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YG-1 회장의 ‘절삭공구 세계 1위’ 향한 40년 집념
송호근 YG-1 회장의 ‘절삭공구 세계 1위’ 향한 40년 집념
  • 도다솔 기자
  • 승인 2020.07.01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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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주최 포럼서 '글로별경영' 주제로 강연
송호근 YG-1 회장.YG-1
송호근 YG-1 회장.<YG-1>

[인사이트코리아=도다솔 기자]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규모는 5424억1000만 달러로 세계 6위, 국내총생산은 12위다. IT, 전자, 반도체, 조선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최근에는 K-뷰티 (Beauty), K-팝(Pop) 등 우리문화가 전 세계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글로벌’과 같은 단어가 남 얘기 같았던 40여년 전 송호근 YG-1(와이지원) 회장은 ‘세계 1등 절삭공구 기업’을 목표로 삼았다. 65kg이나 되는 공구 샘플을 들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값싼 모텔을 전전하던 젊은 사업가는 현재 세계 절삭공구 시장에서 엔드밀(End Mill) 1위, 탭(TAP) 3 위, 드릴(Drill) 6위에 올라섰다. 75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26개의 판매회사를 둔 글로벌 기업을 이끌고 있다.

와이지원은 밀링·드릴링·쓰레딩·터닝 등 다양한 절삭기계를 세계 시장에 팔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중국·일본· 영국·독일·브라질·프랑스·베트남·러시아·UAE 등에 생산·판매법인을 둔 중견기업이다. 이노비즈(기술혁신형중소기업), 한국거래소 히든챔피언, 중소벤처기업부 월드클래스300 등 인증을 받은 기업이기도 하다.

와이지원에서 생산하는 절삭공구는 자동차산업에서 38%, 항공기에서 27%가 사용된다고 한다. 또 삼성·LG 등 스마트폰 제조에도 와이지원의 엔드밀 등이 쓰인다. 

송 회장은 2035년 절삭 분야에서 연 매출 5조원을 올려 글로벌 No.1이 목표라고 밝혔다. 사업 시작 계기이자 송 회장을 움직여온 동력이 된 이 꿈은 지난 40여 년간 착실히 벽돌을 쌓아올려 현실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 6월 17일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GMRI, 원장 오화석)은 서울 서초구 쉐라톤 서울팔래스 호텔에서 ‘글로벌 경영인포럼(GB)’를 개최했다. 이날 포럼 주제는 ‘YG-1 글로벌경영에 대하여’다. 송호근 와이지원 회장이 연사로 나서 절삭공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와이지원의 설립부터 해외시장 도전, 경영 성과 등의 노하우를 들려줬다.

세계 1등을 향한 험난한 시작

송호근 회장의 첫 사회 진출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년간 직장 생활을 한 그는 영어가 유창하다는 이유로 수출 총책임 자리를 맡아 일했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엔드밀 분야에 진출하게 되면서 송 회장은 엔드밀 시장의 무한한 성장과 잠재력을 간파했다. 금속이나 비행기 동체를 깎을 때 쓰는 절삭공구인 엔드밀은 원자재가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에 지나지 않아 고부가가치 사업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추진한 엔드밀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송 회장은 절삭공구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을까, 한 분야에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한다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젊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지난 6월 17일 열린 글로벌경영인포럼에서 송호근 회장이 글로벌 경영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lt;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gt;
지난 6월 17일 열린 글로벌경영인포럼에서 송호근 회장이
글로벌 경영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송 회장은 1981년 12월 양지원공구를 설립했다. 기를 양 (養), 뜻 지(志), 동산 원(園)자로 뜻을 기르는 곳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회사 이름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송 회장의 부모님께서 경기도 이천에 땅을 사면서 농장을 운영하셨는데, 그때 송 회장은 농장 이름을 양지원 농장이라고 지어 드렸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은행에 대출을 내려면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하는데 막상 생각나는 이름이 양지원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업 이름은 두 글자 작명이 흔할 때라 세 글자이면 오히려 기억에도 잘 남을 거라고 판단했다.

