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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9 18:38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팔 잘라줄까” 위협 무섭지만…장애인도 출근은 해야 하잖아요
“팔 잘라줄까” 위협 무섭지만…장애인도 출근은 해야 하잖아요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2.02.2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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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21년 동안 이동권 시위 하는 이유

초는 분이 되고, 시간이 됩니다. 시간은 쌓여 하루가 됩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을 겁니다. 그 하루를 취재원 시점에서 보고, 기자의 관점으로 대신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하루만 제 기사의 주인공이 되어주세요.

전장연 회원들이 2월 17일 충무로역 3호선 열차를 타기 위해 일렬로 대기하고 있다.<서창완>
전장연 회원들이 2월 17일 충무로역 3호선 열차를 타기 위해 일렬로 대기하고 있다.<서창완>

[인사이트코리아=서창완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환승장, 휠체어 4대가 모였다. 50여명 남짓한 경찰과 지하철보안관도 그들 주위로 대열을 맞춰 섰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가운데 이들 휠체어의 바퀴가 생경한 풍경을 만든다. 출근길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휠체어를 타고 모인 4명의 장애인과 활동가들 사이에 비장함과 긴장감이 감돈다.

2월 17일 목요일 오전 7시 30분 시작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17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선전전 현장을 함께 했다. 이후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와 혜화역 근처 카페에서 1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장연은 18일, 21일, 22일까지 20번째 평일 시위를 이어가다 23일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종료했다.

이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21일 밤 열린 4자 토론회 마무리 1분 발언에서 이동권 시위를 언급했고, 23일 시위 현장에 직접 방문하면서 이뤄졌다. 전장연은 “출근길 선전전은 멈추지만 남은 TV토론에서 이들 후보에게 장애인권리예산 약속을 지속해서 촉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수차례 이어진 시위에 시민들 불만 고조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가 주목받은 건 지난해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 시위 때부터다. 지하철 5호선이 지나는 여의도역과 공덕역에서 휠체어로 지하철 문을 막아 닫히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시위가 진행됐다. 초창기 시위 때는 10~20분 정도 지하철 출발을 지연시키면서 시민 불편이 커졌다.

17일 전장연 출근길 시위는 초창기처럼 열차 시간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수준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6일 ‘장애인 공약’을 발표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언급되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권 관련 구체 공약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의미가 있는 발표였다고 덧붙였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많을 경우 발판을 대고 이동해야 한다.서창완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넓어 발판을 대고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서창완>

이날 시위는 충무로역 3호선에서 시작했다. 충무로역→을지로3가역→경복궁역→충무로역→한성대입구역(4호선 환승)→혜화역 순으로 이동했다. 설 연휴 이후인 2월 3일부터는 평일 기준 23일까지 매일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이날 첫 열차에 올라탄 오전 7시 40분부터 혜화역에 도착한 오전 8시 44분까지 1시간 정도 이동했다. 장애인 4명이 탄 휠체어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데는 짧으면 44초, 길게는 3분 30초가 걸렸다. 2분, 3분 30초, 1분 50초, 3분 30초, 2분, 1분 5초, 1분, 1분 2초, 44초, 45초다. 이날 출근길에는 지하철 연착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장애인의 지하철 타기는 예상보다 빠르고 수월했다. 50여명 남짓 모인 경찰과 지하철보안관이 길을 만들어 주고, 발판을 설치해주는 등 기민하게 반응한 덕분이다. 출근길 시민들로 가득한 열차 칸은 휠체어 4대가 들어서기엔 비좁았는데, 경찰들의 조정 덕분에 자리가 생겼다. 반면 경찰과 지하철보안관 수가 많아 불편을 초래하는 측면도 있었다.

열차 안이 전장연 활동가들과 경찰 등으로 들어찼다.서창완
열차 안이 전장연 활동가들과 경찰 등으로 들어찼다.<서창완>

“장애인 단체의 불법시위로 지하철이 연착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불법시위’라는 지하철 안내방송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다. 박 대표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에게 장애인 단체라는 단어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공식 이름으로 부르고, 불법이란 말은 빼달라고 요청했다. 잘못된 정보를 왜곡되게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두 번째 열차를 탈 때부터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로 지하철이 연착되고 있다”는 표현으로 정정됐다.

10번을 타고 내리는 동안 전장연 시위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꽤 있었다. 한 시민은 지하철을 타자마자 낮게 욕설을 내뱉고는 고개를 저은 후 시위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시위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방법이 잘못됐다”는 불만 표시도 있었고, “출근합시다” “조용히 좀 합시다” 등 큰소리로 항의하는 시민도 있었다.

“그래도 욕은 상대가 있잖아요. 무관심은 상대가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없는 거죠.”

전장연 회원들이 충무로역 3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서창완
전장연 회원들이 충무로역 3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서창완>

1시간 넘게 이어진 시위 현장에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순간은 충무로역 3호선에서 4호선 환승을 위해 이동하던 때였다. 8분 45초가 소요됐다. 장애인 4명이 휠체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한 번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만 존재감이 드러나는 그들의 진짜 어려움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박 대표가 아무 반응도 없는 것보다 비판이라도 듣는 게 더 낫다고 설명한 이유다.

“폭력과 혐오, 무섭다고 도망갈 순 없잖아요”

박 대표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해 이동하다 추락사한 사고 이후로 이동권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2년 발산역 추락사고 등 장애인들의 죽음과 이동권 투쟁 끝에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생겼다.

