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디자인 선도하는 조서윤 다원디자인 회장
오피스 디자인 선도하는 조서윤 다원디자인 회장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4.01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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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Design Quality...인테리어디자인 업계의 역사 쓰는 기업
조서윤 회장.이원근
조서윤 회장.<이원근>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최근 국내외 기업들은 ‘스마트 오피스’를 추구하고 있다. 업무 공간은 단순히 ‘일하는 곳’이란 기능적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공간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에 유수의 기업들은 그 공간에 기업의 철학을 담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서윤 회장이 이끌고 있는 인테리어 기업 ‘다원디자인’은 우리나라 인테리어디자인 업계의 역사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3명의 직원과 함께 창업한 조 회장은 1년 6개월여 만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기회가 됐다. 당시 골드만삭스, 맥커리 등 외국계 금융·투자회사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하면서 조 회장은 이들 기업의 프로젝트 수주에 연달아 성공했다. 입소문을 타고 상승세를 탄 다원디자인은 2000년대 초반까지 외국계 기업 건물의 인테리어디자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다원디자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회사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러브콜이 잇따랐다. 맥킨지앤드컴퍼니, 모건스탠리, 한국IBM, SK건설, 네이버, 카카오 등을 비롯해 JW 메리어트, 포시즌스, 파라다이스시티, 르메르디앙 서울호텔, 콘래드 서울호텔, IFC몰 등 유명 기업과 호텔에서 다원디자인을 찾았다. 회사를 설립하던 당시 1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다원디자인은 25년 연속 흑자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연매출 2300억원을 기록하며 현재 26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조 회장은 무차입 경영을 하면서도 25년간 연평균 매출은 180%씩 늘렸다.

<인사이트코리아>가 지난 3월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다원디자인 본사에서 조 회장을 만났다. 조 회장은 회사 성장의 근본 배경으로 ‘전문성’과 ‘간결함’을 꼽았다. “커피 한 잔 사지 않고도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뚝심으로 밀어붙인 프로젝트의 결과가 곧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It speaks itself’가 이뤄졌다” “과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영을 할 때 말을 위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디자인을 할 땐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본론만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조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 현재 운영 중인 다원디자인은 어떤 회사인가?

“설계와 공사를 모두 맡아서 하고 있는데 다른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디자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피스 디자인을 오래 해왔고 평판도 좋다. 최근의 오피스 인테리어는 창의성과 협업,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하도록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해 설계가 되고 있다. 그 부분이 가장 자신 있다.”

-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인테리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 같다. 이유가 있었나?

“아버지와 오빠들이 의사인 의사집안에서 자랐다. 사실 나도 처음엔 의대를 목표로 했는데, 예비고사가 입시에 반영되던 시절 예비고사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의대 진학에 실패를 했고, 그때만 해도 ‘여자가 재수를 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또 내가 집안 막내다보니 언니, 오빠들이 시키는 대로 주체성 없이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보니 정말 원하는 학과가 아니라 안전하게 합격될 수 있는 곳 위주로 생각했다. 화학과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외워야하는 공식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3학년 때부터 유학을 준비하게 됐고 마침 그즈음 박윤창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다. 박 교수님은 학교에서 가장 젊은 교수님이었고 유학을 다녀온 분이었는데 ‘인테리어를 전공해보는 게 어떻겠니? 여자들이 배워보기에 참 좋을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고 진학하게 됐다. 해외 문물을 배우고 외국 학교생활을 해볼 수 있었던 참 좋은 기회였다.”

다원디자인 초창기를 대표하는 포트폴리오. 당시 외국계 금융기업인 자딘플래밍(위쪽·1995년)과 골드만삭스(2000년) 인테리어에 한국적 감성을 녹여 큰 인기를 끌었다.다원디자인
다원디자인 초창기를 대표하는 포트폴리오.
당시 외국계 금융기업인 자딘플래밍(위·1995년)과
골드만삭스(2000년) 인테리어에
한국적 감성을 녹여 큰 인기를 끌었다.<다원디자인>

- 인테리어를 공부해보니 적성엔 잘 맞았나.

“인테리어에선 3차원 공간감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예술적 감각뿐만 아니라 수학적·과학적 감각이 필요했다. 과거 전공도 과학 쪽이었고 이과적 성향을 타고나기도 해서 참 재미가 있었다.”

- 1997년 외환위기 때 오히려 기회를 맞았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굵직한 외국계 기업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던데.