뜻깊은 이름을 지었지만 100% 수출을 생각하고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양의 Y, 지의 G, 세계 1등을 하자는 뜻에서 1(One), ‘YG-1’이라고 이름 짓고 해외영업을 시작했다.

회사를 세운 송 회장은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팔아 사업 자금으로 댔다. 부모님께서 장만해 주신 은마아파트도 팔았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걱정이 컸지만 송 회장은 사업을 시작했으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집념이 있었다. 6개월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일에 매달렸다.

공장에 기계가 하나둘 갖춰지면서 직원도 12명으로 늘었다. 회사가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1982년 10월 14일 비로소 첫 생산 제품이 쏟아졌다. 와이지원은 이날을 창립 기념일로 한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1982년 10월 16일 송 회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와이지원 사장으로서 첫 미국행이었다. 미국 출장은 43일간 23개의 도시를 오가는 숨 가쁜 일정이었다. 당시 송 회장의 몸에는 미국 거래처로부터 받은 5000여 개의 공구상 리스트, 65kg의 공구 샘플, 약간의 여비뿐이었다. 

일주일에 99달러짜리 렌터카를 빌려 반나절씩 자동차를 몰거나 숙박과 식사는 10달러짜리 모텔에서 해결하고 값싼 패스트푸드, 여의치 않을 땐 굶기도 했다. 주말은 가급적 동생에게 신세를 지며 숙박료를 아꼈다고 한다.

송 회장은 리스트에 적힌 공구상에 편지를 보내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방치된 의뢰·상담 사례를 모두 뒤졌다. 시카고에서 유학 중인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도 ‘TOOL(공구)’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갔다고 한다. 전화번호부에 나와있는 공구상에도 모두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찾아간 공구상에서 샘플을 보내달라며 500달러짜리 수표를 건네받은 순간의 감동을 송 회장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낯선 땅에서 맨몸으로 무작정 부딪혀 얻어낸 최초의 수출 거래였다.

이듬해인 1983년 송 회장은 큰 위기를 맞았다. 선적을 눈앞에 두고 있던 엔드밀 수출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당시 바이어는 와이지원이 보낸 샘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당시 회사 측에서 더 우수하다고 판단해 채택한 공정을 바이어 측에선 일부 공정이 누락된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쓰는 기계보다 우리 것이 기술적으로 훨씬 나은데도 ‘너희 것이 더 우수할 리 없다’는 편견으로 불필요한 테스팅을 거듭하면서 트집을 잡기 일쑤였다. 단순 오해로 일단락될 일이었지만 송 회장은 엔드밀 끝부분이 약간 내려오는 결함을 발견했다. 모른 척하거나 가격을 조정하는 등 합의를 볼 수 있는 사소한 결함이었다. 게다가 물건은 이미 부산항에서 선적을 마친 뒤였다. 그러나 송 회장은 고민 끝에 전량 회수를 결정했다.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가 회사를 세우면서 한 약속이었습니다. 이때 큰 손해를 입긴 했지만 품질이 잘못되면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직원들 모두 같은 물건을 두 번 만들어 고생하지 말고 한 번에 제대로 만들자는 확고한 원칙이 생긴 것이죠.”

요람에서 무덤까지, 영국에서의 파격대우

1996년 송 회장은 뜻밖의 기회와 맞닥뜨렸다. 1995년 영국정부는 와이지원을 포함한 12개의 한국 중소기업을 투자사절단으로 초대했다. 최종 투자 안 해도 좋다며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과 숙박 등 경비를 모두 지원해 주고 맨체스터, 런던,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전부 다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이 내건 조건은 출국 날짜에 임박해서 못 가겠다고 취소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송 회장은 영국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이런 파격적인 조건 이 사실일 거라고 믿지 않았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 우리가 이 정도의 예우를 받을만한가 싶어 의아했다고 한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VIP실을 거쳐 곧장 파티장으로 안내됐다. 파티장에는 영국 각 주의 대표들이 송 회장을 비롯한 투자사절단을 환대했다. 도착 다음날부터 맨체스터, 런던,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지역의 투자 환경을 시찰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필요한 통역, 식사, 숙박, 교통편 등 모든 경비는 지역 투자청에서 모두 제공했다.

