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퇴직 근로자, 업무상 재해 명백하지만 산업재해 배상금 한푼도 못받은 이유
현대차 퇴직 근로자, 업무상 재해 명백하지만 산업재해 배상금 한푼도 못받은 이유
  • 한민철 기자
  • 승인 2020.07.31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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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업무상 재해에 대해 인과관계 인정...법원 "업무상 재해 명백하지만 손해배상 채권 소멸시효 5년 지나"
현대자동차 퇴직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법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소멸시효 등으로 인해 현대차로부터 산업재해 배상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뉴시스
현대자동차 퇴직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법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소멸시효 등으로 인해 현대차로부터 산업재해 배상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한민철 기자] 현대자동차 퇴직 근로자가 자신의 폐암 발병이 회사 재직 당시의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받았지만, 사측으로부터 해당 재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한푼도 받을 수 없게 됐다.

1980년대 초반부터 현대자동차 생산직 근로자로 입사해 개발부, 부품가공부, 차량생산부 등에서 근무했던 P씨는 지난 2013년 초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폐엽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직후 P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고, 해당 폐암 진단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휴업급여와 장해급여 등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P씨의 업무상 재해 판정과 관련해 심의를 진행했었다. 공단은 그가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약 3년9개월 간 고선박 해체작업을 했는데, 고철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고농도 석면에 노출된 점을 지적했다. 석면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6배 정도 폐암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P씨가 자동차 부품 조립 작업 중 센터필러(차량 도어 기둥)를 용접하면서 나오는 먼지인 용접흄과 차체를 점용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6가크롬에 노출돼 폐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재직 시절 P씨는 폐암과 관련한 기왕질환을 앓은 적이 없었고, 흡연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업무 중 각종 분진과 쇳가루, 신너, 용접가스, 고무분진고 블랙실러, 각종 유기화학물질 냄새에 노출돼 있었다. 이후 P씨는 폐섬유화와 폐기능 장애, 심장부정맥, 동맥경화 등의 합병증을 겪었고, 폐에 먼지가 쌓여 생기는 진폐증이 점차 악하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사용자인 현대자동차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근로계약상 부수적 의무로서 근로자를 업무상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함에도 해당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안전배려의무 위반 등 불법행위로 인한 책임이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에 대해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P씨는 이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으로부터 폐암 발병이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발암물인 석면이나 6가크롬 등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소견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P씨는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산업재해로 인한 수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달 말 법원은 “현대자동차의 근로자(P씨)에 대한 보호의무 및 안전배려의무 위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가 명백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대자동차가 P씨에게 손해배상 금액을 한푼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P씨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업무상 재해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재판 과정에서 P씨의 손해배상 채권 소멸시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업무상 재해로 사용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권은 5년의 상사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판례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요양급여 승인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사용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발생해 이로부터 5년 이내에 사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사라지게 된다.    

P씨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에 대한 요양승인이 시작된 시점은 2013년 초인데, 그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업무상 재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한 시점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2018년 7월경이었다.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가 명백함에도 소멸시효가 완성돼 사측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상황인 된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P씨가 주장하는 업무상 재해에 대해 재직 당시 근로 규정이나 사회 상황에 비춰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근로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관한 귀책이 없다는 현대자동차 측의 주장은 뒷받침할 근거는 부족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P씨와 같이 소멸시효로 인해 배상 청구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자들이 퇴사 과정에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재해와 관련해 회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다보니 5년의 소멸시효를 흘려 보내는 사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재해에 관한 각종 증거를 갖고 있어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더라도, 사측이 소멸시효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할 경우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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