“졸업 후 뉴욕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7년간 일하면서 오피스 인테리어디자인 실무를 경험했다. 오빠와 주위의 권유로 내 이름을 걸고 인테리어 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1995년 7월 3명의 직원과 다원디자인 문을 열었다. 창업 이후 1년 6개월 만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우연찮게도 그 때 외국계 기업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면서 우리 회사도 같이 성장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기업의 오피스 디자인을 우리가 계속 맡게 됐다. 그때 골드만삭스 등 굵직한 외국계 금융기업의 오피스 인테리어를 많이 수주했다. 유학시절 익혔던 영어가 도움이 됐고, 왜 이런 인테리어 디자인을 제시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논리적으로 어필했는데 그게 먹혔다. 입소문을 통해 성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 창업한 지 1년이 좀 지나고 외환위기를 맞았으니 굉장히 당황스러웠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큰 고비였는데, 그땐 이래저래 너무 정신이 없어서 힘들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다. 당시 모든 인테리어 업체는 3부제를 시행하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외환위기를 말하니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외환위기 직전에 우리 회사에서 뽑은 사원이 한 명 있었다. 몇 달 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힘들었고 그래서 사실 권고사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마지막 날까지 나와서 너무 열심히 일을 하더라. 그 때 그 모습을 보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직원의 별명이 ‘복덩이’다. 좋은 일만 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힘든 일만 계속 있는 것은 아니니 희망을 버려선 안 되겠더라.”

- 인테리어 업계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곳이 많지 않은데, 다원디자인의 규모가 이만큼 커진 것은 경영능력 덕분인 것 같다. 흑자도 꾸준히 내고 있는데 실적을 유지한 비결이 있는지?

“외국계 기업의 인테리어를 주로 하다 보니 장점 중 하나가 커피 한 잔 대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실력 하나만 가지고도 수주가 가능했다. 과거 초창기엔 ‘영업력 탓’에 입찰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실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그런 측면에서 외국계 기업과의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또 디자인과 건설공사를 같이 하다 보니 수익성도 좋았다. 초반에 쌓은 기본 자금이 탄탄했던 게 지금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다. 사실 마케팅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수학적인 감각이 좀 좋은 것 같다(웃음). 또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글로벌 진출을 꾀하고 있는데, 베트남·인도·필리핀 등이다. 특별히 이들 나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해외 진출이 조금 늦은 편이다. 해외 공사에 대한 리스크를 늘 우려하다 보니 시작이 늦었다. 지금 해외 법인이 설립된 베트남·인도·필리핀 등은 국내 건설회사들이 이전부터 주로 진출했던 나라들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비전이라기보다 국내 건설업계의 흐름을 따라 합류하게 됐다. 우리가 신경을 써서 잘 준비해야 할 부분은 각 나라의 철저한 법적·제도적 규율 문제와 국민성, 자재 수급 문제 등이다. 이런 것들을 잘 파악해서 나가야 손해가 없다. 특히 믿을만한 직원을 보내야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조서윤 회장.이원근
조서윤 회장.<이원근>

- 다원디자인만의 디자인적 핵심 요소, 키워드는 무엇인가.

“고객이 매번 다르듯 핵심도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은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를 높이고 지향하는 목표에 닿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자 한다. 우리 회사의 디자인적 핵심요소는 ‘Simple Design Quality’다. ‘Simple’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경영과정도 간결하고 스피드 있게 진행한다는 것이고, ‘Design’은 우리의 실생활적 모든 상황에서 디자인적 감각을 키우고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Quality’는 디자인과 공사의 품질만이 아닌 직원 본인들의 실력적 품질, 대화적 품질을 생각하라는 의미다.”

- ‘경영도 심플하고 스피드하게’라고 했는데, 외국계 기업의 특성이 다원디자인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맞다. 과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영을 할 때 말을 위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본론만 간단하게, 단순하게 하는 것이 좋다. 디자인에 대한 조언을 할 때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필요 없다’고 한다.”

- 외국계 기업과 국내 기업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느끼는 차이점이 있나.

“프로세스 과정의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수준에선 차이가 없다. 최근 국내 많은 기업들에서도 직원들의 근무 생활적 반경을 굉장히 예민하게 생각해 편의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포트폴리오가 있다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자딘플래밍(Jardine Fleming)’이라는 외국계 증권회사였는데, 당시 한국적 콘셉트를 적용해서 디자인 했다. 창호지를 이용하고 빗살무늬도 넣고. 디자인 접근도 좋았고 공사 품질도 굉장히 잘 나와서 업계 내 입소문이 났다. 이후 많은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졌다. 그때 그 공사가 골드만삭스까지 연결하는 결과를 만들어 지금의 다원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특히 골드만삭스와는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작품이 마케팅이다’ ‘It speaks itself’를 직접 느꼈던 프로젝트였다.”

- 지금도 디자인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지? 그렇다면 디자이너 겸 경영인으로 생활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하다.

“경영이라고 하는 게 엄청나게 획기적인 성과를 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매일 조금씩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의 경우엔 디자이너들에게 큰 틀에서 약간의 조언을 하는 정도로 봐주고 있다. 그런데 가끔 크리에이티브를 중시하는 디자이너의 특성을 누르고, 고객의 취향이나 상업성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있어 난감할 때가 있다. 금전적 이득과 별개로 작품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에게 다른 사항을 요구해야 할 때, 그때가 어렵다.”

