDC현산이 사업성을 문제로 당초 약속한 편의시설 대신 오피스텔을 짓고 일부 부지는 매각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입주민들은 ‘사기분양’이라며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HDC현산의 수원아이파크시티에서 드러난 개발 사업의 어두운 단면을 2회에 걸쳐 들여다 본다.

[인사이트코리아=이하영 기자]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2017년 7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영학회의 ‘한국경영자대상’ 시상식에서 경영자대상을 수상하면서 디벨로퍼의 역량을 강조했다.

당시 정 회장은 “우리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은 개발, 시공, 운영, 금융, 리테일에 이르기까지 주택 사업의 전후방 밸류체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라며 “이러한 강점을 활용해 고객에게 더 많은 가치를 주는 종합 디벨로퍼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듬해인 2018년 기존 HDC현대산업개발 법인을 지주회사인 HDC로 재편했다. HDC현산은 HDC그룹의 계열사가 됐지만 정 회장이 밝힌 ‘디벨로퍼’ 정신은 여전히 회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HDC현산이 개발을 본격화 한 용산철도병원과 광운대역세권 사업에서도 ‘디벨로퍼 역량’은 빠지지 않는 설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HDC현산의 디벨로퍼 역량을 강조할 때 성공사례로 등장하는 ‘수원아이파크시티’가 현재 입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3일 수원아이파크시티를 직접 방문해 입주민들의 주장을 듣고 자료 조사를 거쳐 사실여부 확인에 나섰다.

HDC현산, 수원시와 ‘짬짜미’?

수원시와 HDC현산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시 권선지구는 상업‧의료‧공공서비스 시설 용지 등을 공동주택 및 매각 지역으로 바꾸는 지구단위 계획 변경이 추진 중이다. 수원시는 이번 지구단위 계획 변경과 관련해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들에게 “법에 묶여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HDC현산이 사업성을 이유로 사업 진행을 하지 않는 것을 시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입주민들은 수원시가 HDC현산을 일방적으로 봐주고 있다며 ‘짬짜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짬짜미란 남모르게 일부 사람이나 기관‧조직‧기업이 자기들끼리 하는 부정적인 약속을 일컫는다. 수원시에 유독 HDC현산 아파트 브랜드인 아이파크가 많고, 수원시가 도시개발사업 시 기부채납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많은 부분에 대한 비판이다.

네이버 지도 기준 8일 수원시 내 브랜드 아파트는 총 5만8817세대다. 이중 1~5위를 살펴보면 ▲HDC현산 1만549세대 ▲GS건설 5842세대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 5226세대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5166세대 ▲DL이앤씨 4579세대 등이다. 1위인 HDC현산 아이파크의 수원시 내 세대수가 2위인 GS건설 자이 브랜드 보다 두배가량 많다.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들은 아이파크가 다른 브랜드보다 월등히 많다는 부분을 언급하며 인허가 과정에서 수원시가 혜택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HDC현산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망포‧영통 지역 아이파크 분양 당시에도 HDC현산 아파트 분양을 우려해 수원시에 인허가 재고를 요청했다. 지금도 분양초기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앞으로라고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 한 임원은 “수원아이파크시티 사업 먼저 제대로 진행한 뒤에 분양할 수 있도록 시에 도와달라고 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측은 2015년 HDC현산이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인근에 기부채납한 300억원 상당의 미술관도 “수원시가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수원아이파크시티 개발이익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파트 내에 기부채납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수원시 관계자는 “300억원 상당의 미술관 기부채납은 HDC현산이 시에 ‘순수한 기부’를 한 것”이라며 “만약 기부채납으로 받았다고 해도 같은 수원시 내에서 사용했으니 문제가 없다. 서울도 강남에서 나온 기부채납금을 강북에 사용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실외체육시설 놓고, 수원시 vs 입주민 ‘갑론을박’

지난해 가을께 지구단위 계획 변경 추진 내용 중 하나가 수원아이파크시티 5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군용지(R1부지)에 실외체육시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수원아이파크시티 발전위원회는 2017년 8월 지역 국회의원인 김진표 의원에게 단지 내 중학교 추진, 다목적 체육관 신설, M버스 신설 등의 내용을 입주민 총 6664명의 서명을 받아 전달했다.

이중 다목적 체육관 시설 설치를 R1부지에 추진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처음 제안한 것은 수영장, GX룸, 다목적 체육관, 북카페 등을 포함한 실내체육시설이었다. 그러나 R1부지는 국유지로 국유재산법 18조에 따라 국가 외의 단체나 개인이 영구시설물을 축조하지 못한다. 이에 수원시가 테니스장, 족구장, 축구장 등의 실외체육시설을 제안했다.

주민들은 수원시가 제안한 종목이 모두 밤에 조명을 밝게 해둬 빛공해가 심할뿐더러 사용자인 동호회가 음주가무를 즐길 것으로 염려해 반대하고 있다. 주민 반발이 이어지자 수원시는 지난 2월 16일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 대표들과의 설명회에서 축구장을 제외하고 잔디마당, X게임장, 트랙 조성 건을 제안했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수원시는 지난 4월 1일 다시 ‘권선지구 내 사업 반대 민원에 따른 우리시 이후 계획 통보’ 공문을 냈다. 주민 염원 사업인 학교복합화시설, 실외체육시설, 유휴부지 조기개발 등을 “일괄추진 하겠다”며 사업 추진 불가 시 일괄취소를 선언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시가 주민들을 협박한다” “학교복합화시설은 이미 국비 40억원까지 배정된 것인데 말도 안 된다”며 수원시 행정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2‧4학년 아이를 둔 30대 학부모 A씨(여)는 “단지 내 초등학교는 과밀학급이 돼 아이들이 한 반에 30명씩 들어가 공부한다”면서 “고학년 아이들은 1시가 넘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쌩쌩 달리는 덤프트럭, 작동 멈춘 신호등…위험한 등굣길

수원아이파크시티는 HDC현산이 아파트를 지은 공동주택 부지를 제외한 다수가 잔여지로 비어있다. 개발 되지 않은 공터가 비행청소년 집결지나 덤프트럭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범지역’ 우려가 나온다.

지난 3일 찾아간 수원아이파크시티는 정문의 북적임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을씨년스러웠다. 5단지 옆으로 나가면 양쪽으로 철제 펜스가 빙 둘러진 잔여지가 나온다. 수원아이파크시티 5단지에서 888m 거리(도보 13분 거리)에 있는 다정유치원 도보 등원은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삼거리에 신호등이 모두 꺼져 있어서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은 편의상 신호등을 끄기도 하지만 그만큼 차의 속도가 줄지 않아 위험이 뒤따른다. 다행히 다정유치원은 차량을 운행했고 건물 앞 횡단보도는 제대로 작동했다.

문제는 이 길이 곡정고등학교까지 연결된다는 데 있다. 다정유치원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군 공유지나 수원아이파크시티 잔여지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길가에 덤프트럭 뿐 아니라 승용차까지 주차돼 있다. 4일 오후 5시 30분경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수원아이파크시티 입주민들은 “단지와 학교 중간이 공군 부지로 지나갈 수 없다. U자형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일한 통학로”라며 “곡반3초·중학교가 개교(2023년 3월 예정)하기 전에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해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수원시 관계자는 “주민 불안도 고려해 수원아이파크시티 잔여지를 빨리 개발하기 위해 지구단위 계획 변경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시가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일 현재 입주민과 수원시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수원아이파크시티소송단은 6월 중 수원시와 HDC현산을 상대로 사기 분양으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