영국은 낙후되거나 창업 조건이 어려울수록 지원금이 많다. 북아일랜드 50% 스코틀랜드 40%, 맨체스터 30% 등을 지원한다. 공장 역시 이미 400평을 기본단위로 70%가량 지어 놓은 상태에서 투자자가 용도를 결정하면 2개 월 내에 원하는 용도대로 공장을 완성시켜 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한 장비 투자 자금 50% 무상지원과 직원 교육비용 50%를 주정부가 지원한다. 주정부의 보증으로 은행 빚을 10년 동안 나눠 갚을 수도 있었었고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회사에 5500파운드 지원, 병원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복지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영국의 파격적인 투자 지원에 1996년 10월 와이지원은 북아일랜드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현지 절삭공구 제조업체 ‘히드라 클락슨’을 인수하는 등 영국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와이지원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제조업 강국 독일에 테크센터를 짓고 있다. 오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현지 직원 1000명을 고용한다는 계획이다.

와이지원의 독일 공장 설립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고급 노동력과 기술 유출을 우려한 독일 경쟁 업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 업체들의 거센 반발을 뚫고 공장이 위치한 오버코헨 시(市) 시의회는 와이지원의 공장 설립을 위한 부지 매매 계약을 진행하며 신규 일자리 창출에 시당국의 기대감을 전하는 등 사업 추진에 청신호가 켜졌다.

일본 진출은 송 회장에게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제조업이 매우 발달한 일본에서 틈을 파고들기도 어려운 데다 굉장히 보수적인 시장이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일본 절삭공구 기업들은 이미 당일의 원가와 이익을 마케팅에 반영할 만큼 조직적이고 실용적이었다.

일본은 한국 절삭공구 기업의 출현에 놀라울 만큼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한국이 엔드밀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무시하며 공장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송 회장은 일본 제품과 똑같은 조건에서 어느 엔드밀이 더 우수한지 가리는 테스트를 제안했다. 결과는 비등한 수준으로 나타났지만 일본인 들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와이지원의 엔드밀을 테스팅한 일본 작업자가 겨우 꺼낸 말이, ‘한국 것은 깎이는 맛이 덜하다’고 하더군요. 지금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이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일본에서 팔리는 한국 차는 1년에 10대도 안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굉장히 밑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거리로는 제일 가깝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와이지원은 일본에도 판매회사를 세웠지만 일본인에게 경영을 맡겨두고 운영해왔다. 하지만 최근 보수적이고 폐쇄성이 강한 일본시장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3~4년 전부터는 한국인 지사장이 경영하며 연 50%씩 성장 중이다.

“일본도 요새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윗세대와는 다르게 영어도 할 줄 알고 마인드도 다릅니다. 많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죠. 최근 정치적으로 양국 관계가 나빠져서 걱정입니다.” 

꿈은 크게, 적극적으로 나서야

송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이자 꿈은 세계 1등이 되는 것이다. 와이지원은 1981년 설립 이후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보이며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 수출을 통해 올리고 있다. 이미 엔드밀은 세계 1위를 이뤄냈으며 탭 3위, 드릴 6위에 올라 송 회장의 목표와 가까워지고 있다.

송 회장은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목표를 세우고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이겨내다 보면 분명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 꿈을 꾸는 자는 최소한 고양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직원들에게 항상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사고방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주저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실패하지 않으면 못 합니다, 성공보단 실패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마세요. 결정은 되도록 즉각, 빨리해야 합니다. 너무 힘들 땐 무리하지 말고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최고입니다. 건강한 정신과 피지컬 컨디션이 적절히 이뤄져야 합니다. 그냥 잠을 푹 자세요. 어차피 내일도 결정할 일이 생깁니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똑같은 걸 보더라도 나만의 전략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지난 일은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미래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이 시간을 즐기면서 사세요. 사람은 목표를 가지고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지난 6월 17일 열린 글로벌경영인포럼에서 송호근(왼쪽 여덟번째) 회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lt;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gt;
지난 6월 17일 열린 글로벌경영인포럼에서 송호근(왼쪽 여덟번째) 회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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