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의 섬’ 헝가리엔 기마유목민의 피가 흐른다
‘인종의 섬’ 헝가리엔 기마유목민의 피가 흐른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장
  • 승인 2020.12.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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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유목민 마자르족이 세운 국가…문화적 응집력 강하고 전통 존중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도나우강 야경.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도나우강 야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동부유럽은 ‘훈’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아시아 기마군단이 오랜 기간 활약하던 곳이다. 동부유럽의 핵심 지역인 헝가리는 5세기 훈족의 중심부였고 13세기에는 바투의 몽골 제국이 정복했으며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1세(1520~1566년)가 대부분을 차지해 아시아 기마군단의 영역이 되었던 곳이다. 아시아 기마민족 마자르인들이 유라시아 대초원의 서쪽 끝 부분에서 세운 나라인 헝가리를 방문해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와 대초원 지역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헝가리는 ‘도나우(다뉴브)강’ 중류에 위치한 유럽 국가다. 면적은 9만3000㎢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고 인구는 970만명으로 우리나라의 5분의 1 정도다. 1인당 GDP는 1만3000달러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넓은 평원 지역에 소재하는 헝가리는 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루마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 등 7개 국가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다.

2850km에 달하는 도나우강이 슈바르츠발트에서 시작해 헝가리 북부 국경을 흐르다가 남쪽으로 수도 부다페스트를 지나면서 국토의 중심부를 종단하고 동쪽으로 흑해에 다다른다. 도나우강은 유럽에서 볼가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으로, 예로부터 동서유럽을 관통하면서 교역과 문화 교류의 대통로가 되어온 국제 하천이다. 특히 동방의 여러 민족이 유럽으로 이동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경로 역할을 해 훈, 마자르, 몽골, 투르크 등 아시아 기마유목민족이 유럽 대륙에서 활약하는 역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강이다.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우안의 ‘부다’와 좌안의 ‘페스트’로 나누어진 도시로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문화적 유산이 남아 있다. 부다는 14세기경부터 헝가리의 수도가 돼 왕궁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도시이며 페스트는 상업 지역으로 발달해 온 도시로 두 도시는 1972년 합병해 하나가 됐다.

헝가리 동부에는 ‘푸스타(Puszta)’라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유라시아 대초원으로 BC 2000년경부터 동쪽으로부터 유목민이 이동해온 뒤, 목축 생활을 해온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지역이 경작지로 바뀌어 밀·옥수수·감자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말·양·소들을 대규모로 방목하는 유목 전통이 남아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호르토바지 국립공원이 이곳에 있다.

헝가리는 아시아 기마유목민이 세운 국가

헝가리는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세운 국가이다. 마자르족은 우랄 산맥 부근의 초원 지대에서 목축 생활을 하다 5세기경 동쪽으로부터 또 다른 기마민족의 압박을 받으면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9세기경에는 우랄 산맥에서 볼가강을 따라 이동하다 흑해북안을 지나 카르파티아 산맥과 도나우강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헝가리 대평원으로 이동했고, 아르파드(Arpad) 대제 시대에 현재 헝가리 땅인 카르파티아 분지를 차지해서 영토와 민족이 자리 잡게 됐다. 이 땅은 5세기 중엽까지 훈 제국의 심장부였다.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 때인 10세기경에는 로마 교황이 승인해 기독교 국가가 되고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1241~1242년 몽골 바투의 침공으로 국가가 와해되고 몽골 제국의 영역이 됐지만, 몽골이 해체된 후 14~15세기에는 중부유럽의 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했다.

마자르족 일곱 부족을 상징하는 어부의 요새.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마자르족 일곱 부족을 상징하는 어부의 요새.<지평인문사회연구소>

16세기 들어서는 다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국가인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일부 영토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됐다가, 17세기 말에는 합스부르크가에 편입돼 150년간 지배를 받았다. 헝가리 국민이 끈질기게 독립운동을 계속한 결과, 1867년부터 헝가리 내정은 독립하고 오스트리아가 외교·국방 등을 관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대가 전개됐다.

이 제국은 합스부르크가를 중심으로 오스트리아·독일·헝가리 등 11개 민족으로 구성된 큰 나라를 형성해 당시 프랑스나 통일 독일보다 넓었다. 지배 민족은 독일과 헝가리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으로서 패전해 헝가리 영토는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전쟁 전 28만2000㎢에서 3분의 1 수준인 9만3000㎢로 축소되고, 인구도 1820만명에서 79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헝가리는 약소국으로 전락해 절치부심하다 실지 회복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축국에 가담했으나 다시 패전해 수도 부다페스트가 70% 이상 파괴되고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가 공산화됐다. 1956년 대학생·노동자 등이 주도하는 헝가리 봉기가 발생하고, 이후 체제 전환을 모색하다 1989년 공산 통치가 끝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동로마와 전쟁 선포한 훈족의 왕 ‘아틸라’

헝가리인은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헝가리 민족과 1차적으로 관련된 사람들로 ‘마자르(Magyar)인’이라고도 한다. 마자르인은 1500만명 정도로 900만명 이상이 헝가리에 거주해  헝가리 전체 인구의 약 95%를 차지한다. 나머지 마자르인들은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니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헝가리는 9세기경 아시아 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중부유럽에 세운 국가지만 이에 앞서 AD 374년경 ‘발라미르’가 이끄는 아시아 기마군단 훈족이 볼가강과 돈강을 건너 동고트를 점령하고 드네프르를 건너 서고트를 축출하는 등 유럽을 파죽지세로 공격하면서 들이닥쳤다. 유럽은 공포에 떨었고, 이들의 공격을 ‘신의 징벌’이라고까지 했다. AD 400년경에는 ‘울딘’이 다시 훈족을 이끌고 유럽을 초토화시키자 고트족이 헝가리, 이탈리아 등지로 피난을 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초래되고 세계사와 세계 지도를 바꾸게 된다.

