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에 던진 질문, 시민단체는 무엇으로 사는가
윤미향에 던진 질문, 시민단체는 무엇으로 사는가
  • 이원섭 IMS Korea 대표 컨설턴트
  • 승인 2020.06.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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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
논란에 휩싸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서울 마포 사무실 .<뉴시스>

근래에 코로나19를 빼고 국내에서 가장 큰 이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아닐까? 한국의 대표적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비정부기구)중 하나인 정의연이 원치 않는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의 대구 기자회견 직후이다. 이 할머니는 지난 5월 7일 대구시 한 찻집과 2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의 두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활동했던 시민단체인 정의연(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을 비판했다.

할머니는 이번 21대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의 국회 진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그동안의 모금활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기부금 모금과 성금 사용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의연이 정신대와 위안부의 개념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군수품 공장에서 급여를 받고 일한 사람들이 정신대이고 자신들처럼 강제로 끌려가(이 할머니는 당시 만 14살이라고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몸을 버린 사람이 위안부로, 이 두 의미는 명확히 다르며 정의연에서 한꺼번에 묶어 시민운동을 하면 안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번 되풀이 하지만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누가 알아줍니까? 이런 억울함, 분함 누가 알아줍니까? 모릅니다. 내가 여자 몸으로 죽을 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이리 설움 받아야 합니까? 왜 이리 인정받지 못합니까? 당당한 피해자 위안부인데 왜 정신대로 팔려야 합니까? 뚜렷한 증거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울어야 합니까? 내 신세가,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라며 그동안 쌓였던 설움을 토해냈다.

급격한 양적 성장의 그늘

할머니의 발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문제가 있었고 정의연 활동의 주인공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용만 당했고 그로 인해 설움을 넘어 분노가 쌓인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기자회견까지 오게 됐을까? 그리고 특정인인 윤 전 이사장을 지목해 날선 비판을 하게 됐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응원했고 자랑스러워 했던 정의연이 아닌가?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 뒤에 할머니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보도들과 관계자 폭로도 연이어 나오며 정의연과 윤 당선인에 대한 비판이 허구가 아닌 것으로 점차 드러나고 있다.

글쓴이도 시민단체 활동들을 하는 지인을 통해 관심도 갖고 관여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초기, 맨바닥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며 긴 세월 동안 고난의 시간을 겪으며 지금의 성과를 이루었는지 옆에서 봐온 바에 의하면 정의연 사태는 실로 가슴이 아프다.

NGO 운동, 시민운동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대중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지속적이고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인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그것이고 지금의 여러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들도 어떤 형태로든 시민운동과 관계를 갖고 이를 통해 자기 생각과 권리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직접 활동을 하거나 간접적으로 관여도 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구조상 모순, 즉 가진 자, 기득권층과의 대립·항쟁 가운데서 목표를 갖고 이의 달성을 위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운동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계급 대립을 떠나 사회 운동을 이해할 수는 없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5년 전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전반의 문제를 정부가 모두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최근 우리는 깨닫고 있다. 또한 빈부의 격차, 안전, 갈등 등은 자유시장의 개념으로도 해결될 수 없음을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시민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본격화 되었고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의 급속한 성장은 민주화, 다양화, 경제성장과 양질의 교육받은 시민의식 증가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급격한 양적 성장은 오히려 단체 간의 무분별한 경쟁을 확대시키고 단체 간의 이질성과 기금 마련에서 압력단체로 일부 역할을 해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시민사회단체들은 책무성, 정당성, 효과성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에 노출돼 있다…(중략)…시민사회단체는 그들의 역할 수행을 위해 물질적·정신적 후원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둘 사이의 거래는 투명해야 하며 동등하게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재정적인 감사와 보고에서 투명성과 책무성에 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보다 시민단체가 무서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지난 5월 2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앞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어디에서 돈을 얻는가. 누구에게 공식적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할 때 기부자 및 고객들이 그 단체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실례로 시민사회단체들의 사업 및 회계 정보를 의무 또는 자율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국세청의 홈텍스 같은 시스템이 준비돼야 한다.” 

