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로 한민족의 시원 바이칼 호를 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한민족의 시원 바이칼 호를 가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장
  • 승인 2020.04.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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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울란우데까지 70시간, 4500km 기차 여정

유라시아 기마 민족의 발원지이면서 중요한 이동 경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바이칼 호수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오래전에 항공편으로 러시아의 이르쿠츠크(Irkutsk)로 가서 바이칼 호수를 방문했었는데 이번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여행자들의 로망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가서 바이칼 호수와 알혼섬을 찾는 여정을 택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윤내현 교수가 고증하는 고조선 국경과 근접해서 달리기 때문에 더욱 설레었다.

<사진=지평인문사회연구소, 그래픽=이민자 팀장>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는 고조선 국경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세 시간이 채 못 되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두 차례 방문한 바 있지만, 시내에 있는 신한촌 기념비는 다시 찾았다. 이 기념비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연해주에서의 독립투쟁을 기리고 러시아의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1999년 광복절에 세워졌다.

신한촌 비문.<지평인문사회연구소>

바이칼 여정을 시작하면서 신한촌 비문을 다시 읽었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는 과거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던 우람한 증기기관차가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 전시되어 있고 이곳이 횡단철도의 기점이라고 알려주는 작은 푯말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달리는데, 이르쿠츠크까지도 33개 역 4107km를 72시간에 걸쳐 가야 한다. 고조선 이래 오랫동안 한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만주 지역의 외곽을 연접해 달리는 구간이다. 고조선 국경 철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서 거사를 일으켜 한국인의 독립투쟁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열차는 만주를 통해 시베리아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1914년 이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까지 갔던 춘원 이광수는 훗날 그의 소설 <유정>에서 그 풍광을 그렸다.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을 “가도가도 벌판, 서리 맞은 풀바다. 실개천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어디를 보아도 산 하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착 달라붙은 듯한 천지. 구름 한 점 없건만도 그 큰 태양 가지고도 미쳐다 비추지 못하여 지평선호를 그린 지평선 위에는 항상 황혼이 떠도는 듯한 세계”라고 썼다.

1936년 손기정 선수는 이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올림픽 출전길에 올랐다. 그는 일본에서 부산, 경성(서울)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리는 군수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2주일 만에 베를린에 당도했다. 마라톤의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쥔 손기정, 남승룡 등은 일본 선수단의 축하연에 참석하지 않고 따로 모여 벽에 태극기를 걸고 몰래 축승회 모임을 가졌다.

다음날 오전 11시경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객실은 2인실, 4인실, 6인실로 모두 침대차로 돼 있는데 일찍 예약한 덕분에 2인실을 탈 수 있었다. 2인실은 전 객차 중 한 량 뿐이다. 양쪽 벽면에는 마주 보는 2개의 침대, 가운데는 작은 탁자가 있고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는 언제라도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열차 내에는 식당차가 따로 있으나 객차마다 뜨거운 물을 쓸 수 있고 전기 코드도 있어 준비해온 라면, 햇반 등으로 훌륭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긴 여정이어서 여러 가지 먹거리를 준비해 장거리 여행에 대비했다.

한 시간 남짓, 열차는 지선에 있는 라즈돌로예 역을 스쳐 지난다. 회한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지난번 연해주 방문 때 이 역에 들러보았으나 이렇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937년에 바로 이곳에서 떠났을 그 시절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들어 숙연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열차는 100km를 달려 약 2시간 후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연해주는 만주의 북간도와 함께 수많은 애국지사가 의병과 광복군이 되어 조국광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일제와 맞서 싸운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연해주에 올 때마다 들렀던 곳이지만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유·무명의 우리 선조들이 조국의 광복과 후손의 번영을 위해 이곳에서 스러져 갔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하바롭스크·울란우데에서 마주한 한민족 흔적

연해주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지평인문사회연구소>

열차는 다시 600km를 계속 달려 밤 11시경 아무르 강변에 위치한 극동부 하바롭스크 지방의 주도이자 극동 최대의 도시 하바롭스크(khabarovsk)에 당도했다. 하바롭스크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이 만나는 곳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1858년 중국과 아이훈 조약을 체결하면서 군 주둔지가 되었고 이후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로 이 지역의 중심 도시가 된 신흥 도시이다.

이곳은 항일운동과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근거지였으며, 최초의 여성 한인 공산주의자인 김알렉산드라가 33세의 나이로 1918년 러시아 혁명 당시에 백군(정부군)에 의해 총살당했던 곳이다. 그녀는 열혈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죽기 전 조선 13도를 기리며 13 발자국을 걸은 뒤 총에 맞아 순국했고 그 시신은 아무르강에 버려졌다.

