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상상력으로 쓴 김우중 회장 방북기 연재 해프닝
기자가 상상력으로 쓴 김우중 회장 방북기 연재 해프닝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1.01.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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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차에 동승해 몇 십분 나눈 대화를 적당히 짜깁기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신축년 새 아침이 밝았다. 지난해는 유독 지구촌이 고난이 많은 한 해였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 20일 최초 확진자가 나온 전염병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얘기다. 그야말로 2020년은 1년 내내 전 세계가 코로나19 뉴스로 우울한 한 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드디어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있는데,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고대해온 우리나라 국민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백신 접종이 가능할 지 아직도 불분명하다. 소위 K방역이라 해서 모범적인 코로나 방역 국가로 자화자찬하던 대한민국이었는데 한편으론 허탈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분노의 마음이 든다. 향후에라도 철저히 조사해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급기야는 국내 일일 확진자 수가 천 명 규모를 넘나들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5명 이상 모임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단 예외가 있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은 일정 간격의 거리두기를 전제로 50명까지 허용된다. 이러다 보니 혼주나 상주의 경우 하객이나 조문객을 모시기가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최근의 일이다. 오랜 지인 두 명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단체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자녀들의 혼사를 알리는 내용이다. 당초 봄에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연기했다가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부득이 겨울에 거행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새삼 혼주의 딱한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해서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꼭 참석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짜가 임박해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정부의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었다. 그 결과 하객 정원이 최대 50명만 허용된다 하는데 오히려 참석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시원한 해결책이 나왔다. 모바일 청첩장을 자세히 읽어보니 하단에 축의금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필자처럼 참석 여부를 고민하는 하객을 위한 혼주 측의 배려인 듯이 보였다. 이 또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두 지인 모두 지금도 언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본인이 10여년 전에 설립한 인터넷 언론사의 대표로 있다. 다음은 과거 그와 얽힌 에피소드 한 편이다.

예정에 없던 회식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0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26일 오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측과 남포경공업 9개 분야 합작공장 설립, 석탄 등 북한 내 지하자원 공동개발, 제3국 공장 공동건설 등 해외건설 사업 등 남북간 협력사업 3개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1992년 1월 27일, 어느 조간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분이다. 이날 대부분의 신문들이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신문이 하나 있었다. 마치 김 회장이 북한 방문 여행담을 직접 쓴 것처럼 “우리 일행을 태운 특별 열차가 북경역을 빠져 나와 평양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로 시작하는 ‘김우중 회장 방북기’가 박스로 처리되어 제법 큰 사이즈로 실린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1월 26일 오전 11시경부터 한 두 시간 사이에 김포공항에서 벌어진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공항 청사에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룹 홍보실에서는 별도의 기자회견장을 마련하고 배포자료를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기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룹 계열사 홍보실 직원도 총동원됐다. 당시 종합상사 ㈜대우 홍보과장이던 필자도 당연히 그곳에 있었다.

예고한 대로 김 회장을 비롯해 ㈜대우 사장 등 이번 방북에 동행한 사장급들이 참석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방북 성과 발표, 질문과 응답, 사진 촬영 등 기자회견은 대체로 무난하게 끝났다. 회견을 마치고 김 회장을 비롯한 방북 일행들이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김 회장이 기자들의 추가 질문 공세를 애써 피하며 차에 타려는 순간 모 신문의 고참 기자가 회장과 악수를 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어, 어’ 하는 사이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그 기자를 회장도 매정하게 내리라고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서울역 대우빌딩으로 가는 길에 신문사가 있으니 가다가 내려 주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이렇게 그 기자와 회장 사이에 예정에 없던 단독 인터뷰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다른 신문은 싣지 못한 김우중 회장의 방북기다. 그 바쁜 와중에 회장이 직접 쓸 리 없었고, 설사 밤 새워 썼다 해도 특정 신문에만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기자회견 장에서 발표한 내용 외 언론사에 알릴 내용이 극도로 제한돼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방북기를 기자가 직접 쓴 것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회장 차에 동승해 몇 십분 동안 대화를 나눴으니 그 내용이 전혀 터무니 없지는 않으리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이후 몇몇 신문에서도 경쟁적으로 김우중 회장의 방북기를 게재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용에 기자의 상상을 덧붙여 적당히 짜깁기한 것이었다. 그 신문들은 김 회장을 단독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김 회장이 아닌 다른 방북 인사의 방북기가 2개 신문에 실렸다. 한 신문은 상·하 두 편으로, 다른 신문은 상·중·하 세편으로 말이다. 이번에 방북기를 발표한 인사는 김 회장과 동행했던 ㈜대우 사장이었다.

첫 회가 나오고 이를 보고 받은 사장은 그야말로 노발대발했다.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대우빌딩 집무실로 돌아왔을 때, 뒤따라 온 몇몇 출입기자들의 끈질긴 면담 요청을 끝내 거절했던 터라 그 심기는 더욱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북한 방문에 관한 얘기는 공식 발표 이외에 절대 함구를 요청 받아 조심조심 하고 있는데 어처구니 없게 본인의 이름으로 ‘방북기’가 버젓이 보도되다니. 그것도 두 개 신문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연재 시리즈로.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본인이 쓰지 않은 본인의 방북기를 자세히 읽어 본 사장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 좀 봐. 내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저절로 증명됐군. 난 평양에 갈 때 비행기를 타고 갔거든.” 두 신문 모두 “철교 밑으로 흐르는 압록강을 내려다 보니 감회가 매우 새로웠다”는 식의 글을 실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언론들은 김 회장 일행이 몇몇 그룹으로 나눠 시차를 두고 방북한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필자는 이후 그 일로 인해 서먹해진 출입기자 및 언론사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몇 주일간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방북기가 연재됐던 신문 중 한 신문의 출입기자가 홍보팀을 방문해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필자에게 흰 봉투를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이거 사장님께 전달해 주세요.” 아니 이게 웬 일인가. 만 원짜리 현찰이 두둑이 들어 있는 봉투를 전달하라니. 그 돈은 다름이 아니라 사장의 방북기 기고료 22만원이었다. 필자는 그 즉시 사장실로 가서 그대로 보고를 했다. 사장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본인이 쓰지도 않은 글의 원고료를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지 않으면 출입기자가 난처해 질 것이고.” 이윽고 사장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했다. 그 돈봉투를 필자에게 되돌려주며 “문 과장, 오늘 저녁 그 기자와 같이 맥주 한 잔 하지.” 그 날 홍보팀은 예정에 없던 회식을 했다. 물론 그 기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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