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매운탕집서 소주 3병, 낮술로 신고식을 하다
생태 매운탕집서 소주 3병, 낮술로 신고식을 하다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0.06.0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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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잔 두잔 들이키며 지키고 쌓아온 ‘홍보 인생’
홍보팀 부하 직원 한 명과 같이 찾아간 음식점은 서울역 근처의 생태 매운탕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뉴시스>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인의 식사 문화가 변하고 있다. 우선 점심이나 저녁을 겸한 불요불급한 모임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혼자서 점심을 먹는 ‘혼밥’ 문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집을 나서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정책을 아무리 잘 따라도 점심때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같이 식사한다면 바이러스 전파와 감염을 막기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러스 발병장소나 근처 지역을 가지 않았더라도 무증상 확진자 감염을 통해 옮는 이른바 ‘N차 감염’이 염려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필자는 최근 언론인과 금융인 등 세 명이 모이는 점심 식사를 했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완화되어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되자마자 한 약속의 결과였다. 지난해 겨울에 만나고 봄을 건너 뛰고 거의 반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 연일 계속되는 코로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대찬성이었다.

이제 식사 장소를 정해야 했다. 메뉴 선정을 서로가 양보하다가 급기야는 언론인이 추천한 곳으로 동의했다. 소위 시중의 ‘맛 집’은 홍보인과 금융인 보다는 언론인이 제일 잘 안다는 데 이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정해진 장소는 서울 남대문시장에 위치한 유명한 꼬리곰탕 집. 필자도 과거 서울역 앞 대우빌딩 근무 시절 몇 번 가본 적 있는 수십 년 전통의 맛 집이다.

점심 때 손님이 원체 많아 예약도 안 받고 줄 서서 기다리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루 전에 전화로 예약도 되었고 당일 날 가보니 손님들도 전체 식당 테이블 규모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한산했다. 이 또한 코로나 시류의 한 장면이다.

‘코로나 낮술’

먼저 도착해 있던 모 종합신문의 계열사 대표인 언론인은 우리에게 줄 양으로 그날 아침 신문을 가져왔다. 언론인이 오랜만에 만난 인사치레로 자기 언론사 신문을 주는 일은 예전 같으면 참 드문 일이다. 그만큼 요즘 시중에서 종이 신문 보기가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를 종이 신문을 통해 본다는 응답이 20대가 1.4%, 30대 2.8%, 40대 2.6%이며 50대가 9%, 60대가 18.2%, 70대 이상이 39.8%라고 한다. 이는 청‧장년 층에서는 이미 정보취득 과정에서 종이 신문이란 ‘플랫폼’의 영향력이 통계적으로 무의미해졌다고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날은 마침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오후 일정도 여유가 있어 우리 셋은 오랜만에 낮 술을 하기로 했다. 회사 얘기, 가정 얘기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소주 3병을 넘어서야 점심을 끝마칠 수 있었다. 직업 중에 술을 잘 먹는다는 언론, 홍보, 금융 분야 종사자가 모두 모였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리라. 기자와 술, 그리고 기자를 상대하는 홍보맨과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다음은 지난 날 필자가 경험한 홍보맨의 술 이야기다.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36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군복무 중 대우그룹 입사를 정해 놓았던 필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대 후 이틀 만에 첫 출근을 했다. 아직 군대 물이 제대로 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룹홍보실 신입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홍보실에 신입사원이 오랜 만에 들어와서인지, 해외홍보팀으로 배정 받은 필자를 국내홍보팀, 광고팀, 사보팀 등 홍보실내 다른 팀에서도 무척 반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팀들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과정이라며 돌아가며 필자를 팀 회식자리에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예외없이 저녁 회식이 거나한 술자리 판으로 이어진 것은 그 당시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쯤 보낸 것 같았다. 아직 신입사원 군기가 빠지지 않아 상사들이나 선배들이 저녁 7시만 되면 호출하는 술자리에 군말없이 참석했고,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보이자, 필자가 보기 보단 술이 센 줄 알고 술에 대한 강도를 점점 더해가는 것이 아닌가. 딱 한번이었지만 어떤 날은 4차, 5차까지 술자리가 이어져 거의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고 겨우 와이셔츠만 갈아 입고 출근했던 기억도 난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마침내 홍보실 순환 근무 겸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끝나고 해외홍보팀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된 필자는 외국의 언론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곳은 술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같은 홍보실이라도 전혀 다른 세계인 듯 보였다. 외신 기자들과 식사를 할 경우, 주로 점심식사를 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술을 아예 못하는 기자도 있었고, 또 마신다고는 해도 내숭인지 자기들 언론사 내부 지침인지는 몰라도 고작 와인 몇 잔으로 우아하게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한 6년을 그룹홍보실에서 해외언론 분야의 업무를 마치고, 종합상사인 (주)대우 홍보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곳에서 필자는 책임자가 되어 국내외 언론홍보, 사보, 광고, 홍보제작물 관리 등 홍보의 각종 분야를 총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필자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국내언론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대우로 옮긴 지 몇 주일 지난 어느 늦은 봄 날이었다.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기 전 당시 토요일엔 오후 3시가 공식적인 퇴근 시간이었다. 오전 11시쯤, 모 종합일간지의 중견기자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해 왔다.

국내언론 홍보 분야에선 신입사원과 다름 없는 초심자 신세였기에 언론사 고참기자로부터 먼저 점심 식사를 하자는 제의를 받으면 영광스럽게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기자는 그룹 홍보실에서도 비중을 두고 있는 출입기자였기 때문에 만사 제치고 쾌히 제의를 수락했다. 홍보팀 부하 직원 한 명과 같이 찾아간 음식점은 서울역 근처의 생태 매운탕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나자마자 그 기자는 본인이 연배도 높고 하니 점심을 사겠다고 하며 반주로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점심 식사 때의 소주 반주는 그새 한 두잔 씩 경험을 쌓은 터라 “당연히 그러셔야지요~”하며 살갑게 장단을 맞추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소주가 한 병 두 병 늘어나더니 어느덧 우리 자리에 빈 소주 병이 세 병이나 놓여 있게 되었다.

그래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필자는 점심식사 자리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 덕분에 신고식을 무사히(?) 마치고 음식점 밖으로 나왔다. 평소 저녁때 술 마시고 난 후의 밤거리 풍경에 익숙해 있다가 환한 대낮에 술에 취한 기분은 참으로 난감하기만 했다. 근처 다방에서 진한 커피로 술기운을 겨우 진정시킨 후 사무실로 돌아간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필자와 국내 언론과의 만남은 소위 낮 술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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