다원디자인이 맡았던 구글코리아 내부 인테리어.다원디자인
다원디자인이 맡았던 구글코리아 내부 인테리어.<다원디자인>

- 디자인적 영감은 어디서 받나?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말하면 일단 깊게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논리에서 시작을 하기도 하고 예전에 봤던 잡지나 실제 디자인 등 이런 것들을 쭉 되새겨 본다. 그러다보면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오른다. 무작정 길게 시간을 들인다고 영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순간이고 찰나다. 순간적 집중이 이어질 때 생각이 난다.”

- 가족에 대한 얘기도 궁금하다. 가정을 유지하면서 여성이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 힘든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사실 나는 헤어짐을 겪어서 조언을 할 수 있는 경우다. 이 업계에선 특히 여자 직원의 경우 파탄 직전까지 가는 이들이 꽤 많다. 그럴 땐 회사를 잠시 그만 두고 아이를 한 명 더 낳고는 이후에 다시 복직을 하던데, 복직 하고 나서도 육아하랴 회사일 하랴 너무 힘들어한다. 사회생활에 대한 열정과 아이 케어 둘 사이에서 굉장히 고심하더라. 인테리어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예술직이다보니 근무시간도 딱 정해져있다고 보기 힘들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디자인이라고 하는 게 업무시간 내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라 퇴근하고 나서도 늘 일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니 특히 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다.”

- 업계 내 대표직을 놓고 봤을 때 성비는 어떻게 되나.

“업계 도급순위 20위권 내 기업들을 살펴보면 여성 리더는 거의 없다. 여성 디자이너들은 많은데 여성 대표는 찾기 힘들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일단 현재 사회 분위기상 어려움이 있긴 하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조금만 주위에서 도와주면 좋겠다.”

- 혹시 실패나 어려웠던 점에서 오히려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은 없는지?

“창업 초기의 외환위기나 이후의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매번 많은 걱정을 했지만 사실 오히려 우리에겐 위기가 기회로 작용했다. 매년 ‘힘들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큰 것이었지 특별한 실질적 위기는 없었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 경제를 얼어붙게 하다 보니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어떡하겠나. 경제보다 더 중요하고 위급한 것이 생명이고, 이번 위기 역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늘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내성이 생겼다(웃음).”

다원디자인이 설계한 LG사이언스파크(왼쪽)와 한국타이어 테크노돔.다원디자인
다원디자인이 설계한 LG사이언스파크(왼쪽)와 한국타이어 테크노돔.<다원디자인>

- 시간이 날 때 즐기는 취미생활이 있는가.

“긴 시간이 주어질 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추운 것을 싫어해서 따뜻한 나라로 가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평상시 시간이 날 땐 간단하게 운동하고 집안 청소를 즐긴다.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니 실내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작은 것들에 대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집안 정리와 옷 정리, 인생을 정리하는 습관이 드는 것 같다.”

- 앞으로의 꿈은?

“어떤 상황에 접하든 1순위가 회사다. 회사가 평안하게 잘 되는 것이 가장 큰 꿈이고, 또 좋은 후계자에게 이것을 물려주는 것 그것을 꿈꾼다. 지속경영이 되길 바란다. 어느 때가 됐을 때 내가 물러날 수 있는 그런 후계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게 꿈이다.”

- 후배 여성 사회인들에게 혹은 동종업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본인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라. 가장 기본적인 얘기지만 이 얘길 꼭 해주고 싶다.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은 버려도 된다. 또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가족과 가정의 형태가 있긴 하겠지만, 판타지 같은 사회적 강박에 본인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더 넓어졌으니 앞으로의 시대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남성보다 더 좋고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소수이기 때문에 능력이 더 튀어 보일 수 있다. 여성의 자존감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공정한 정의가 살아있으니, 판단과 중용의 한 가운데서 모든 일을 판단한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조서윤 회장

1982년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졸업

1985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학사

1985~1987 Bass & Bass Ltd., Interior Designer

1986 ISP Competition, Edward's Department Store 부문 1등

1987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대학원 인테리어 디자인학과 석사·IBD Portfolio, Review Competition, Clothing Shop 부문 1등

1987~1989 Stevens & Wilkinson Inc. Interior Designer

1989~1991 Keiser Associates, Project Manager

1990 NCIDQ (National Council for Interior Design Qualification)

1995~(주)다원디자인 대표이사 회장·중앙대학교 대학원 건축미술학과 겸임교수

2008·2009·2011 한국 FM 학회 FM 대상 리모델링부문 대상

2016 대한전문건설협회 실적우수상 수여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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