이런 노력으로 현재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많이 높아졌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현재 1~8호선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2.3%다. 2002년 당시 263개 지하철역 가운데 77곳(29.3%)에만 설치돼 있던 것과 비교하면 장애인들의 지하철 이동 편의도 한층 좋아졌다. 일각에서 이동권이 충분히 잘 갖춰진 지하철에서 시위한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고, 박원순 시장은 2022년까지 100%를 약속했습니다. 이런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십 차례 협의하는 과정이 있었고, 약속을 받아 냈지만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2024년까지 100% 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은 믿을 수 있을까요?”

담담하게 말한 박 대표이지만, 최근의 여론에 상처도 많이 받은 눈치였다. 오랫동안 거리에서 투쟁해 온 그도 시민들의 날 선 반응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최근에는 비난 수위가 더 높아졌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다.서창완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다.<서창완>

“팔 잘라줄까라고 하기도 하고, 불 질러버리겠다는 얘기도 들었죠.”

박 대표가 최근 전장연이 직접 겪은 사례를 담담히 얘기했다. 전장연을 향한 시민들의 비난 수위는 21년 동안 이동권 시위를 해 온 박 대표도 처음 느껴보는 수준이다.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생긴다. 댓글들에도 적나라한 표현이 많이 실린다.

“요즘 우리는 가장 날 것 그대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혐오라고 하죠.”

출근길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의 반응이 무섭지는 않을까. 이날 시위 현장을 동행하면서 시민들의 표정과 눈빛을 직접 보고 나니 궁금증이 들었다. “당연히 무섭다”는 박 대표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출근길 시위를 그만둘 수는 없다는 말이 이어진다.

“폭력과 혐오도 무섭지만, 이것이 날 것 그래도 조장되고 있는 사회도 무서워요. 그래서 싸우는 거죠. 무섭다고 도망갈 순 없잖아요.”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27일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의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 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용 지원 등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통과된 게 의의가 크다면서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전장연은 중앙정부의 이동지원센터 운영비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던 원안에서 ‘할 수 있다’로 후퇴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게 개정안이 변경됐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됐음에도 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어려워졌다고 호소한다.

21년, 긴 시간 동안 거리로 나선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기본적 욕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는 일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할 문제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 일문일답

“차별의 칼, 사라져야 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시위를 하는 취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혜화역에서 선전을 중심으로 시민들에게 유튜브로 알리는 일을 51일째 하고 있고,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라는 이름으로 17일째 하고 있다. 이번에 교통약자법이 개정되면서 일반 버스가 대·폐차될 때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게 됐다. 일반버스는 11년 뒤 대·폐차를 해야 하는데, 그때 저상버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법 통과 11년 후에는 저상버스 100%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더라도 저상버스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노선이 있다. 전체 노선의 12% 정도 된다. 지난 15년 동안 이런 법조차 없었던 게 이동권의 현실이다. 그나마 시내버스는 길이 열렸지만, 시외버스나 마을버스는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다. 그럼 어떻게 이동하나? 장애인이 지하철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도권 아닌 지역은 지하철도 없다. 그래서 특별교통수단이란 게 있는데, 지자체가 재정을 책임진다. 제한적인 교통수단인데도 지자체가 해야 한다면서 국가가 방치해 왔다. 시민분들은 지하철 타고 싶을 때 타고, 밤에는 택시 타고, 고속버스와 마을버스 타고, 시외버스 타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21년 동안 이동권을 외쳐도 실현되지 않았다.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다. 그런데 그들이 책임지지 않게 하는 뭔가가 있다. 사회적 무관심이다.”

박경석 대표가 혜화역 인근 카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인터뷰하고 있다.서창완
박경석 대표가 혜화역 인근 카페에서 <인사이트코리아>와 인터뷰하고 있다.<서창완>

피해를 유발하면서까지 시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있다.

“자신들의 빼앗긴 권리, 이 사회가 빼앗은 권리, 권리라고 인정되지 않는 권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피해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기본적인 권리인 이동하고, 먹고, 사람 만나는 것을 21년 동안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사회적 책임의 문제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것을 지금까지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난 시민 피해는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그 피해로 인해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나. 오히려 이런 것들을 보장함으로써 시민사회의 권한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권자의 권한이 더 커질 수 있다. 이것을 방치한 책임자에게 잘못을 물어야 한다고 여긴다. 피해가 있다면 그 피해는 국가에 물어야 한다.”

20년 동안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변화가 많았다.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런 질문은 이런 거다. 가슴에 차별의 칼을 찔렀다. 20㎝ 찔렀다. 피가 나고 있다. 그런데 10㎝ 빼주고서 덜 아프지 않냐고 묻는 거다. 차별의 칼은 사라져야 한다. 지금 행복합니까? 물어봐야지 예전보다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물어보는 건 잘못됐다. 목표만 명확하다면, 우리 사회가 ‘10년은 기다려주십쇼’라고 말하면 기다릴 수 있다. 정확한 목표와 가능성, 방향이 제시될 수 있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체장애인들이 출근길만 힘든 것은 아닐 것 같다.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체장애인들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제한이 많다. 그래서 1984년도 김순석이라는 장애인이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여전히 거리의 턱 때문에 장애인들은 조그만 카페조차 들어갈 수 없다. 생활 속에 그런 턱들이 많다. 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이것은 물리적 차별이고, 상징적 어려움이다. 이밖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차별과 턱이 있다. 일상 속에서의 차별과 혐오가 많다.”

적대적인 감정으로 시위를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은 상황에 따라 적대적일 수도 있고 우호적일 수도 있다. 지금의 적대적인 마음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우리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는 그 적대적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지금 내가 지하철로 출근을 못해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욕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욕을 하시더라도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찾아보시고, 저희의 주장이 무엇이었는가 누구를 향한 것인가도 함께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언젠가 함께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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