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은행, 전산·서류업무에 '경비원' 투입...고객 정보·비밀번호 유출 우려

은행원 할 일 경비원이 떠 안아...금융실명제법 위반 가능성 높아

2020-06-10     강민경 기자
IBK기업은행이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최근 국내 시중은행 경비원들이 겪는 부당업무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 경비원들이 고객 정보 유출 위험이 높은 서류와 전산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기업은행 경비원 10여명 이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기업은행 지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이다.

이들은 떡볶이 사오기, 우체국 심부름, 설거지, VIP커피접대, 동전교환, ATM업무, 주차관리, 외부업무 운전, 화분에 물주기 등 잡무부터 은행원이 해야 하는 업무까지 떠안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원 업무까지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 경비원들의 주장이다.

주민등록번호·입출금내역·신용등급부터 '비밀번호'까지 노출

가장 큰 문제는 고객의 개인정보와 입출금내역 등 강도 높은 보안이 요구되는 서류 업무와 자료 처리에 경비원이 투입되고 있는 점이다.

특히 기업은행은 중소기업대출에 특화된 전문은행으로서, 경비원의 서류·전산업무 투입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 정보가 유출될 위험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인사이트코리아> 취재 결과, 기업은행 경비원들은 ▲은행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자리에 대신 앉아 전산업무 작업 ▲외부에서 이뤄지는 단체카드 신규가입의 경우,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이름을 비롯해 ‘비밀번호’까지 적힌 가입 서류 작성 후 정리해 지점에 들고 들어가기 ▲개인정보를 활용해 신용등급 확인 후 알맞은 대출서류 준비 ▲위임장 없이 고객의 위임업무 보기 등에 실제 투입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고객 통장정리 업무를 지시받았고, 통장 종이를 넘기는 과정에서 해당 고객 혹은 기업의 입출금내역과 잔금 등을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 경비원 A씨는 “은행원들이 우편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컨대 은행원이 ‘내용증명 등 주요 서류가 있으니 절대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도 결국은 우리에게 심부름을 보내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사이트코리아>가 직접 인터뷰한 경비원들이 지시받은 전산·서류작업 내용의 일부다.


① 은행원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행원이 로그인 한 후 경비원에게 자리를 넘기고 전산업무 지시

② 외부 카드 단체 신규가입 업무 지시-주소·주민등록번호·이름을 비롯해 비밀번호까지 적어서 들어와야 하는 해당 서류 업무에 투입

③ 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되는 신규가입 서류 분류작업 지시

④ 외부 단체대출 업무에 투입-서류 정리·서류 세팅 업무 및 신용정보 미리 확인해 알맞은 서류 준비

⑤ 고객 통장 정리 업무 지시-고객이나 법인의 입출금 내역과 잔금 등 정보를 볼 수밖에 없음

⑥ 행원들이 “대출 서류와 내용증명 등 주요 서류가 들어있으니 절대 잃어버리면 안된다”며 경비원에게 우편업무 지시

⑦ 고객 대출·대환 위임업무 지시-고객의 위임장을 받은 적 없음

⑧ 고객서류 대필 작업 지시

⑨ 공인인증서 발급 지원 업무 지시

⑩ 코로나19 대출시 지원 업무-나이스신용정보 이용해 신용등급 조회 후 필요서류 안내


금융실명제 위반 가능성...'금융회사 종사자는 명의인 동의없이 타인에게 제공 금지' 

경비원에게 은행원들의 컴퓨터로 전산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는 명의인의 서면상 요구나 동의 없이 금융거래정보 등을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들 경비원들은 기업은행의 '인력전문 자회사' 소속이며, 해당 자회사는 기업은행과 도급계약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경비원은 금융회사 종사자가 아닌 간접고용된 하청 직원인 셈이다.

또 경비원들의 주 업무가 ‘지점 경비업무’인 만큼, 외부 영업활동이나 심부름 등으로 지점을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비업무에 차질이 생길 경우,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은행 경비원 B씨는 “경비업무가 주 업무인데 오히려 부가적인 작업에 투입돼 하루의 대부분을 그러한 부당업무에 쓰고 있다”며 “특히 고객과 기업 정보가 적힌 서류들을 수도 없이 분류하고, 우편으로 보내고, 전산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비원 C씨는 “어떤 고객은 ‘내가 왜 내 개인정보를 경비원에게 말해야 하나’라고 하시기도 한다. 내가 고객이어도 그 분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다”며 “우리도 정말 하기 싫은데 위에서 하라고 하니 안 할 수가 없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용역시절 '불법파견'부터 이어진 고질적 문제"

부당업무 문제에 대해 경비원들은 “이는 용역시절부터 이어진 ‘불법파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은행 경비원들은 지난 1월 인력전문 자회사인 IBK서비스 정규직으로 전환돼 현재 기업은행에 ‘간접고용’ 된 상태이나, 그 이전 용역업체 소속일 때부터 시작된 문제라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경비직군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었던 시절인 2017년 12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경비직원에게 경비업무 외 부당업무 지시를 금지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당시에도 경비원들은 은행 임원·행사 외빈 관련 의전 업무, 택배 업무, 주차장 관리 업무, 차량 관리 업무, ATM기 및 동전교환 업무, 각종 세금 처리, 심부름, 고객 응대 등을 맡고 있었고 이러한 부당업무 지시는 위장도급 하에서 이뤄지는 사례로 ‘불법파견’에 해당될 소지가 있었다.

민법 제664조에 따르면, 도급은 ‘당사자 일방(용역‧하청업체)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발주‧원청업체)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약정하는 계약’으로, 이와 상이하게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노동자의 근로조건 결정과 업무지휘 감독 등에 대해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지시하는 것 등이 ‘불법파견’에 해당된다. 따라서 경비업법에 의해 용역업체 경비원에게 경비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지시하는 것도 위법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기업은행 경비직군은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두고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파견근로자 보호법에 따르면, 불법파견이 증빙되는 경우에는 원청업체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한다는 직접고용 의무가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측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리감독 하도록 최선 다하겠다"

기업은행은 “부당업무를 근절하겠다”며 자회사 간접고용안을 제시하며 설득했으나, “실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게 경비원들의 주장이다. 통상적으로 지점 당 1명의 자회사 소속 경비원이 배치돼, 은행 직원들로부터 부당업무 압박을 무시하기 힘들고, 이에 반박하는 경우 따돌림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업은행 경비원 D씨는 “기업은행은 명분상 공문을 보내며 달라질 것을 약속했지만, 자회사 전환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며 “오히려 지점 윗선에서는 ‘잡무를 하지 않을 거면 우리 가족이 아니다’ ‘이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며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왕따’ ‘은따’ 분위기가 조성돼 스트레스로 병원에 다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으로 지목된 사례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신 발송과 문서 게재 등을 통해 직원들을 교육하고 주지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리 은행에서는 경비원들의 이러한 고충을 이해하고 관리감독하기 위해 경비지도사 외 업무에 숙달된 고경력 직원들을 활용한 경비 실태조사를 함께 운용 중에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