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특종인가
특종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특종인가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0.12.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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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과장이던 시절 경험한 특종과 오보에 관한 에피소드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새롭게 대한민국 미디어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는 서울 상암동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모 언론사 간부로 재직중인 고교 후배와 점심 식사를 했다. 장기화된 코로나19의 여파로 그간 격조해서인지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한 후 헤어질 때 후배가 선물이라며 두툼한 책 한 권을 건넨다. 본인이 몸 담고 있는 신문사의 100주년 기념 책자였다.

집에 와서 대충 훑어보니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언론사가 지난 100년 간 우리나라의 격동기와 함께한 영욕의 세월에 대한 기록물이었다. 100년이면 강산이 열 번 변할 정도이니 국내 기업으로 쳐도 몇 안 되는 실로 장구한 시간이다. 그동안 그 신문은 수 많은 특종을 보도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은 필자가 과거 대기업 홍보과장이던 시절에 경험한 그 신문에 얽힌 특종과 오보에 관련된 한편의 에피소드이다.

Lagos가 Laos로…

1990년대 초 어느 여름 날에 있었던 일이다. 마침 일요일이라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느긋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조간신문을 펼쳐 본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경제면에 ㈜대우라는 굵은 활자가 제목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홍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당시 필자도 신문 활자에 대우의 ‘대’자만 포함되어도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좋은 기사는 흐뭇하게 음미하지만(이 경우는 보도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함), 부정적인 기사이거나 내가 모르는 기사가 보도됐을 경우의 초조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경제면 중간 쯤에 큼지막하게 박스로 처리된 기사제목은 이렇게 기억된다. ‘㈜대우, 라오스(Laos)에 자동차 정비공장 설립’, 소제목으로는 ‘공산권인 미수교국 라오스에서 국내기업 최초로’라는 기사였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홍보과장인 나도 모르는 비밀 해외 프로젝트가 모신문에 특종으로 난 것이 아닌가? “오늘도 집에서 편히 쉬기는 글렀구나” 체념하며 다른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문의 전화 오기 전에 빨리 사실이나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 누구에게 알아 봐야 가장 빨리 사실 확인이 가능한가’, ‘상사에게 보고도 드려야 하는데’ 등 몇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 가며 다시 한번 찬찬히 그 기사를 읽어 보았다. “우 하!하!하!” 그 순간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인 즉 다음과 같다. 1주일 전 쯤 인가 전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대우가 아프리카 지역 자동차 수출을 촉진시키기 위해 나이지리아의 수도인 라고스(Lagos)에 300만불을 투자해 자동차 정비공장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Lagos’는 아프리카에 있고 ‘Laos’는 아시아에 있는데 이를 기자가 혼동한 것이다.

이건 특종이 아니라 오히려 크나큰 오보다. 아니 기사를 쓰기 전, 내게 확인 전화를 하거나 최소한 어제 가판 신문에 그 기사가 있었더라면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여튼 이왕 신문이 배포되었으니 어찌할 도리는 없고. 그 다음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나처럼 휴일 날 아침 집에서 가족과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가 신문을 보았거나 아니면, 일요일 당직 데스크의 연락을 받고 당황해 있을 다른 언론사 출입기자에게 알려나 주어야 겠구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때 집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당시는 핸드폰은 물론 ‘삐삐’라 불리는 호출기도 없던 때라 홍보담당자의 집전화를 출입기자들이 알고 있던 시절이다. 예상대로 그 신문과 경쟁지인 모 일간지의 출입기자다. 수화기 너머로 그 기자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경쟁지에게 특종을 빼앗긴 분노가 담겨 있는 목소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다짜고짜 따지는 듯한 기세다. 나는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뜨린 뒤 황당해 하는 기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기자도 역시 박장대소 하더니 주말 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미안해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전 내내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반응은 매 한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오보를 낸 신문으로부터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을 하고 그 주일 내내 그 신문 출입기자로부터 내심 전화를 기다렸지만 쑥스러웠는지 끝내 오지 않았다. 나도 본인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싶어 후에 만났어도 그 기사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과연 언론사의 특종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특종인가? 필자는 독자를 위한, 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특종이라는 혹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기업 관련 기사일 경우에 그렇다.

이번 경우에도 만일 기사 출고 전 나에게 확인 전화를 했더라면(물론 때때로 불리한 기사의 경우, 회사측이 언론사에 부탁해 기사 출고를 자제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혹은 가판 신문에라도 나왔더라면(기사 내용이 사실일 경우, 타 언론에서 보고 다음날 오전에는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가겠지만) 이런 특종 아닌 오보의 해프닝은 없었을 테고 그래서 일요일 아침 그 신문을 본 독자들을 오도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필자 기억으로는 당시 그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가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타깝지만 그 신문을 읽고 잘못된 정보를 진실인 양 믿고 있었을 독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짜 언론과 Fake News가 판을 치는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된 일은 일부 정치적 기사를 빼고는 모두 사실로 인지하도록 길 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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