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흥얼흥얼~트로트, 코로나19로 지친 백성을 보듬어주다
누구나 흥얼흥얼~트로트, 코로나19로 지친 백성을 보듬어주다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20.10.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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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어깨 들썩이게 하는 트로트의 역사와 사회학
지난 8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터트롯’ 콘서트에서 가수들이 열창하고 있다.쇼플레이·뉴시스
지난 8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터트롯’ 콘서트에서 가수들이 열창하고 있다.<쇼플레이·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이만훈 언론인] 요즘 어디를 가나 온통 트로트 얘기로 넘쳐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트로트가 이제 TV를 틀기만 하면 나온다. 방송의 트로트 경연 프로를 통해 새로 등장한 트로트 스타들의 인기는 아이돌을 능가해 얼굴만 비춰도 시청률 10~20%는 보장받을 정도다. 포맷 상으로는 트로트와 전혀 관련 없는 방송 등에서도 이들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다 이들 덕분에 한물갔던(?) 기존 트로트 가수들도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레전드’ 대접을 받는다.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팬클럽과 팬덤 경쟁 문화가 트로트를 통해 중·노년층까지 확산됐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찬또’ 이찬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트로트를 성인가요라고 불렀다. 이는 트로트는 암묵적으로 어른들이 듣는 노래라고 규정지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수 있던 노래인 그 트로트가 요즘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거듭나고 있다. 얼마 전 패스트푸드점에 갔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함께 온 부모님께 ‘쟤가 이찬원이야’하는 소리를 들었다. 고교생도 알아보는 트로트 가수가 됐다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 때 아닌 코로나19 습격으로 ‘잔인한 세월’을 간신히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백성들한테 트로트는 ‘코로나블루’를 예방하는 백신이자 치료제다. 우리에게 트로트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위로다. 역사적으로도 트로트는 이 풍진(風塵) 세상을 버텨낼 수 있게 일상에 지친 우리 어깨를 다독여준 정서적 동반자, 친구였다. 나라를 잃고 일제강압 속에 신음할 때나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을 때나, 째지게 가난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 채 군사독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시절에도 트로트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트로트를 우리 삶의 애환(哀歡)이 담긴 노래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심지어 ‘고무신 뽕짝’이라고까지 비하되고 무시되면서도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이 지금까지 35년, 40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트로트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각종 선거 때마다 여야, 무소속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후보들이 로고송으로 트로트를 빌려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권자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트로트만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고 보면 트로트에 대한 국민적 사랑과 열망은 엄청난 문화파워이기도 한 셈이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뉴시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뉴시스>

#. 트로트는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거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를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독특한 음계를 지닌 노래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중가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양식(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다. 당시에는 특별한 양식명 없이 ‘유행가’ ‘유행소곡’ 등으로 불렸다. 트로트란 이름은 1914~17년 미국에서 생겨난 4분의 2박자 계열의 댄스리듬 ‘폭스트로트(Fox-Trot)’에서 비롯됐다. 트로트는 스탠더드 팝이 대중화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양식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굳어졌는데 ‘뽕짝’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는 1929년 이정숙이 부른 ‘낙화유수’(현재는 ‘강남달’)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영화는 기생을 테마로 한 것이었지만 주제가는 양반집 딸들도 즐겨 불러 젊은이들이 낮에는 ‘봄노래 부르자’(뒤에 ‘봄노래’로 개칭)를, 밤에는 ‘낙화유수’를 불렀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정숙이 가요 전문가수가 아니었던 탓에 동요처럼 꾸밈없이 불러, 전문가들 사이에선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현재의 ‘황성옛터’)을 최초로 꼽기도 한다. 이태 뒤에 나온 고복수의 ‘타향’(현재의 ‘타향살이’)을 비롯해 수많은 명곡들이 쏟아져 나와 대중가요 황금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 시기에 고복수·이난영·장세정·남인수·백년설·김정구·이인권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1935년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트로트 가요의 정형(定型)으로, 오늘날까지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때부터 트로트는 단조 5음계를 바탕으로 주로 2박자에 특유의 ‘꺾기’ 등 꾸밈음을 지닌 노래로 정착됐고, 이 같은 음악적 관행은 1970년대까지 어느 정도 유지됐다.

