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회장 특집②] 삼성 ‘신경영’ 선언…100년 기업 초석 다지다
[故 이건희 회장 특집②] 삼성 ‘신경영’ 선언…100년 기업 초석 다지다
  • 이경원 기자
  • 승인 2020.11.02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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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주요 업적과 경영철학

 

2010년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서 이건희(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회장이 삽을 뜨고 있다.<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은 100년 기업을 향한 피나는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회장에 취임하면서 IT 강국의 초석, 사회 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상생과 동반성장, 스포츠 지원, 소프트 경쟁력 강화 등 그가 한 약속은 100년 기업을 향한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IT 강국’ 초석 마련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당시 한국반도체 인수는 망상이라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았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이 회장은 반도체가 한국과 세계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

이 회장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삼성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2018년 삼성전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했다.

반도체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를 쓴 것도 이 회장이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위기 극복의 리더십...‘신경영’ 선언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철학의 핵심은 ‘인간중시’와 ‘기술중시’로 질 위주의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품질 위주의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다. 이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의 발전에 공헌한다’라는 삼성의 경영이념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문화 변화 선도

삼성은 1995년 한국 기업사에 대변혁을 가져 온 또 하나의 중대 발표를 했다. 전 세계가 무한 경쟁으로 가는 열린 시대를 맞아 이건희 회장이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전격 지시한 것. 이 회장 뜻에 따라 삼성은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연공서열식 인사 기조가 아닌 능력급제를 시행했다.

이건희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다. 삼성의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5000명이 넘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다. 이 회장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 힘썼다. 더불어 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여겨 기술 인력을 중용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기술적 저변을 확대했다.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하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2002년 4월 혁신적인 디자인의 휴대폰 ‘SGH-T100’이 출시됐다. 이 회장은 이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조가비 형태의 이 휴대폰은 ‘이건희폰’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고 글로벌 1000만대 판매라는 기록을 썼다.

이 회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이 회장은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이때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을 발표했다. 내용은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으로 1996년에 이은 ‘제2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 그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

 

협력업체와 공존공생 선언

이건희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삼성은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은 협력업체 육성을 역설했다. “삼성그룹의 대부분이 양산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의 개념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어 삼성 계열사들에 신뢰에 기반해 협력회사와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서는 ‘거래처·납품업체·하청업체’라는 말이 사라졌다.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1996년 신년사에서 협력업체를 ‘신경영의

 

사회공헌은 기업의 사명

이 회장은 사회공헌 활동을 기업에 주어진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이를 경영의 한 축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삼성은 국경과 지역을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제 사회의 재난 현장에 구호비를 지원했다. 이러한 활동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 출범으로 더욱 조직화되고 확대됐다. 특히 기업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첨단장비를 갖춘 긴급재난 구조대를 조직해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맹인안내견 등 동물을 활용하는 사회공헌도 펼치고 있다. 이 회장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임직원에게도 영향을 미쳐 매년 연인원 50만명 이상이 300만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 불우 시설에서 봉사하고 자연환경 보전에 땀 흘리고 있다.


한국을 스포츠 강국으로 만들다

이건희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했다.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탰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일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삼성전자>

1992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삼성은 세계 1위의 기쁨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건희 회장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고민이었다.

이때까지 삼성은 외형 중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 했는지에 집중돼 있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다.

이건희 회장의 위기의식은 현실로 닥쳤다. 1993년 2월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발견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며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냐”며 통탄했다.

같은 해 6월에는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칼로 깎아서 조립하는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테이프는 프랑크푸르트 출장 중이던 이건희 회장에게 전달됐다. 이를 보고 충격에 빠진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대로 있으면 3류, 4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과 철저히 변해야 한다는 그의 고민과 비전이 담긴 것이다. 그것은 양(量)이냐 질(質)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결단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질책과 함께 내부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해 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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