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최전선서 맞서는 ‘조용한 여전사’ 정은경
코로나19와 최전선서 맞서는 ‘조용한 여전사’ 정은경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5.02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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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에 국민은 공포를 잊는다
정은경 본부장.뉴시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코로나19는 불과 3개월여 만에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마스크는 몸의 일부가 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됐다. 노란색 민방위 점퍼를 입은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매일 현황을 발표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 중에서도 정례 브리핑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국민들에게 친숙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차분하면서도 믿음이 가는 목소리로 현 상황을 정리하고 방역당국 정책에 협조해주길 당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쩍 늘어난 흰 머리와 수척해지는 얼굴을 보며 많은 국민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 국내 확산을 성공적으로 차단한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의 다양한 감염병 대응 모범사례를 국제사회와 공유해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도록 ‘K-방역모델’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검사·확진→역학·추적→격리·치료’로 이어지는 감염병 대응 전 과정에 걸친 절차와 기법 등을 ‘K-방역모델’로 체계화해 국제표준화기구에 제안할 계획이다. 그 중심에 정은경 본부장이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비전과 사명감을 가져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여는 질병관리본부라는 우리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마음깊이 새기고 우리가 왜 이일을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하자. 비전은 진실하고 간절한 꿈이다. 우리들의 꿈과 희망이 모여서 질병관리본부의 발전이 되고, 건강한 사회를 여는 기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2017년 7월 27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취임사 중)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월 4일 ‘조용하지만 능력 있는 2인자들이 있어 감사하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은경 본부장의 리더십을 집중 조명했다.WSJ 캡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4월 4일
‘조용하지만 능력 있는 2인자들이 있어 감사하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은경 본부장의 리더십을 집중 조명했다.<WSJ 캡처>

‘K방역’ 선봉장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19 쓰나미 상황에서 세계적 유명인사가 됐다. 지난 4월 4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맹활약 중인 각국의 영웅을 부각하며 한국에선 정 본부장을 꼽았다.

WSJ는 “코로나19 대응의 압박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지도자는 우리가 선거로 뽑은 카리스마 있고 정치적인 계산을 하는 우두머리들이 아니다. 진짜 영웅은 ‘전문성 있는 관료들’”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자신의 손익 계산에 바쁜 정치 지도자보다 옆에서 보좌하는 전문가 관료들이 더 리더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WSJ에 연재된 칼럼은 첫머리에서부터 정 본부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지난 1월 20일 첫 브리핑에선 재킷 차림에 행색이 말끔했지만 점점 초췌해지는 정 본부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다. 두 달 넘게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정 본부장의 얼굴은 수척해졌고, 흰머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정 본부장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상당 지면을 할애한 WSJ가 말하는 ‘정은경 효과’는 이렇다. “그의 일관된 솔직함과 정보에 근거한 분석, 냉정함을 잃지 않는 침착함은 초조한 한국 국민에게 강력한 진정제다.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도 정 본부장이 ‘바이러스가 한국을 잠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신뢰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 본부장이 그렇게 믿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게 진실이라고 믿었다.”

“1시간보다는 많이 잔다”

WSJ는 정은경 본부장의 ‘전문성’이 주는 신뢰감에 주목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국내 최고의 방역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정 본부장은 의사 출신 위기관리 대응 전문 공직자이자 감염병 예방 분야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온 그는 의사 생활을 하며 편안한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공중 보건과 예방 의학에 관심을 두며 진로를 바꿨다.

서울대 보건학 석사와 예방의학 박사를 받으며 공중 보건 연구를 시작했고 1995년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 연구관 특채로 공직에 입문해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질본 만성질환과장·질병예방센터장·긴급상황센터장 등을 거쳤다. 질본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취임 후 질병관리본부장으로 발탁됐는데, 그의 선임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꼽힌다. 국장급에서 실장급(1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차관으로 승진한 것을 비롯해 2004년 질본 출범 이후 첫 여성 본부장이자 내부 승진을 통해 본부장이 된 첫 사례였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성실하고 치밀하게 임하는 모습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정 본부장은 질병예방센터장이었다. 그는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 활동하며 감염 예방과 역학조사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공식 언론 브리핑을 맡아 진행했다. 감염병 차단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태 종료 후엔 방역 실패를 이유로 정직 징계 처분을 권고 받았다. 정 본부장은 이의제기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오히려 그의 이런 모습이 의료계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관련 공무원 상당수가 징계를 받고 공직을 떠났으나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심의위원회는 그의 노고를 고려해 감봉 1개월의 경징계 처분을 내려 다행히 질본에 남을 수 있었다. 인사혁신처의 이러한 결정은 정 본부장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모범적인 공직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 듯이 보였던 지난 2월 18일 31번 확진자 발생을 기점으로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2월 23일 정부는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튿날인 2월 24일 진행된 정례 브리핑에서 정 본부장은 짧은 단발에서 양쪽 귀가 모두 드러날 만큼 짧아진 숏컷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는 그의 얘기에서 사태 진정을 위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정 본부장은 잠시 눈을 붙이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긴급 상황실을 지키고 있다. 확진자 현황 집계와 종합 언론 브리핑, 각종 화상 회의까지 분 단위 스케줄을 소화하며 끼니도 도시락과 이동 밥차 등 최대한 간단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다.

점점 핼쑥해지는 정 본부장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우려와 가슴 먹먹한 감동을 느끼고 있다. 정례 브리핑에 참석한 어느 기자가 “1시간도 못 잔다는 얘기가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1시간보다는 많이 잔다”고 담담한 목소리고 답했다.