#. 5음계 4분의 2박자 노래는 우리의 전통 민요와 달라 원래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다. 우리의 전통 민요는 기본적으로 박자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대신 장단을 중시하는데, 장단은 폐활량, 즉 호흡에 의해 시간을 나누는 단위다. 이에 반해 서양 개념인 박자는 심장의 박동에 따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다. 따라서 굳이 우리의 장단을 서양식 박자의 개념으로 보자면 우리 민요의 70%를 차지하는 굿거리장단은 8분의 12박자, 나머지 30%인 세마치장단은 8분의 9박자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굿거리장단이나 세마치장단이나 모두 3으로 쪼개지기 때문에 우리는 태생적으로 3박자 리듬에 익숙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때 지속적인 반복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로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노래’로 정착하기 시작했으니 그 완성형이 바로 ‘목포의 눈물’이다. ‘목포의 눈물’이 나오기 전에 히트했던 ‘황성의 적’과 ‘타향’이 ‘요나누키’ 단음계의 4분의 3박자(*)였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더 익숙한 4분의 3박자 노래를 거쳐 4분의 2박자 노래로 정착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일본 ‘엔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가마사오(古賀政男·1904~78)는 ‘요나누키’ 단음계를 사용하면서도 2박자 계열의 다른 엔카와는 달리 3박자를 채용한 이른바 ‘고가멜로디’를 주로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의 노래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는 서울에서 선린상고를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조선에서 들었던 민요의 뛰어난 멜로디가 작곡에 큰 도움이 됐다”며 “만일 소년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트로트와 엔카의 관계에 관해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68년 출시된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앨범사진.지구레코드·뉴시스
1968년 출시된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 앨범사진.<지구레코드·뉴시스>

#. 트로트는 해방 직후의 혼란과 심지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이 땅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행이 변하듯이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여서 트로트 역시 부침을 거듭해왔다. 특히 시대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을 감안하면 트로트의 성쇠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비춰주는 잘 닦인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미군의 주둔과 더불어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기 시작해 1960년대 초 새로운 미국식 대중가요인 ‘노란 샤쓰의 사나이’ 등 스탠더드 팝계열의 노래가 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트로트는 쇠락하는 조짐을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1964년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가 연속 35주 1위를 하며 공전의 히트를 치자 트로트가 다시 가요계의 대세가 됐다. 이듬해 ‘한일협정’의 조인으로 인해 반일감정이 높아진 가운데 ‘동백아가씨’가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자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트로트의 부활을 이끌었다. 이미자 외에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 ‘바다가 육지라면’의 조미미, ‘가슴 아프게’의 남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의 나훈아, ‘물새 한 마리’의 하춘화 등도 눈부신 활약을 했다. 작곡가로는 이미자·남진·문주란·하춘화·나훈아 등을 멤버로 이른바 ‘박춘석 사단’을 만들어 활동한 박춘석과 백영호가 인기곡 제조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1969년 연말 가수청백전에서 ‘커피 한잔’ ‘님아’ 등을 부른 펄시스터즈가 가수왕이 됨으로써 대중가요의 판세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외국에서 활동하던 팝 계열의 패티김과 윤복희도 귀국해 이 같은 흐름에 가세했다.