AD 434년에는 훈족의 왕 ‘아틸라’가 등극해 441년 동로마와 전쟁을 선포하고 카스피해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아틸라는 451년 서로마 제국과 전쟁을 선포한 뒤, 갈리아를 공략하고 라인강 건너 메츠를 점령해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지만 453년 게르만 제후의 딸 ‘일디코(Ildiko)’와 결혼한 첫날밤 의문의 사망을 한 이후 훈족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당시 아틸라군은 50만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약 10년간 중부유럽을 중심으로 라인강-발트해-카스피해-흑해-도나우강-지중해를 잇는 유럽 최강의 국가를 건설했다.

아틸라가 죽은 뒤 동로마 제국에 패배한 훈족은 대부분 다시 카스피해 북부, 러시아 남부, 흑해 북안 등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중부유럽에 남았다. 유럽에 남아있던 훈족은 후에 유럽으로 동진해온 마자르족과 함께 헝가리 왕국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들을 공포의 대상인 훈족의 후예로 생각하고 이들의 국가를 ‘Hun(훈, Gary, 영토)’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이로운 수사슴의 전설’이라는 헝가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훈족과 마자르족은 쌍둥이 아들로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한다. 이들은 896년 카르파티아 지역를 정복하고 아르파드 왕조를 세웠으며 아르파드 대제는 스스로 아틸라의 후손이라 주장했다. 이 지역에 정착한 이후에도 일부 마자르족의 기마군단은 계속 서진해 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지역까지 공격과 약탈로 유럽을 유린했다.

마자르족의 유럽 침공에 맞서 동프랑크 국왕 오토 1세는 독일 전역에서 동원한 통일군대를 이끌고 955년 아우구스부르크 근교의 ‘레히펠트 전투’에서 마자르 기마군단을 격파했다. 이 전투로 오토 1세는 중부유럽의 권력을 장악해 962년 신성로마 제국을 창시하고 황제로 등극했다.

마자르족의 약탈 전쟁은 마자르왕 이슈트반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렇게 아시아 유목민이 동서의 교차로인 중부유럽에 정착하면서 유럽 속에 아시아계가 자리 잡은 ‘인종의 섬’이 됐다. 이들은 역설적으로 나중에 몽골, 투르크의 유럽 침공을 저지하는 방패 역할을 하게 된다.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후예, 마자르족

마자르인이 사용하는 마자르어(헝가리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며, 음운이나 형태적 특성이 알타이어족과 유사하고 같은 교착어에 속한다. 유럽연합의 언어 중 헝가리어·핀란드어·에스토니아어 3개 언어만 우랄어족에 속하며 나머지 국가는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아시아 유목민의 후예 마자르인들은 헝가리 대평원에 정착한 후에는 슬라브족, 게르만족 등과 혼혈이 이루어졌으나 아시아인의 언어와 혈통이 유지되고 있다.

헝가리인에게 엿볼 수 있는 유목민 DNA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헝가리인의 대표적인 정서는 일에 대해 강한 집념과 책임감으로 이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려고 한다. 또한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지만 무슨 일이든 빨리 관심을 갖고 빨리 식어버리는 냄비근성도 있다고 한다.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독립적 기질도 보인다.

부다페스트 건국 1000년 기념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부다페스트 건국 1000년 기념비.<지평인문사회연구소>

“헝가리의 기관과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치를 두는 덕목은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이다. 헝가리인들은 지위 자체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리더’라는 개념도 특정 팀을 관리하는 사람 정도이지 자신들을 지휘·감독하는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마자르족은 아시아 기마군단과 마찬가지로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으며 마상에서 몸을 돌려 화살을 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족에 속한다. 고구려·위구르의 벽화에서 바로 이들과 같은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를 ‘파르티안 샷(Partian Shot)’이라고 하는데 유라시아 기마유목민족의 전유물로 적을 공포와 혼란에 처하게 했다.

그들이 공격하려고 하는지, 퇴각하려고 하는지 작전을 알 수 없고, 후퇴하는 줄 알았는데 돌아서서 바로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는 매년 7월 첫째 주말 초원에서 ‘승마의 날’ 축제가 벌어진다. 각국에서 참가한 마장 마술 국제경기가 열리고 헝가리 목동들의 승마곡예가 벌어지는 행사로, 기마유목민들의 문화가 지금껏 남아있는 증거다.

헝가리인은 아시아에서 이동한 민족이지만, 유럽의 토박이들인 슬라브족, 게르만족 등과 많은 혼혈이 이루어져 외모는 유럽의 코커서스인을 닮았으나 눈이 깊지 않고 팔다리도 상대적으로 짧은 특성이 있다. 마자르인에게서는 서양과 다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 성명에서 유럽계와는 달리 성이 먼저이고 이름이 다음에 있다. 날짜도 연-월-일 순으로 쓴다. 또 시대나 지도자에 따라 고유의 샤머니즘에서 가톨릭·이슬람·신교 등으로 환경과 시대에 따라 종교를 바꾸는 융통성도 동시에 발휘했다.

마자르인들은 문화적 응집력이 강하고 전통을 존중한다. 헝가리는 고유의 음악·미술·문학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음악에서는 작곡가 F. 리스트, Z. 코다이, B. 바르토크와 지휘자 G. 솔티 등이 유명하다. 헝가리인 중 13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이중 9명이 과학 분야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부터의 과학 교육과 엘리트 교육의 성과와 기마유목민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한다.

유럽 중앙에 살고 있으나 아시아 기마유목민인 헝가리의 마자르인, 이들은 유라시아에서 대활약한 아시아 기마유목민의 오랜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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