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회장, 최대 실적 내고 용퇴…금호석유화학 지배구조 개선 길 열다
박찬구 회장, 최대 실적 내고 용퇴…금호석유화학 지배구조 개선 길 열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1.05.1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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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구 회장, 대표이사직 사임…“전문 경영인에게 길 열어 준다”
경영권 분쟁 겪으며 지배구조 개혁 약속…ESG 경영 첫발 내딛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금호석유화학>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금호석유화학>

[인사이트코리아=서창완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대표이사를 비롯한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회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시점에서다. 시장에서는 박 회장의 퇴진이 금호석유화학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첫발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0여년 동안 ‘형제의 난’과 ‘숙질의 난’을 겪을 정도로 지배구조는 금호석유화학의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 박 회장은 회사 경영이 충분히 안정화한 데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바라보는 시점에 자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구상에 나섰다.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회사 경영 기반 견고해졌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박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 의사를 수용했다. 박 회장은 금호미쓰이화학 등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회장직은 유지한다. 금호석유화학은 새롭게 구성될 이사회에서 박 회장의 구체적 역할과 지위를 논의·결정할 예정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R&D) 부문 전문가 고영훈 중앙연구소장(부사장)과 재무·회계 부문 전문가 고영도 관리본부장(전무)이 새롭게 사내이사로 선임된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영업 부문 전문가 백종훈 대표이사와 3개 부문 전문가들이 이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박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 발표는 회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시점에 나왔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1분기 매출액 1조8545억원, 영업이익 6125억원의 잠정 실적을 거뒀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51.3%, 360.1% 증가한 수치로 회사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 연구원. 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중앙연구소 연구원.<금호석유화학>

회사 측은 “경영진이 의료용 NB라텍스 등에 선제 투자를 결정하고 재무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이 기대된다”며 “회사 경영 기반이 견고해졌다고 판단한 박 회장이 스스로 대표이사와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의료용 장갑에 쓰이는 NB라텍스 판매 호조 등에 힘입어 영업이익 7422억원을 올렸다. 10년 내 최고 실적이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경기 회복과 건설, 내구재 수요 강세로 비스페놀A(BPA), 에폭시 등에서 수익 증가가 기대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회사가 앞으로 개선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새 성장동력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체력을 갖췄다”면서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할 경우 주가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차례 경영권 분쟁, 최대 주주 박철완 반격 불씨 제거

박 회장의 이번 결정은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가시화한 측면이 있다. 지난 1월 말 박 전 상무의 주주 제안에는 ▲배당 확대 ▲본인의 사내이사 추천 ▲본인과 우호적인 인물 4인의 사외이사 추천 등이 담겨 있었다. 3월 26일 주주총회 결과는 회사의 압승이었다.

당시 회사측이 제안한 안건 가운데 부결된 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안’이 유일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박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장치가 됐다. 회사 스스로 낸 안건이지만 통과될 경우 이사회 지배력과 경영권이 약화할 수 있어서다.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에도 박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한 것은 주주총회에서 약속한 ESG 경영의 첫발을 내딛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박 회장은 당시 “주주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저를 비롯한 우리 임직원들은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기업가치 제고와 ESG 강화를 통해 주주가치 향상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3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3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숙질의 난은 박 회장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회사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이사회 중심 경영을 요구했던 박 전 상무의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이는 박 회장이 서둘러 지배구조 투명화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박 전 상무는 주총 이후 5일 만에 회사로부터 ‘충실 의무 위반’으로 해임된 뒤 입장문을 통해 “폐쇄적인 문화와 거버넌스에 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박 회장 손을 들어주며 표 대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국민연금 역시 2016년과 2019년 박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에 반대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

먼저 2016년 박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에 반대할 때 국민연금이 내세운 사유는 ‘기업가치 훼손과 과도한 겸임’이었다. 국민연금은 2019년 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때도 배임 혐의가 확정된 박 회장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해지자 총수 일가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를 직접 만나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제시하고, 실적이 개선된 점을 호소해 재신임 분위기를 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석유화학 지배구조가 문제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형 박삼구→조카 박철완, 이어지는 분쟁의 역사

박찬구 회장은 형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금호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의 작고 이후 형제 경영을 이어오다 3남 박삼구 회장이 2010년 경영권 승계 합의를 깨고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 하자 둘로 갈라섰다. 당시 박삼구 회장이 형제들이 합의한 서류 내용을 수정하고, 박찬구 회장의 만류에도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유동성 위기를 맞는 등 갈등이 심화했다.

박 전 상무는 2009년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을 당시 아시아나항공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박삼구 전 회장 편에 섰다. 이듬해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난이 터지자 채권단과 대주주 합의에 따라 박삼구 전 회장이 금호산업·금호타이어 등을 맡고,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경영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상무가 아시아나 경영권을 요구했는데 채권단이 거부했다. 박삼구 전 회장과도 채무 상환 문제 등을 놓고 관계가 어긋났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2% 가까이 확대하며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던 박 전 상무가 이후 박찬구 회장 밑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어색한 동맹관계였던 셈이다.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박 전 상무가 10%로 여전히 최대 주주다. 박 회장은 6.69%,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전무가 7.17% 지분을 갖고 있다. 언제든 경영권 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석유화학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지배구조 개선에 발빠르게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ESG 경영에서 환경 부문에 집중하는 게 흐름이라면 금호석유화학은 지배구조 부문을 먼저 해소하는 게 급선무인 측면이 있었다”며 “실적 상승세가 눈에 띄는 금호석유화학에게 유일한 약점이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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