*트로트와 왜색시비: 리듬의 측면에서 한국 전통음악에선 3박 계열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 트로트는 2박과 4박 리듬이 주로 쓰인다는 점, 전형적인 트로트의 경우 일본 전통 유행가인 엔카의 이른바 ‘요나누키 단음계’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트로트는 ‘일본 엔카의 아류’라서 ‘민족의 원수’인 일본의 노래를 흉내 내는 것은 수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요나누키(よなぬき)’란 ‘4음과 7음을 뺀다’는 뜻으로 용어 자체가 이미 서양식 7음계를 전제한 신조어인 만큼 이를 쓴다고 해서 왜색 운운 하는 것은 난센스다. ‘요나누키 단음계’는 ‘미야코부시(みやこぶし·都節)’라는 이름의 음계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미야코부시’라는 용어 역시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등장한 신조어로 서양 음계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서구식 창가와 유행가를 의식한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야코부시’라는 용어 자체가 ‘도시음계’라는 뜻으로 반음이 결여된 ‘시골음계’라는 뜻의 ‘이나카부시(いなかぶし·田舍節)’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었다. ‘미야코부시’ 혹은 ‘요나누키 단음계’는 당시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나아가 서양의 단조 화음이 뒷받침된 도시풍의 음조였던 것이다. ‘요나누키 단음계’는 동양의 5음계적 선율이 서양식 단조 음계 선율과 화성에 적응하는 서구화 과정에서 생겨난 일반적인 음계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일본을 통해 서양의 기능화성을 배운 식민지 조선의 대중 음악가들의 작품, 특히 ‘목포의 눈물’ 같은 느린 단조 선율에서 이러한 ‘요나누키’ 단음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결국 트로트에 있다는 ‘왜색’이란 것은 그 자체가 ‘양색’인 셈인데 발라드, 록 등의 형식을 따른 노래를 ‘양색’이라고 시비를 걸지 않으면서 트로트에만 뭐라고 하는 건 지독한 편견의 족쇄일 뿐이다.

여기에다 ‘뽕짝’이라는 별칭을 낳게 한 2박 내지 4박의 리듬도 ‘왜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양색’이라는 게 맞다. 그것은 19세기의 케이크워크(cakewalk)나 래그타임(ragtime), 20세기 초반의 폭스트로트(foxtrot)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서구 댄스홀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의 음반 산업을 중심축으로 전 지구적 대중음악 문화가 형성되면서 공유케 된 새로운 의미의 음악적 공통 관습(common practice)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뽕짝’ 리듬은 일본풍 유행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세계의 유행가에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리듬이었던 셈이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요즘도 우리의 ‘뽕짝’과 같은 감성의 장르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데, 타이완의 ‘타이위거(台語歌)’, 태국의 ‘룩퉁(look tung)’, 인도네시아의 ‘당두트(dangdut)’ 등이 그것이다.

트로트 3인방으로 불리는 송대관(왼쪽부터), 설운도, 태진아가 합동 공연을 하고 있다.뉴시스
트로트 3인방으로 불리는 송대관(왼쪽부터), 설운도, 태진아가 합동 공연을 하고 있다.<뉴시스>

#. 1970년대는 초반부터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영향을 받아 대학가를 중심으로 히피로 상징되는 저항문화와 함께 포크, 록 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트로트가 위축됐다. 하지만 1975년 말 불어 닥친 대마초 파동으로 윤형주·신중현·이장희·김추자 등 20여명이 구속되고, 11명이 불구속, 10명이 훈방조치를 받았는데 대부분 몇 달 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지만 일체의 방송과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출연금지’처분이 내려졌다. 여기에다 퇴폐풍조를 없앤다는 명목아래 무려 227곡이나 ‘금지곡 딱지’를 붙여 퇴출시켰다.

