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계급장' 따지는 회사는 망한다
CEO가 '계급장' 따지는 회사는 망한다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0.10.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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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가감없이 CEO에 전달하는 게 홍보맨 역할
CEO는 민심, 여론, 소비자의 반응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낮에는 아직 더위가 여전하나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었다. 지난해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가 봄, 여름을 지나더니 이제 가을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국민들이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에 빠져 있다.

사람들의 모임도 줄어들고 이동 또한 제한적이다 보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전반적인 산업 분야가 장기 침체기에 들었다. 민족 명절인 추석 연휴도 즐겁기는커녕 코로나 걱정으로 분위기가 썰렁하다.

이런 와중에 여의도 정치계는 여전히 시끄럽다. 여야가 국가 중요 사안을 두고 갑론을박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모 국무위원 아들의 군 복무 시절 휴가 연장이냐 탈영이냐를 놓고 어찌 보면 팩트 위주의 간단한 이슈에 대해서도 몇 달 동안 찬반 여론이 비등하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이를 기화로 유튜브에서는 가짜 미디어와 사이비 언론인들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책 결정권자들은 자기들이 세운 담장 안에만 있는지 세상 돌아가는 여론에 무심한 듯 하다. 3년 전 촛불을 들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염원하며 광화문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의 여망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CEO들은 모름지기 민심, 여론, 소비자의 반응 등을 항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가까운 거리에서 가감없이 제대로 전달함으로써 CEO가 신속하고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 이른바 홍보맨들의 책무이다.

필자가 대기업 해외광고 실무자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홍보, 광고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본부장으로부터 급한 호출을 받았다. 연유 인즉, “내년도 미국 신문과 잡지에 게재할 광고 시안을 CEO에게 최종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결국 CEO 결재를 받는 일에 본부장이 말단 직원인 필자를 대동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전혀 없던 일이라 자못 긴장한 체 본부장 뒤를 졸졸 따라 CEO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본부장이 필자를 굳이 배석시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금융기관 출신인 CEO는 매사가 철두철미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결재 받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윽고 본부장이 미국 언론에 게재할 광고 시안에 대해 브리핑을 끝마쳤다. 그런데 CEO의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다.

“이 시안들은 너무 비약적인 광고라 생각해요. 잘 이해도 안 되고… 과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일순 당혹한 본부장은 필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나보고 다시 설득하는 설명을 드리라는 무언의 지시다.

지도자가 자신의 최초 생각을 과감히 버리듯…

필자는 호흡을 가다듬고 “실무자인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미국 현지의 광고대행사와 함께 현지 시장 및 소비자 조사,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 시안 사전 평가 등 수개월 동안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과정을 간략히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서 배에 잔뜩 힘을 준 다음 마지막 발언을 했다. “이 광고의 대상은 미국 소비자입니다. 그래서 애당초 많은 비용을 감수하며 세계적 명성이 있는 미국 광고대행사로 하여금 제작을 맡긴 것입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광고를 한국인의 시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사료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후 필자는 CEO로부터 ‘이놈! 젊은 친구가 매우 건방지군. 까마득한 대리 직급인 주제에 감히 하늘 같은 부회장의 판단을 무시하다니~’라는 식의 호통이 있을까 봐 조마조마 했다. 심지어 ‘까짓거. 만일 이 일 때문에 질책을 받으면 과감히 사표를 내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지’ 등등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호통은 커녕 CEO의 껄껄 웃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나 보다는 실무자인 자네가 전문가이니 자네 말이 맞겠지”… 결국 그 광고시안은 원안대로 통과되었고 이듬해 미국 전역에 배포되는 신문과 잡지에 대대적으로 실리게 되었다. 

CEO가 필자의 당당히 보고하는 자세나 진지한 태도를 보고 신뢰를 한 것도 있겠지만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를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국인의 손으로 만들었으며, 미국인을 상대로 사전 평가를 시행했다’라는 보고 내용이 설득의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즉, CEO가 본인의 생각보다는 실무자와 광고수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를 정치에 비유하자면 지도자가 자신의 최초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민심과 여론의 향배를 지지한 것이리고 생각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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