열차에서 내리니 철로변에 인근 주민들이 나와 딸기·머위 등 과일과 집에서 구운 빵, 과자류를 좌판에서 팔면서 여행객을 맞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깐이나마 피로를 풀었다. 몇 개의 역을 더 지나면서 1200km를 달려 다음날 오후 6시가 넘어 만주 대륙의 최북단에 접하는 스코보로디노(skovoroclino)역에 이르렀다. 스코보로디노는 중국의 만주 최북단 아무르강 유역의 도시로 바이칼아무르철도(BAR)와 연결되는 곳이다. 열차는 700km를 달려 다음 날 아침 8시경 네르챠강을 건너 과거 중국·러시아의 교역 중계지였고 양국 간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된 도시 네르친스크 인근을 지났다. 러시아의 요새이자 교역 중심지였던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비켜 가는 바람에 쇠퇴한 도시이다.

이제 열차는 서쪽으로 몽골 국경 지역으로 다가갔다. 이곳부터는 광활한 대초원이 나타난다. 말 달리기 좋은 전형적인 초원길을 300km 가량 기차로 달려 오후 3시경 치타 역에 닿는다. 동부시베리아의 광공업과 문화중심지인 치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 소유가 된, 하얼빈-창 춘을 지나 두만강 유역인 투먼까지 연결되는 만주횡단철도(TMR)의 기점이다.

이어 600km 떨어진 브리야트 공화국 수도인 울란우데(ulan-ude)에 도착했다. ‘붉은 강’이라는 뜻의 울란우데는 과거 몽골 제국의 땅이었다. 이곳이 기점인 몽골횡단철도(TMGR)는 몽골 울란바토르, 중국 베이징과 텐진까지 연결된다. 브리야트 공화국은 러시아 땅이나 브리야트인이라 불리는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브리야트인들은 이곳 외에도 몽골의 헨티주, 그리고 내몽골 지역 등 세 곳에 살고 있다.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브리야트인이라는 것을 이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브리야트인들은 생김새가 우리와 흡사한데, DNA도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이곳은 바이칼 남동부 지역으로 한민족의 시원, 이동 경로와 관련해 주목을 받는 곳이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브리야트인들은 피부색과 생김새 등이 정말 한국인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울란우데에서 500km를 더 달려 바이칼 호수를 끼고 돌아 드디어 이르쿠츠크에 당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0시간 이상을 달려와 아침 8시가 좀 못 돼 열차에서 내렸다. 바로 사우나로 직행해서 만 3일에 걸친 열차에서의 피로를 풀었다. 더운물에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이르쿠츠크는 동시베리아의 중심 도시로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곳이다. 정치범의 유형지이자 10월 혁명 후 러시아 내전의 격전지이기도 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바이칼 호수와 알혼섬을 찾아서

바이칼 호수 전경.<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르쿠츠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버스편으로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으로 향했다. 버스로 네 시간 동안 약 250km를 달려 체르노르두 마을을 지나 바이칼 호수의 허리춤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나루터에 이르렀다. 마침내 바이칼 호수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 세계 담수호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가장 큰 담수호로 인류가 400년간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담고 있는 곳이다. 바이칼 호수는 약 365개 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고 앙가라 강 단 한 개 강으로만 물이 빠져나간다. 또 이곳은 북방 초원로의 중심에 위치해 북방 기마민족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곳이다.

나루터에서 페리를 타고 바이칼 호수의 22개 섬 중 가장 큰 신비의 땅 알혼섬에 다다랐다. 섬 부두에서 군용차를 개조한 짚차를 타고 다시 초원길을 약 1시간을 달리면 쿠지르(Khuzir) 마을이다. 가는 곳마다 옛 우리나라나 몽골에서 볼 수 있는 성황당과 유사한 돌무지와 나무에 색색으로 묶은 헝겊 천을 볼 수 있었다. 옛날부터 하늘에 소원을 빌면서 나무에 헝겊을 묶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4500km를 달린 끝에 알혼섬의 랏지에서 마침내 휴식의 첫 밤을 맞았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마을을 출발해 알혼섬의 상징 ‘부르한 바위’를 방문했다. 부르한 바위는 샤머니즘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으로 최초의 샤먼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북방 기마 민족의 샤머니즘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이어 알혼섬의 마지막 일정으로 섬의 북쪽 끝에 있는 ‘하보이곳’ 까지 가서 끝없이 펼쳐진 바이칼 호수의 장대한 전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알혼섬 방문 후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와 올 때와는 달리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기차로 70여 시간 걸리던 여정이 불과 네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바이칼 호수로 이어진 여정에서 한민족의 시원,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광활한 만주 지역 일대에서 전개된 한민족의 역사, 근세에 한민족의 애환과 독립운동을 위해 불타올랐던 선현들의 발자취 등,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한민족 삶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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