이 때문에 청년문화의 첨병 노릇을 하던 포크음악과 록밴드가 직격탄을 맞아 퇴조하고, 대신 당시 이미 한물갔던 트로트와 스탠더드 팝 계열의 음악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금지곡에는 이미자를 비롯해 남진·나훈아·하춘화 등 잘 나가던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들도 포함됐으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가수들은 아예 가수로서의 활동을 못하게 해 결국 ‘빈 공간’을 트로트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방송사 PD들이 “틀 곡이 없다”고 푸념할 정도(1975년 12월 26일자 일간스포츠)였다. 이 때문에 빈자리를 흘러간(?) 노래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고,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1975년 말 나온 송대관의 ‘해뜰 날’로 당시 상황(오일쇼크 위기이기도 했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가사로 졸지에 스타가 됐고, 역시 무명이었던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다시 발표(1차 1972년)해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점프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쌍두마차(**)가 각자 ‘오빠부대’를 동원해가며 계속해 트로트를 이끌고 있던 터라 상승효과가 대단했다. 최헌·윤수일 등 록그룹 출신가수들이 트로트 선율에 록 사운드를 결합한 ‘앵두’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 ‘록 트로트’(당시엔 트로트 고고라고 했다)를 선보이며 새롭게 인기몰이를 한 것도 이 때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은 1970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린 가수 김해일의 ‘돌아와요 충무항에’다. 김성술(김해일 본명) 작사 황선우 작곡의 이 노래는 1971년 김해일이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사고로 요절한 뒤 작곡가 황선우가 이듬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개작해 조용필 등 여러 가수에게 다시 취입시켰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6년 조용필이 다시 록 분위기로 리메이크해 빅히트를 쳤다. 1972년 첫 번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어쿠스틱 기타 하나에만 의지한 채 세련되지 못한 ‘꺾기’와 콧소리로 불렀지만 부산의 다방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단은 ‘무명의 로커’였던 조용필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가 1975년 재일동포, 특히 조총련계 동포의 고국방문에 맞춰 노래 말미에 있는 가사 ‘그리운 내 님이여’를 ‘그리운 내 형제여’로 고치고, 리듬도 4분의 2 박자에서 4분의 4박자 8비트 곡으로 뜯어고친 뒤 전자기타와 드럼을 앞세운 록 스타일로 선 보이면서 경쾌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노래라는 평과 함께 조용필을 일약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 시켰다.

**남진과 나훈아는 당시 야당의 40대 기수였던 목포(신안) 출신의 김대중, 부산(거제)출신의 김영삼의 대결과 오버랩 되면서 영호남 대결의 양상으로까지 번져나가 남북으로 잘린 한반도를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경을 연출했다. 심지어 꼬마들 사이에서도 “남진이냐, 나훈아냐”를 놓고 다툴 정도였다.

#. 1980년대 들어 발라드가 풍미하는 가운데에서도 방송금지가 풀린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 ‘미워 미워 미워’ ‘허공’ 등을 들고 나오며 화려한 컴백을 했고, 트로트메들리 ‘쌍쌍파티’로 ‘고속도로 여왕’이라 불리던 주현미가 ‘비 내리는 영동교’를 시작으로 잇단 히트를 하면서 트로트를 이끌었다. 특히 주현미는 ‘한이 서린’ 트로트를 불렀던 이미자와는 달리 청량하고 밝은 음색에 고난도의 ‘꺾기’로 간드러진 창법을 구사함으로써 세련된 이미지를 주는데 성공했다. 주현미 뿐만 아니라 문희옥·현철 등도 가사에서는 관행적으로 슬픔의 표현이 남아있기는 하나 기교를 강화한 꾸밈음으로 가사를 압도해 슬픔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게 했다.

이 같은 변화에도 이미 트로트는 ‘촌스럽다’거나 ‘중년, 노년만 즐기는 장르’라고 각인돼 좀체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93년 발표한 대표곡 ‘하여가’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 속에서 김수희가 ‘애모’로 인기가요순위 1위를 차지 할 때나, SM·YG·JYP 등 대형기획사를 통해 등장한 숱한 아이돌의 바람을 헤치고 장윤정·박상철·박현빈 등이 ‘어머나’ ‘무조건’ ‘곤드레 만드레’ 등 트로트로 2000년대 가요계에서 주목을 받을 때도, 또 인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와 빅뱅의 대성이 각각 ‘로꾸거’와 ‘날 봐 귀순’을 발표해 노래방의 ‘골든 래퍼토리’로 만들었을 때도, 원로(?)가수 김연자가 EDM 트로트 ‘아모르 파티’로 장안의 화제가 됐을 때도 한결같이 ‘반짝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뉴시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뉴시스>