5년 전 기고에서 송 전 총장이 ‘시민단체의 청렴성, 투명성’을 염려한 당부를 한 걸 보면 어쩌면 시민단체의 오랜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 할머니가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어찌보면 아주 멋있고 정의로운 활동처럼 치장된다. 또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권력이라는 평도 있다. 재벌들이나 권력들이 정부보다 시민단체를 무서워한다고 한다. 존경도 받고 힘도 있으니 또 다른 권력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정의연은 수요집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면서 이번 일로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의의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말이다. 지난 30년간 온갖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이룬 피와 땀이 폄훼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30년 동안 이끌어 오면서 UN 등 굵직한 활동의 한 가운데 위안부 할머니들과 윤 당선자는 늘 같은 화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니 ‘윤미향이 곧 정의연’이라고 불린 것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비례대표로 당선인도 될 수 있었으리라. 정대협 초기부터 유일한 상근간사로 온갖 고생을 해 온 윤 당선인은 정의연의 얼굴로 자리잡으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초기부터 열악한 살림으로 자신의 강연료까지 보태며 단체를 이끌어 왔다. 그러니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이 절실했을 수도 있다. 고생한 덕으로 많은 기부와 보조금으로 운영비 걱정은 덜었지만 남의 돈(?)으로 운영할 때와 자신의 자금으로 유지가 될 때의 운영이 달라야 하는데 그걸 간과했다는 점이 사태의 본질이다. 초기 관계자 모두의 고생할 때와 다르게 위상도, 몸집도 커졌는데 각 분야 전문 실무자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여전히 사실상 일인 독점체제로 운영을 해왔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기서 비슷한 시민단체와 비교를 통해 투명성을 알아보자. 장애어린이 재활운동을 하는 푸르메재단의 미션을 보면 장애인 전인재활 및 사회통합, 재활의 선도, 존중과 통합, 미래가치 창출, 나눔 문화 조성 및 윤리경영, 나눔과 참여, 투명과 윤리 등으로 ‘투명’과 ‘윤리’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반면 정의연의 미션을 보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활동, 피해자 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조사,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교육과 장학사업, 기림사업과 국제연대 사업, 전시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활동, 전시 성폭력 피해지원 등으로 투명성과 윤리에 대한 명시가 어디에도 없다.

물론 글귀, 단어 몇 개가 무엇이 중하냐고, 실행이 중요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비전과 미션은 나라의 헌법과 같고 기업의 정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명문화는 시민단체의 정신과 행동을 규정짓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로 지적된 회계에 대한 문제를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푸르메재단은 매월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공시해 기부자들이 자신들의 기부가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이는 지를 자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투명경영대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정의연은 일년에 한 번 기업들의 재무제표처럼 공개하고 있다.

이 두 단체의 회계보고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는 기부자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명쾌한 공개, 다른 하나는 일년에 한 번, 그것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의 회계자료를 그대로 따라해 어렵고 전문가만이 알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이런 재무제표는 시민단체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리 목적의 기업들에나 사용되는 것이다.

서두에도 언급했듯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운영하는 시민단체는 무엇보다도 도덕성, 투명성을 철저히 해야 목적도 투명하게 추진할 수가 있다. 푸르메재단도 초기에는 백경학 상임이사의 부인 교통사고 보상금 수억원을 기부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정의연 윤상근 이사도 강의료까지 기부하며 오늘에 이른 것은 같으나 푸르메 백 이사는 김성수 대주교와 강지원 변호사를 얼굴로 내세우고 자신은 후선으로 물러나 묵묵히 활동한 반면, 윤 이사는 자신이 대표로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 큰 차이다.

시민단체는 시민의 애정, 관심과 협력을 먹고 자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의 본래 목적과 초심을 잃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이다. 권력이나 기득권층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다 이런 시민단체의 투명성과 도덕성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성 저하가 시민운동을 저하, 도태시키는 이번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열악한 시민운동 환경과 활동가들의 헌신을 무색하게 하는 권력화, 정치화, 비도덕성, 회계 불투명 등이 시민단체에서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정의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역할은 반일감정을 떠나 핍박 받고, 억울하고 힘없는 위안부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그들의 30년 간의 활동은 실제로 상당 부분 부응해 왔다. 이런 활동들이 이번 일로 투명해지고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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