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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9 17:23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단독] 신격호가 구상한 롯데월드 슈퍼타워 탄생 秘史를 말하다
[단독] 신격호가 구상한 롯데월드 슈퍼타워 탄생 秘史를 말하다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7.10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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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노 쇼 오쿠노디자인연구소 회장 인터뷰..."신격호 명예회장은 끝없는 도전으로 '세계 최고' '세계 최초' 꿈을 이뤘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롯데그룹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롯데그룹>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지난 6월 초 일본 오쿠노 쇼(81) 오쿠노디자인연구소 회장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의 역사를 ‘공간 개발’이란 관점에서 다룬 책 <신격호의 도전과 꿈-롯데월드와 타워>를 출간했다.

오쿠노 회장은 신 명예회장과 50년 지기이자 사업 파트너로,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과 잠실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 롯데그룹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의 개발과 설계를 맡은 인물이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50여 년간 70건 이상의 롯데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오쿠노 회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도서 출간 이후 그의 최초 언론 인터뷰다.


“엄격하신 분이라는 느낌이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오쿠노 회장은 신 명예회장과의 첫 이미지를 이렇게 기억했다. 오쿠노 회장은 설계사무소를 설립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인 1972년 롯데 사이타마현 우라와 공장에 사무동을 건설하는 계획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롯데와 인연을 맺었다.

1973년 갑자기 롯데 사장단 회의에 참석 요청을 받은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신 명예회장과 처음 만났다. 회의에서 신 명예회장은 서울 소공동에 호텔과 백화점 오피스까지 건설하는 ‘소공동 지구의 복합개발’ 계획을 설명했다. 호텔은 객실 1000실에 40층 높이의 규모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쿠노 회장은 신 명예회장을 “굉장한 선견지명을 가진 경영자”로 평가했다. 1970년대 당시 객실 300~400개만 있어도 일류 호텔 소리를 듣던 시절임을 감안했을 때 당시 신 명예회장의 주문은 수십 년 앞을 내다본 통 큰 투자였기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신격호 명예회장께선 아무래도 잠실 롯데월드의 두 프로젝트(서쪽지구·동쪽지구)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또 뉴욕과 도쿄에 롯데월드 개발을 실현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하셨습니다.”

오쿠노 쇼 일본 오쿠노디자인연구소 회장.뉴시스
오쿠노 쇼 일본 오쿠노디자인연구소 회장.<뉴시스>

오쿠노 회장은 롯데 건축사업 중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이 특히 ‘잠실 롯데월드 프로젝트’에 가장 애착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1983년, 신 명예회장은 소공동 일대를 넘어 강남지역의 잠실지구를 부도심으로 개발하는 서울시 사업에 참여해 그 일익을 담당하기로 결심했다. 신 명예회장은 그곳에 다양한 레저시설을 짓되 호텔과 백화점이 같이 들어서는 초대형 복합시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롯데월드’라는 테마파크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오쿠노 쇼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날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 임원진에게 ‘한국은 아직까지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너무 없어. 꿈과 용기를 주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하지 않나?’라고 물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롯데월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당시 롯데월드는 ‘실내형 테마파크’라는 점에서 예상되는 리스크 해소 방안을 찾지 못해 초기 6개월간 더딘 진행을 이어갔다. 1980년대에 도심 한복판 실내에 놀이공원을 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파격적인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롯데 미국 주재원이 캐나다 에드먼턴에 위치한 실내형 테마파크를 찾았고, 신 명예회장이 직접 현지 시찰에 나선 후 그는 그 자리에서 ‘실행하자’는 결단을 내렸다.

신 명예회장은 ‘세계에 없는 것’ ‘세계에서 으뜸가는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신 명예회장은 ‘거대 공간 자체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며 오쿠노 회장이 제시한 롯데월드 규모의 약 2배 스케일을 제시했고,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돔 천장을 설치했다. 이후 롯데월드는 여러 논의 끝에 ‘매력’을 이유로 잠실 지구 복합개발에서 가장 중심에 배치됐다.

“개장 후 30년이 지난 지금, ‘롯데월드’라는 테마파크와 잠실 개발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 중 하나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제안한 이 거대한 스케일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는 것이 오쿠노 회장의 설명이다.

잠실지구 개발에선 신 명예회장의 또 다른 경영철학도 엿보인다. 신 명예회장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면 회사 규모는 따지지 않았다. 그는 디즈니에서 독립한 직원이 세운 미국 벤처회사, 직원이 2~3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 롯데월드 계획을 구체화하는 업무를 맡겼다. 이는 일본의 소규모 설계사무소였던 오쿠노 회장에게 기회를 주며 일을 맡겨 온 것처럼 “일단 도전해보라!”는 배려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슈퍼타워는 무조건 100층 이상이어야 한다"

“파리의 에펠탑 같은 타워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형태나 디자인을 흉내 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300년이고 400년이고 그 자리에서 계속 존재하며 서울 시민들에게 사랑 받는 타워를 설계했으면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파리의 에펠탑은 건설 당시에는 시민들의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은 파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타워를 바라셨습니다. 단, 높이에 대해서는 요구가 확고하셨습니다. 설계 단계에서는 한국 최고, 그리고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를 기획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서쪽지구 개발의 핵심이 ‘테마파크’라면, 동쪽지구의 핵심은 ‘슈퍼타워’로 삼았다. 주요 과제였던 슈퍼타워 건설에는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것과 롯데그룹의 상징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기대가 걸려 있었다.

오쿠노 회장은 “무조건 100층 이상이어야 한다”는 신 명예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타워의 높이가 한국 최고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게 신 명예회장의 생각이었다.

당초 오쿠노 회장은 높이를 낮춘 타워를 2개 짓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100층 이상의 슈퍼타워의 경우 특수 시공기술을 적용해야 하므로 시공기간이 장기화하면서 공사비가 비싸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 명예회장은 “비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해 달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타워 건설 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서울시와 협상하는 데만 약 30년이 걸렸고, 디자인 검토에 약 25년이 소요됐다. 실제 완성된 롯데월드타워는 지상 123층, 높이 555m에 달한다.

오쿠노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리더가 아니다. 그는 늘 ‘시민에게 개방된,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고향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다’는 얘길 하곤 했다”며 “신 명예회장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추구하셨다. 나 역시 그러한 점이 닮아 있었기에 회장께서 40년 넘게 클라이언트가 되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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