#. 이번 트로트 열풍은 뭔가 다르다. 중장년층은 물론 1020세대도 트로트를 즐긴다. 트로트 하면 촌스럽다며 ‘트로트=고속도로 가요’로 치부하던 공식이 깨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일회성이 아니라 상당기간 지속되리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전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트로트에 대한 수요가 늘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자고로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즐겨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고구려 편’에 ‘그 백성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해 마을마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남녀가 떼 지어 노래하며 놀았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聚 相就歌戱)’고 돼 있을 정도다. 일본산 가라오케를 노래방 문화로 압도하고 있는 거나, 관광철이면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전국을 들썩이게 하는 힘이 그 증거다. 한마디로 흥이 많다.

그런데 한편으론 역사적으로 우리만큼 전쟁을 많이 겪은 민족도 흔치 않다. 기록된 외침(外侵)만 938번이고 크고 작은 내전(內戰)까지 치면 줄잡아 2000여 번이나 된다니…, 가깝게 6.25전쟁을 상기할 필요도 없이 민중의 가슴에 쌓인 한(恨) 또한 민족의 무의식에 각인돼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웃으면서도 슬프고, 울다가도 웃지 않으면 살아 버틸 수가 없었을 터. 때문에 슬프면 슬픔을 잊으려 노래를 부르고, 즐거우면 또 즐거워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목도하듯이 이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트로트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치 경제적 혼란 등으로 정말 살아내기가 힘들고 짜증나는 요즘 트로트가 다시 뜨는 저변의 까닭이다.

둘째, 이번 트로트 열풍은 TV 경연프로그램을 통해 촉발됐고, 방송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요의 특성상 가장 영향력을 갖는 게 방송, 그 중에서도 특히 TV방송의 지지여부인데 2019년 TV조선에서 ‘내일은 미스트롯’을 방영하며 3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해 1등을 한 송가인이 인기몰이를 한데다, 때마침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에게 ‘유산슬’이라는 트로트가수 ‘부캐’를 부여하며 트로트 붐을 일으켰다. 이어 올해 1월부터 11부작으로 방송된 ‘미스터트롯’이 전작을 넘어서는 공전의 인기몰이를 하자 지상파 방송들까지 합세해 분위기를 한껏 달구고 있다. SBS의 ‘트롯신이 떴다’,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 ‘최애엔터테인먼트’ ‘트로트의 민족’, KBS의 ‘트롯전국체전’ 등이 이미 시작했거나 방송예정이다. 여기에다 TV조선이 ‘미스터트롯 톱7’을 앞세워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 학당’으로 열기를 이어 가는데 이어 ‘미스트롯 시즌2’를 준비 중이고, MBN도 ‘보이스트롯’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방송들은 경연의 경우 억대 상금(*)에다 음원발표와 전국콘서트 지원 등을 내걸고 있어 일반인은 물론 기존 트로트 가수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가수, 스포츠 스타, 개그맨, 배우 등 여러 분야의 셀럽들이 지원해 트로트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미스터트롯 톱7’의 경우에서 보듯이 방송사가 나서서 홍보는 물론 전문적으로 프로듀싱하면서 단순히 노래만이 아닌 ‘보는 트로트’를 세련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동안 트로트를 외면했던 10~20대까지 전 연령층에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방송이 트로트 붐을 촉발시켰고, 그로 인한 열풍이 다시 방송을 끌어들이면서 트로트의 ‘선순환 확장’이 지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른다. 흥을 돋우기 위해서 부르기도 한다. 잘 부르건 못 부르건 관계없이 누구나 흥얼거리는 노래가 트로트다. 그래서 트로트의 생명력이 길다. 하지만 트로트는 아무나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제대로 멋들어지게 부르려면 선천적으로 좋은 음색과 풍부한 성량, 넓은 음역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 굉장히 어려운 테크닉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꺾기’와 ‘떨기’ ‘지르기’ ‘긁어대기’ 등 기교와 꾸밈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귀곡성(鬼哭聲) 같은 가성도 동원해 세게, 약하게 밀고 당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야 한다. 트로트는 애당초 악단 연주에 맞춘 공연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립싱크 같은 잔꾀는 아예 통하지 않아 라이브 능력이 없으면 가수로서 존재할 수 없다. 요즘 대세를 이루는 트로트 가수들의 경우 다른 장르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기초를 단단히 한 뒤 합류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라 기존 선배들보다 오히려 기량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셋째, 트로트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17년 음악 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음악산업 시장은 5조원 규모로 이 중 트로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인 5000억원 밖에 안 된다. 이는 트로트가 장르별 분류에서 100위권 안에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 수치로, 노력 정도에 따라 역으로 그만큼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매년 국내에서 열리는 지자체 축제만 어림잡아 800회가 넘고 기업이나 학교 등 행사까지 합치면 트로트 가수들이 활동할 공간과 기회는 결코 작지 않다. 거기에다 유튜브나 음원시장도 널널하게 열려 있다.

