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판신문에서 사라진 기사는 어디로 증발했나
가판신문에서 사라진 기사는 어디로 증발했나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0.08.03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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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기억에 남는 광고 에피소드 한 편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사이트코리아=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날씨가 더워지면 소멸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의 희망적인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지난 겨울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얘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7월 말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이미 1500만명을 넘어섰다.

일명 K방역으로 모범적인 국가라고 자타가 말하는 우리나라도 미주나 유럽국가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 아직도 매일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찬 바람이 부는 가을부터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우리를 여전히 두렵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상 생활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마스크 착용을 일상화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힘겹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며칠 전 서울 광화문에서 모 언론사 고위 임원과 점심 식사를 했다. 지난 겨울에 만나고 한여름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으니 봄은 훌쩍 건너뛴 셈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다가 급기야 최근 국내 언론사들의 경영 사정을 듣게 되었다. 상반기까지는 지난해 말 책정된 광고 물량으로 이럭저럭 버텨왔는데 하반기가 큰 걱정이라고 한다. 여건이 악화된 기업들이 광고비를 대폭 삭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모 유력 일간지에서조차 소위 ‘대포 광고’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대포 광고'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광고 마감시간이 임박했는데도 게재할 광고가 없을 경우, 광고주와의 계약이나 사전 동의 없이 이전에 사용했던 광고 필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용어다. 즉, 광고 지면을 백지로 내보낼 수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무료 광고를 의미한다. 코로나의 여파로 대부분의 업종도 그렇지만 그만큼 언론사 사정이 열악해졌다는 말이다.

“가로 몇 센티, 세로 몇 센티 기사입니다”

이보다 근본적으로 더욱 심각한 일이 있다. 최근 보도된 광고와 기사의 경계선이 모호해졌다는 기사 때문이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발표한 내용인데 사실상 광고인데도 기사인 것처럼 심의를 통해 판단한 이른바 ‘기사형 광고’가 지난해 한 해 동안 무려 5000건이 넘었다고 한다. 그것도 국민의 신뢰가 높았던 유력 매체들의 비중이 월등 높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광고와 기사가 확실히 구별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니 홍보인의 한 사람으로써 씁쓸한 기분이다.

다음은 과거 필자가 경험한 광고를 두고 벌어진 에피소드 한 편이다.

때는 1980년대 중반. 필자는 대우그룹 홍보실에 해외홍보팀 소속으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했다. 3개월간의 수습 기간 동안 외국 언론을 상대하는 해외홍보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도 배웠는데 이것이 바로 국내 언론의 가판신문 보는 방법이었다(‘가판’이란 가두판매의 줄임말로 내일 아침 신문을 전날 저녁 가두판매대에서 팔고 있어 불린 용어다. 대부분 기업의 홍보실에는 가판신문이 저녁 7~8시 배달됐다.).

홍보실에 소속된 대리 이하 직원들은 담당 업무에 상관없이 매일 돌아가며 소위 가판 당직을 서야 했다. 당직의 임무는 사무실로 배달되는 가판신문을 세심히, 신속히 일독하고 그룹 관련 기사 중 잘못된 기사나 불리한 기사를 홍보실 대언론 담당팀의 상사 및 홍보실 임원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팩스가 없던 시절이라 전화상으로 기사의 제목 및 내용을 불러야 했다. 기사 전체 크기, 제목의 크기 및 글자체 등도 보고해야 했다. 처음 전화로 가판 보고를 할 때는 쩔쩔맸다. ‘몇 단’이라는 용어가 생소해 가로, 세로 길이를 자로 재서 “부장님! 가로 몇 센티, 세로 몇 센티 기사입니다”라고 당당히 얘기했다가 무참히(?) 혼난 적도 있다. 어쨌든 사무실과 한 시간 정도 시차를 두고 부장의 집으로 전달되는 가판신문 뭉치가 따로 있었기에 그 동안만 기사 형태를 그림을 그리듯 설명하면 됐다.

“기사면 외에 광고면도 유심히 살피라”

당시 홍보 초년병인 필자에게 생소했던 일은 전날 저녁 가판신문과 다음 날 아침 신문이 전혀 다른 신문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밤새 새로운 기사가 들어가 내용과 편집이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들의 불리한 기사가 다음날 지면에서 사라지거나 크기가 대폭 축소되거나 주요 면에서 기타 면으로 빠지고 제목이 진하고 큰 글자체에서 작은 글자체로 바뀌는 것이었다. 즉, 눈에 잘 띄게 편집했다가 잘 안보이게 바뀌는 것이다.

가판 당직을 선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로 기억된다. 모 신문에서 어느 대기업의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기사를 봤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경제면 한복판에 박스 기사로 처리돼 쉽게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경쟁 기업 홍보실에서 이 기사를 과연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다. 다음날 아침, 기사가 어떻게 바뀌었나 그 신문을 펼쳐봤다. 와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기사는커녕, 문제의 면에 실려 있던 다른 기사들도 몽땅 사라져 버렸다. 대신 바로 그 자리에 그 기업의 제품 전면광고가 버젓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유명 여배우의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이 있는, 그것도 컬러 광고로.

솔직히 필자는 기업의 반론권을 추가하는 등 기사 몇 줄 바뀌거나 제목의 톤이 약화되거나 아니면 그 기사만 삭제되는 것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면 전체가 사라지다니. 그렇다면 그 면에 있던 다른 기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그 기업 홍보실의 막강한 파워를 체감하기에 앞서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신문을 보고 있을 일반 독자들이 측은하게 여겨졌다. 필자도 홍보 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터였다.

기사가 기업 제품 전면광고로 대체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국내홍보팀으로부터 별로 신경 써야 할 기사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여느 때처럼 긴장을 풀지 않고 꼼꼼히 가판 신문을 봤다. 예측대로 별 특이 사항이 없다고 부장께 보고하고 퇴근 준비를 서두를 때였다. 요란한 사무실 전화가 야속하게 필자의 발길을 잡았다. 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00신문을 자세히 살펴봐. 우리그룹 최고경영자 기사가 실렸대.”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쿠, 다른 것도 아니고 최고경영자 가족 관련 기사를 못 봤다니 큰일 났구나’ 하며 문제의 신문을 다시 샅샅이 살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필자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정말 꼭꼭 숨었다. 필자는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고 말았다. 그제서야 부장은 기사 본문이 아닌 광고면을 살펴보라고 했다. 그것은 신문 절반 크기의 광고였다. 어느 여성월간지의 목차 스타일로 구성된 다음 달호 발간 예고 광고였다. 바로 그 목차에 최고경영자 가족 관련 기사 제목이 크고 진한 활자로 예고돼 있었다. 그 광고가 다음날 대체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기사가 실린 여성월간지가 시중에 제대로 배포됐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날 이후 그룹홍보실 가판 당직자들은 새로운 지시를 받았다. “앞으로 기사면 이외에 광고면도 함께 유심히 살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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