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왕가 후예가 터키 제국의 뿌리
고구려 왕가 후예가 터키 제국의 뿌리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장
  • 승인 2021.02.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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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선조는 흉노…돌궐이 최초로 ‘투르크’ 이름으로 건국한 나라
히에라폴리스 유적.지평인문사회연구소
히에라폴리스 유적.<지평인문사회연구소>

필자는 동서양에 걸쳐 다이내믹한 역사를 전개한 아시아 기마군단 투르크의 땅 터키를 세 차례 방문한 바 있다. 터키인 외모는 서양적인 특징도 나타나 보이지만, 그들이 가진 정서, 역사의식과 언어, 풍습에는 동양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서양 문화와 아시아 기마군단 투르크가 역사 속에서 조우한 이 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또 생각하게 한다. 

인천공항에서 약 10시간 비행하면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은 인구 1503만명(2017년)으로 유럽·중동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 기원전 7세기경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도시로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제 2 수도로 삼으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동·서로마 분리 후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됐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이스탄불’이라고 불렀다. 

1923년 터키 공화국 성립 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 이스탄불은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친 모습으로, 도시의 3분의 2는 유럽에 있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시아에 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성립되기 전까지 1600년 동안 수도 기능을 했던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수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비잔티움 건축의 걸작품인 아야소피아(성 소피아 사원), 아야소피아를 본떠 지은 블루 모스크, 토프카프 궁전 등 찬란한 문화 유적이 여행객들을 역사 속으로 이끈다. 

사도 바울이 첫 전도 여행 위해 배 탔던 ‘안탈랴’ 

이스탄불에서 남서쪽으로 450km 떨어진 수도 앙카라까지는 비행기로 약 1시간 남짓 걸린다. 앙카라는 아나톨리아 고원 북부의 오랜 도시로 그 역사는 고대 히타이트 시대로 거슬러 가며 이후 페르시아, 아랍, 셀주크 제국, 십자군 등의 세력 아래 있었다.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됐고 터키 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수도가 됐다.

신시가지에는 관공서, 은행, 대학 등이 있고 구시가지에는 좁은 골목의 집들, 바자르, 사원, 유적지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볼거리가 많다. 1402년 앙카라 근교에서 티무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격돌한 앙카라 전투가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은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티무르가 이끄는 티무르 제국군에게 참패해 술탄 바야지드 1세가 포로가 된다. 

티무르군은 여세를 몰아 서부 이즈미르 지역까지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은 이 패배로 50여년간 역사에서 활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앙카라에서 차량을 타고 남동쪽으로 약 4시간 달리면 300km 떨어진 곳에 카파도키아가 나타난다. 이곳도 페르시아, 동로마 지배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땅이 됐는데 동서 문명의 교역로로서 기능을 하던 곳이다.

카파도키아 석굴거주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카파도키아 석굴거주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 지역에는 수백만 년 전 화산 활동과 지진으로 형성되고 오랜 기간 풍화를 거쳐 탄생한 기묘한 암석군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우주의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근에는 로마 시대 이래 기독교인들이 종교 탄압을 피해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 암벽과 바위에 수천 개의 굴을 뚫어 교회, 주거지, 무덤, 성채 등으로 이루어진 지하도시를 건설해서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있다.

카파도키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영화 <스타워즈〉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열기구를 타면 지형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카파도키아를 떠나 남서쪽으로 3시간가량 가면 250km 떨어진 곳에 ’콘야‘가 있다.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이자 11세기 ‘룸셀주크’의 수도로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인 카라반 사라이를 비롯해 웅장하지는 않으나 제국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유적지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은 시아파에서 나온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교단의 발상지로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세마’란 독특한 의식이 인상적이다. 콘야를 떠나 터키의 알프스라는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남서쪽으로 300km쯤 가면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 ‘안탈랴’에 당도한다. 

안탈랴는 기원전 150년경 건설한 도시로 사도 바울이 첫 전도 여행에 나서기 위해 배를 탔던 곳이다. 로마, 비잔티움 제국, 몽골, 베네치아, 오스만 제국 등이 차지했던 땅이어서 헬레니즘, 비잔티움, 이슬람 등 다양한 문화 유적들이 남아있다. 안탈랴에서 북동쪽으로 약 250km정도 거리에 ‘데니즐리’가 있으며 인근에 유명한 ‘파묵칼레’가 있다. 파묵칼레는 세계문화유산인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가 있었던 곳으로 유적지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천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석회암 지역을 관광할 수 있다.

데니즐리에서 다시 동쪽으로 200km를 가서 터키 서부 지중해에 있는 ‘쿠사다시‘에 도착했다. 여기서 가까운 거리에 로마 시대에 소아시아 수도였던 고대 도시 에페소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돼 로마 시대에 지중해 동부 교역 중심지로 발달했던 도시다. 로마 도시 중 가장 완벽하게 구조와 형태를 보전한 유적지로 도서관, 신전, 아고라, 교회터, 원형극장 등이 남아있다.

에페스 유적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에페스 유적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에페소는 성경의 에베소 교회가 있던 곳으로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이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리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모두 터키 서부에 있었다. 교회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지금도 성지순례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에페소 북쪽으로 100km 거리에 있는 이즈미르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편으로 이스탄불로 가서 터키 여행을 마무리했다.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 터키 

터키는 6·25 전쟁 때 미국, 영국 다음으로 한국에 많은 군대를 파병했고 또 많은 군인들을 잃었던 나라다. 한국에 대해 정서적, 역사적 인식도 특별해서 우리를 서슴없이 ‘칸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의 터키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나날이 커지고 있고 해마다 수많은 한국인이 터키를 방문하고 있다. 

터키에 대한 이러한 관심이 과거 유라시아 기마민족사, 나아가 한민족 역사의 흐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조선과 흉노는 3000년 전에는 한 집안” “여진·선비·몽고·흉노는 본래 我의 동족”이라고 했다.

이 코너에서 기술한 바대로 북방사학자 전원철 박사에 의하면 돌궐이 서진하면서 세운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그 왕조가 고구려 왕가 가문인 오구즈 칸의 후예들이다. 터키에서는 흉노가 그들의 선조이며, 돌궐이 최초로 투르크라는 이름으로 건국한 나라로 돌궐 건국년도(552년)가 터키 건국년도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터키와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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