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광석 우리은행장의 제로베이스 혁신 전략
권광석 우리은행장의 제로베이스 혁신 전략
  • 이일호 기자
  • 승인 2020.06.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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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에 그림 그리듯 근본부터 바꿔 나갈 것”

지난해 우리은행은 매각 펀드가 연이어 대규모 부실을 일으키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국내 최고(最古)의 시중은행에서 벌어진 수천억원대 펀드 환매 중단사태였다. 적지 않은 고객들이 등을 돌렸고, 우리은행의 명예도 실추됐다. 이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인물이 바로 권광석 행장이다. 그는 ‘고객 신뢰 회복’과 ‘조직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중책을 맡았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우리은행>

[인사이트코리아=이일호 기자] “지금 우리은행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3월 24일 취임한 권광석 행장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국내 굴지의 시중은행 사령탑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법한 시점이었지만 그는 코로나19여파로 별의 취임식도 없이 공식업무에 돌입했다. 이후 두 달간 그는 물밑에서 조용하지만 빠르게 은행 조직을 바꿔 나가고 있다.

권 행장은 올해 3대 경영방침으로 ▲고객 신뢰 회복 ▲조직 안정 ▲영업문화 혁신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은행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을 철저히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하고 개선하겠다”며 “어떤 경우에도 항상 고객을 최우선시하는 근본적인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간 임권 보고 없이 직접 현장과 소통

권 행장이 강조한 ‘제로베이스 혁신’은 무엇일까. 첫 조직개편으로 만들어진 ‘미래금융디자인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점과 영업점 사이 소통 채널’ 역할을 하는 이 부서는 권 행장의 직속 부서로 배치됐다. 우리은행 내에서는 ‘영업점 컨트롤타워’로도 불린다.

20명으로 구성된 이 부서는 ‘공감신뢰팀’과 ‘혁신추진팀’으로 나뉜다. 공감신뢰팀은 영업점과의 소통을 전담한다. 영업점으로부터 애로사항과 민원을 취합해 담당 부서로 넘기고, 부서의 결정을 재취합해 영업점으로 내려 보낸다.

혁신추진팀은 영업점 채널에 적용할 수 있는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한다. 이 팀은 PB와 IB를 결합한 PIB 모델을 중점으로 추진해 자산관리와 기업금융을 함께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 같은 조직을 신설한 데는 지난해 벌어진 두 건의 사모펀드 사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자산운용 펀드가 그것으로, 우리은행이 고객들에게 판 상품 액수만 7000억원에 달한다. 펀드 환매가 중단되면서 우리은행은 고객 신뢰와 함께 영업력에서 타격을 입었다.

최근의 조직개편에는 금융소비자 피해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권 행장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영업 일선과 본사 간 소통 부재가 일련의 사태들을 악화시킨 본질이었다는 판단이다. 미래금융디자인부를 임원 산하 ‘그룹’이나 ‘단’이 아닌 ‘부’로 둔 것만 해도 중간 임원 보고 없이 직접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권 행장의 생각으로 풀이된다.

권 행장 취임 직전인 지난 2월에는 기존 우리은행 소비자브랜드그룹도 금융소비자보호그룹과 홍보브랜드그룹으로 나눴다. 고객보호 업무의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를 목표로, 금융소비자보호그룹을 은행장 직속 독립 조직으로 둬 책임경영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우리은행은 기존 WM그룹을 자산관리그룹으로 바꿨다. 생애 주기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객 특성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기존에 홍보·사회공헌을 함께 맡던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자리도 분리했다.