오늘날의 트로트는 더 이상 눈물만 쥐어짜는 그런 노래가 아니다. 사랑과 이별,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과 애수가 담긴 내용이더라도 대체로 노래 분위기는 아주 신나며, 음악적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트로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변신(*)을 하고 있다. 록 트로트, 발라드 트로트, 댄스 트로트 등등. 예를 들어 장윤정의 경우 ‘어머나’ ‘짠짜라’는 음악적으로도 트로트 색깔이 강한 ‘세미 트로트’지만, ‘장윤정 트위스트’ ‘올레’같은 곡은 창법만 빼고 보면 일반적인 댄스, ‘어부바’ ‘사랑아’같은 곡은 ‘트랜스’와 가깝다. 이는 K-POP과 마찬가지로 트로트 가요도 해외에서 먹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TV방송의 트로트 경연프로마다 초등생 어린이부터 80대 배우까지 수만 명씩 몰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기 트로트의 음계는 장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뺀 오음 장음계(도레미솔라)와 단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뺀 오음 단음계(라시도미파)가 쓰였으며, 박자는 듀플미터(Duple metre·2박 계열)를 자주 사용했다. 특히 이 같은 박자 때문에 ‘뽕짝’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음계와 박자에서 오는 독특한 느낌(‘뽕끼’·‘뽕필’)이 있어서 사람들은 전주만 듣고도 ‘트로트스럽다’는 인상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트로트는 5음계뿐 아니라 7음계와 발라드, 락, 댄스 등 다양한 리듬을 접목해 만든다. 요즘 인기 트로트 곡들에서는 ‘뽕 짝 뽕 짝 뽕 짜자 뽕 짝’하는 트로트 특유의 리듬패턴을 들을 수 없다. 굳이 BPM(Beats Per Minute:음악의 속도를 숫자로 표시한 것으로 수가 클수록 빠르다. 분당 기준)를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정통트로트는 60~80, 세미트로트 90~110, 댄스트로트 120~130, 메들리트로트(일명 ‘뽕짝 트로트’)는 140 이상 정도로 나눌 수 있는 정도다.

특히 1990년대부터 지역별 특징이 잘 드러나는 가사, 사투리 억양을 연상시키는 음정, 국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목소리를 길게 떠는 창법 등 한국적인 요소를 이용해 향토적이면서 구수한 느낌을 주고 추임새, 감탄사가 많고 음의 높낮이 변화가 적으며 길이 변화가 크다. 또 정통 트로트에서는 그리 선명하지 않던 ‘싸비(후렴구)’가 강조되는 것도 큰 변화다.

흔히 실용음악에서는 서양의 7음계에서 ‘파’와 ‘시’를 뺀 음악 형식을 ‘펜타토닉 스케일’이라 하고, 온전한 7음계를 ‘메이저 스케일’이라고 한다. 미국의 ‘컨트리 뮤직’이 우리의 트로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장르지만 ‘뽕끼’가 없고 감성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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