“국민 신뢰와 보건의료 분야 리더십은 전문성에서 나온다”

정은경 본부장이 2017년 7월 27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
정은경 본부장이 2017년 7월 27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후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내외의 조명을 받는 정은경 본부장의 방역 철학 가운데 하나가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다. 이러한 그의 노하우는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3년 만인 2018년 9월, 메르스 확진 환자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불거진 ‘제2의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습득하게 됐다.

2018년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대응의 전 과정을 맡았고, 콘트롤타워의 수장인 정 본부장이 발생부터 종료까지 모든 상황을 총괄했다. 그는 확진 환자 발생부터 병원 이송, 접촉자 수 등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매일 국민에게 투명하게 전달했다.

또 보고를 위한 움직임보다 현장을 보는 것에 중점을 뒀다. 긴급 상황실 내에 각 부처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아침·저녁으로 회의를 하고 정보를 공유한 이후 의사결정을 했다. 이를 기반으로 총력 대응한 결과, 기존 확진자 1명 외 추가 확진자 없이 38일 만에 상황 종료를 선언할 수 있었다.

정 본부장도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것이 메르스 조기 종료에 큰 도움이 됐다고 여겼다. 당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니 국민들의 신뢰가 높아졌고, 그 덕분에 오히려 국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돌이켰다. 확진환자의 동선 등이 공개되면서 잇따른 제보가 있었고, 의심증상이 나타난 환자가 이전처럼 무작정 병원을 찾아 병원 내 감염이 증폭됐던 것과 달리 질본 콜센터나 보건소 등에 먼저 전화해 확인하는 문화가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정 본부장은 취임 초기부터 질본이 가장 힘써야 할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질병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방을 위해 힘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감염병 예방 수칙이나 감염병 정보를 알리는 등 예방이 습관이 되도록 만들고자 했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전 세계가 휘청하는 가운데서도 한국의 방역이 호평을 받게 된 배경은 정 본부장의 취임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종감염병은 신속한 초동대응이 안될 경우 언제든 공중보건위기상황을 초래해 사회경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에 단순한 보건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이슈이기도 하다. 질본 본부장으로서 감염병 대응을 위해 신속하고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 국내외 감염병 정보분석과 위험평가, 정보제공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고 감염병 관리의 핵심인 역학조사와 진단역량을 확충하겠다. 국민과 의료인에게 감염병 예방·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제공하겠다. 국민의 신뢰와 보건의료 분야 리더십은 우리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조직원이 담당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17년 그의 질본 본부장 취임사의 일부다.

“훌륭한 리더는 허세 없이 뒤에서 일하고, 성공 자랑 안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1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해 코로나19 대응에 분투 중인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1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해 코로나19 대응에 분투 중인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청와대>

취임할 당시의 마음가짐과 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해 온 정은경 본부장은 온화함을 지님과 동시에 완벽하리만치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일벌레로 불릴 정도로 일에 관한한 억척스럽다. 평상시에도 직원들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 질본 내에선 ‘워커홀릭’으로 불린다.

정례 브리핑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빠짐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져도 성실히 답변해주는 모습, 낙관론이 들만도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높은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됐다.

정 본부장은 최근 자신과 질본 조직에 대한 응원이 쏟아지자 직원들에게 “방역 당국이 고생한다고 조명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아직 현 상황 대응에 부족함이 많고 상황이 진행 중”이라며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미담(美談)으로 포장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내세우지 않는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본부장은 고삐를 더욱 단단히 쥐고 있다. 지금 그에게 목표는 오직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방역에 성공해 승리하는 것, 하나뿐이다.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된 것과는 별개로 보건당국은 계속해서 2차 대유행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줄어드는 확진자 수에 일희일비 할 수 없는 이유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가 펜데믹을 일으키기에 가장 알맞은 특성을 골고루 갖췄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경증 상태에서도 전파력이 높고, 심지어 증상이 나타나기 1~2일 전 무증상 상태에서도 전염력을 보인다.

또 변이가 매우 잘되는 특징이 있어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국내 확진자 중 회복해서 항체가 생긴 사람 가운데서도 절반가량은 체내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본은 “영원히 국경을 봉쇄하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언제든 세계적으로 유행이 가능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세계 여러 국가의 ‘록다운(Lockdown·봉쇄)’이 그나마 확산을 지연시키고 있지만, 무한정 지속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차츰 사람들의 이동 제한이 풀리면 해외 유입이나 지역사회 전파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같은 코로나19의 임상적·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질본은 지금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시기로 다음 유행을 준비하는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자연 감염으로 집단면역을 이루거나 백신으로 집단면역을 높이지 않은 채 가을·겨울철을 맞으면, 국민 대부분이 면역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가 개인적인 미담이 이어지는 것을 스스로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WSJ도 정 본부장에 대해 “훌륭한 리더들은 위기가 지나가도 다음 위기를 막기 위해 쉬지 않고, 허세 없이 막후에서 일하며 성공해도 자랑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의 혼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다. 정 본부장에게 모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믿음이 담겼다. 국민이 그에게 보내는 관심과 응원 속에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공직자의 모습이 투영됐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자세, 어떤 장애물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열정, 그 힘이 모여 위기를 극복해내는 모습이 절실한 지금, 정 본부장의 모습은 밤낮 없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여러 공무원과 의료진, 봉사자 등 모든 이들의 노고를 대변하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

1965  광주 출생

2010.11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보건산업기술과 과장

2012.07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과장

2014.02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관리과 과장

2014.03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 센터장

2016.01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 센터장

2017.07~  질병관리본부 제 17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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