이에 대해 권 행장은 “직원들의 아픈 부분을 치유해 은행원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겠다”며 자신의 좌우명인 ‘자중자애(自重自愛)’를 인용해 “동료와 은행을 아끼고 진심으로 고객을 위하며 사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업점은 고객지원 ‘올인’

권광석(가운데) 행장이 지난 4월 28일 화훼농가 돕기 캠페인에 참여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우리은행>

지난해 손태승 행장 체제에서 발표된 성과평가지표(KPI) 개편안도 권 행장 체제에서 잘 적용되고 있다. 성과 중심 지표를 고객 중심으로 바꾸는 게 핵심 골자로, 본사가 영업점에 목표를 배분하고 실적을 채찍질하던 기존 방식을 고객과 영업점의 선택을 받기 위한 방향으로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부적으론 기존 24개 평가지표를 10개로 대폭 축소하고 반기 기준평가도 연간기준으로 바꿨다. 고객 중심 지표에는 고객 수익률과 고객케어 등을 대폭 확대했으며 수익성 지표에서 가장 컸던 비이자이익 지표는 아예 폐지했다. 단기실적 개선과는 반대되는 행보지만, 그보단 장기적으로 선택받는 은행이 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은행은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지난 3월 내점객이 줄자 한 달간 급여 이체 등 결제성 계좌에 대한 항목을 평가에서 제외했다. 또 코로나19 관련 중소기업 대출과 이차보전 대출 상품 취급에 우대 점수를 부여했다. 영업점 직원들이 고객 지원에 집중하라는 차원에서 권 행장이 직접 결정했다는 전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시민 활동도 돋보인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출신청이 급증하자 지난 3월 30일 영업점에 본부 부서 직원 60여명을 파견했다. 이어 4월부터 서울지역 영업점에서는 ‘서울시 민생혁신금융 전담창구’를 열어 서울시 소상공인 대출을 지원하고 나섰다.

우리은행은 그룹 차원에서 벌어지는 ‘착한소비운동’도 주도하고 있다. 100억원 규모의 직원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조기 집행해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이 캠페인은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권 행장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께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가 전통시장 상품권을 사용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또 5월 25일에는 우리은행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이 참여하는 바자회를 열고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추천받은 소상공인 제품을 구매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더불어 아동복지시설 방역지원 사업 기부금 전달, 코로나19 감염 고위험군 예방키트 지원, 대구·경북지역 취약계층에 대한 5억원 상당 식료품 전달, 대구지역 의료진 400명에 건강도시락 지원 등도 뒤따랐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권 행장은 취임 직후부터 코로나19 관련 지원현황을 매일같이 챙기면서 위기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며 “당장 수익성이 중요한 게 아닌 만큼 고객 중심으로 은행 체질을 바꾸는 게 올 한 해 중요한 미션”이라고 설명했다.

균형감각 탁월한 ‘포용 리더십’

권광석 우리은행장.<우리은행>

권 행장은 1963년생으로 1988년 우리은행 합병 전 상업은행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지점을 거쳐 영업본부장, 무역금융센터장, 지주 홍보실장, 경영지원부장, 자회사 관리부장, 자회사협력단장, IB그룹 집행부행장 등으로 활약했다. 2017년 우리PE 대표이사를 역임한 그는 2018년 3월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에 외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선임돼 은행장으로 내정되기 전까지 활동해 왔다.

그는 2016년 대외협력단 시절에는 민영화를 위해 해외 연기금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반년간 일본, 싱가포르, 미국 등 10여개국 50여곳의 해외 투자자를 만나며 지구 반 바퀴를 돌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17%대에 불과하던 우리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25%까지 오르며 능력을 인정 받았다.

IB부문 전문성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IB그룹 부행장으로 재직하며 아주캐피탈 인수를 주도했다. 2차 매각에 실패, 업계 10위권까지 밀린 회사를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 금액은 3100억원, 지분율은 74.03%로 우리은행은 펀드 만기 시점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았다. 이후 아주캐피탈 시가총액이 7500억원까지 불어나면서 권 행장은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로 선출된 바 있다.

우리은행 내에선 권 행장의 균형감각도 자주 회자된다. 특히 직원들을 잘 아우르고 포용하는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이다. 때문에 금융사고에 휘말려 어수선한 행내 분위기를 다잡고 구성원들을 조화롭게 다독일 수 있었는 후문이다.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권 행장을 은행의 글로벌전략 추진의 적임자로 주목하며 그가 조직쇄신작업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tom@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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