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싼 국제유가’ 대응책
‘물보다 싼 국제유가’ 대응책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02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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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 돈 줄 테니 제발 기름 좀 가져가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이너스 유가’가 현실로 나타났다. 산유국들이 원유 가격을 인상하고 생산을 제한해 세계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1970년대 오일쇼크를 기억하는 우리로선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지난 4월 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37.63달러에 거래됐다. 현물이 아닌 5월에 물건을 넘기는 선물(先物)시장 가격이긴 해도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다. 

연초 배럴당 60달러(WTI 기준)를 넘던 국제유가가 2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18년만의 최저 수준이다. 사상 최고치였던 2008년 7월 가격 147.27달러와 비교하면 7분의 1도 안 된다. 1배럴이 158.9ℓ이니 원유 가격은 리터당 약 160원. 맥주나 우유는 물론 생수보다도 싸다. ‘검은 황금’으로 불리던 원유가 돈을 얹어준다고 해도 운송비 보관비를 감안하면 가져갈 사람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은 세계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줄기도 했지만, 3~4년 전부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하며 글로벌 공급이 크게 늘어난데 원인이 있다. 여기에 원유 생산단가가 낮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생산단가가 비싼 산유국을 밀어내기 위해 원유 생산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을 벌였다.

원유 재고는 넘치는데 이를 담아둘 유조선이나 저장탱크를 구하기가 힘들어 결국 마이너스 유가 상황을 빚기에 이르렀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니 국내 휘발유 가격도 공짜 수준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원유 선물가격 하락이 실물 휘발유 값에 반영되는 데는 몇 주 걸린다. 또 휘발유 값에는 여러 세금이 붙어 있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하락은 크지 않다.

휘발유 값에는 원유 가격보다 훨씬 많은 세금(리터당 약 860원)이 붙는다. 리터당 529원의 교통에너지환경세부터 주행세 138원(교통세의 26%), 교육세 79원(교통세의 15%), 부가가치세 (판매가의 10%)까지 부과된다. 국제유가가 아무리 낮아져도 이들 세금합계 이하로 내려가기 어려운 구조다.

과거 저유가는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 경제에 호재였다. 유가 하락이 기업과 가계의 비용 부담 을 줄여 긍정적 효과를 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유가 급락은 악재다. 국제유가가 연초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자 세계 석유산업이 위축됐다. 그 여파로 중동 산유국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이 줄어들고, 국내 조선사의 해양플랜트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원유를 수입해 정제과정을 거쳐 휘발유·항공유·경유 등을 생산해 절반 정도를 수출하는 국내 정유업계는 정제마진이 줄어 휘청댄다.

조선과 정유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근간이다. 공급과잉과 수요절벽 속 국제유가 급락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또 다른 숙제다. 시나리오별 초저유가 상황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할 대책이 시급하다. 이래저래 과거와 크게 달라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치밀하게 준비해야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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