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의 역설
코로나19 사태의 역설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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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고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경제 충격과 삶의 고통이 커지는 한편 이런저런 이유로 지지부진했던 일들이 급진전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른바 ‘코로나의 역설(아이러니)’이다.

비록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로 한시적이긴 해도 전화 상담과 처방이 가능한 원격진료가 허용됐다. 진료비는 계좌이체 등으로 송금하고, 처방전은 이메일이나 팩스로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보내주는 방식이다. 원격진료는 이미 미국·중국·유럽·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보편화됐다. 하지만 한국에선 의사협회 등 관련 단체가 반대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진료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고용제도와 노동문화도 바뀌고 있다. 구호로만 외칠 뿐 선뜻 나서는 데가 없었던 재택근무와 시차출근 등 유연근무제가 자연스럽게 확산했다. 요지부동이던 ‘9 to 6’(오전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 근무체계가 사회적 요구에 의해 근로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변화했다. 

특히 서울 구로구 소재 보험사 콜센터 직원들의 집단감염 사태는 보험사는 물론 은행, 이동통신사에 이르기까지 콜센터 재택근무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콜센터는 고객과 얼굴을 직접 대면하진 않지만 사실상 ‘준(準)대면 업종’으로 여겨져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왔다. 

직원이 집에서 고객정보를 다루다가 유출되면 금융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민감 업종이라는 점도 감안됐다. 이를 이유로 개인정보 보호 솔루션을 개발한 은행에 대해서까지 금융감독원이 재택근무에 제동을 걸었는데,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제도는 있지만 유명무실했던 것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새삼 존재감을 확인시키거나 빛을 발했다. 이용하려면 눈치가 보여 망설이던 가족돌봄휴가의 경우 떳떳하게 밝히고 쓸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말로만 외치던 일과 가정의 양립 문화,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인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 것이다. 

각 급 학교의 개학 연기는 원격교육의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교육부와 학교 교직원들이 온라인 동영상 강의 자료를 준비하고 바뀐 학사일정에 대응하느라 분주했지만, 덕분에 원격교육 시스템 전반을 정비하도록 이끌었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면서도 정작 이를 활용한 유연근무제와 원격의료, 원격교육 등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후진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낡고 불합리한 규제와 뿌리 깊은 관행, 기득권에 안주하는 관료주의와 이익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라는 극한 상황이 한국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의료·노동·교육 분야의 혁신을 이뤄냈다. 더구나 이들 혁신은 대다수 선진국이 이미 실행하며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들이다.

사람은 새로운 체험을 통해 나름 이득을 얻으면 과거의 낡은 경험이나 습관으로 돌아가려 들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역설적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정착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르도록 해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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