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실로 들이닥친 A기자, 다짜고짜 “부장, 어딨어요?”
홍보실로 들이닥친 A기자, 다짜고짜 “부장, 어딨어요?”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20.05.0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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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하지만 한때 매우 귀했던 ‘바나나 취재 소동’
바나나가 지금은 동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아주 싼 과일이지만 한때 가격이 비싸 귀한 대접을 받았다.뉴시스
바나나가 지금은 동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아주 싼 과일이지만 한때 가격이 비싸 귀한 대접을 받았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말 현재, 전세계 200여 국가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무려 300만명에 육박하고 있고, 사망자는 이미 20만명을 넘어섰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전염병 하나로 이처럼 피해가 크다니 놀랍고도 비극적인 일이다. 피해가 가장 심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직도 바이러스의 기세가 크게 꺾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4월 중순부터 진정세를 보여 이제는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에서 한 단계 낮은 생활방역 체제로 완화돼 가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 긴장감을 풀기에는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코로나19의 여파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극심하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한국경제 성장률이 -1.4%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4분기(-3.3%)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라고 한다. 업종 별로 보면 항공사, 여행사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대면 접촉을 하는 분야가 가장 피해가 심하다. 그러나 비가 오면 부채 장사 하는 큰아들이 걱정이고 날이 개면 나막신 장사 하는 작은 아들이 걱정이라는 전래동화의 어머니처럼 이 와중에도 호황인 업종이 있다. 대면을 할 필요가 없는 온라인 사업과 배달음식 업종 등이 그러하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인터넷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OTT) 서비스 사업자들이 트래픽 관리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다. 유럽에서는 인터넷이 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트리밍을 일시적으로 저품질 포맷으로 낮췄다고도 한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는 올해 1분기 전세계에서 1570만명의 유료 구독자를 추가로 확보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미국에서 외출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세계 대부분 국가들도 외출 자제 혹은 봉쇄(셧다운) 명령을 내려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수입 자유화 이후 홍수처럼 반입…”

필자도 그동안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충실히 따르다 보니 사무실이나 집에서 컴퓨터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불요불급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가족들이 집에 함께 있는 시간도 자연 늘어나게 되고 온 식구가 넷플릭스를 이용해 흘러간 추억의 영화나 드라마를 같이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최근에 본 인기 드라마는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를 재현해 놓은 시리즈물인데 당시를 회상해 볼 기회가 되었다. 기억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 중에 한 가족 구성원들이 바나나를 먹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바나나가 지금은 동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아주 싼 과일인데 당시에는 가격이 비싸서 매우 귀한 과일 대접을 받고 있었다.

“올 1월부터 수입자유화 품목으로 바뀐 바나나가 홍수처럼 반입되고 있다. 7월까지의 수입물량이 지난해 전체 수입의 무려 12배에 달하고 있다…(중략)…수입업자들의 무분별한 과잉수입으로 바나나의 시판가격이 폭락하고 있다…(중략)…일부 바나나는 저온창고를 얻지 못해 그대로 썩어 폐기되고 있다.”

1991년 7월, 어느 종합일간지의 기사를 발췌한 것이다. 그 당시 고관세 족쇄에서 풀려나 수입자유화가 된 이후 일시에 대량으로 수입된 바나나가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켰고 언론으로부터도 맹비난을 받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하여튼 정부의 수입자유화 정책 덕분에 그 시절 이후부터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소풍 갈 때에나 한 두개 먹어 볼 수 있었던 귀한 바나나를 원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다음에 소개할 에피소드는 바로 그 무렵 종합상사인 (주)대우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날 오전 10시경이었다. 체격이 좋은 젊은 남자 한 명이 홍보부 사무실을 들어 서더니 다짜고짜 부장을 찾는다. 정장 양복을 입고 넥타이는 맸지만 인상을 험하게 짓고 말투도 곱지 않아 당황하고 있었는데, 통성명을 해보니 예상 밖으로 어느 유명 종합일간지의 A기자였다. 단, 사회부라는 글자를 볼펜으로 지우고 경제부로 써 넣은 명함을 보니, 사회부에서 이제 막 경제부로 부서 이동을 한 기자임에 틀림없었다.

기자실로 자리를 옮긴 A기자는 대기업인 대우에서 바나나를 수입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자세히 취재하려 왔다고 하며, 당시 홍보과장이던 필자하고는 대화 상대가 안 되니 대신 부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럽고 기분도 좀 상했지만 어쨌든 회사의 홍보와 기획 부서를 함께 맡고 있는 B부장을 소개해 주었다.

무역영업 베테랑 vs 사회부 출신 경제부 기자

B부장은 10여 년을 해외 지사와 본사 무역 부서를 두루 옮겨 다니다가 한 달 전 우리 부서로 자리를 옮긴 자타가 공인하는 무역영업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홍보 업무에는 아직 초심자나 다름 없었고 더군다나 경험이 없으니 언론 기자들을 상대하는 노하우(?)는 전혀 백지 상태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차라리 처음부터 말 다툼에 가까웠다. ‘왜 바나나를 수입했느냐. 그 덕에 바나나 농가가 다 망하지 않았느냐.’ ‘무슨 소리냐, 그 동안 너무 비싸 살 엄두를 못 낸 많은 국민들이 싸게 바나나를 사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수입자유화를 왜 나쁘게만 생각하느냐.’ 또 ‘왜 대우 같은 대기업이 바나나 같은 식품류를 수입하느냐. 중소기업들 영역이 아니냐’ ‘종합상사는 바늘에서 선박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상품을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하는 회사다. 생산과 영업, 서비스 활동 등을 통해 정당하게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 아니냐. 바나나 수입이 중소기업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벌개져서 도무지 언성을 낮추려 하질 않는다. 이래선 안되겠다고 판단한 필자는 일단 A기자를 기자실로 옮기게 한 후, 사무실과 기자실을 오가며 어찌어찌 중재를 해서 간신히 논쟁을 끝 마치게 했다. 사실 바나나 수입 관련 사안은 언론사의 경제부 기자와 대기업의 홍보부장 사이의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건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사회부 기자처럼, 또 한 사람은 무역업무를 하는 영업부장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몇 주일이 흘렀다. 소위 냉각기를 보낸 것이다. A기자가 회사를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홍보부 사무실을 들어선다. 그러면서 하는 말 ‘경제부에서는 사회부 시절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번에 취한 행동이 본인 생각에도 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B부장도 ‘나도 홍보부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모로 미숙했다. 앞으로 무역관련 문의 사항이나 취재가 있으면 언제든 알려달라. 적극 도와주겠다.’ 논쟁도 화끈하게 했지만 화해도 사나이들답게 멋지게 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한숨을 돌렸다. 왜냐하면 1~2년 후면 무역 업무로 복귀하는 B부장과 달리 홍보업무를 계속해야 하는 필자는 향후 A기자와 소속 언론사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후 경제부 기자 생활을 한동안 계속하던 A기자는 몇 년 후 본인의 희망대로 사회부로 복귀했으며 줄곧 민완 사회부 기자로 명성을 날리다 결국은 수십 명의 사건기자를 관리 통솔하는 데스크를 역임했다. 그리고 B부장은 무역파트로 돌아가 임원까지 지내다 타 그룹으로 이동해 식품관련 계열사 대표를 지낸바 있다.

20여년 전 바나나 파동으로 만난 A기자, B부장,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은 지금도 가끔 만나며 친밀한 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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