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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8 16:4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4대문명에 1000년 앞선 홍산문화, 그 주인공은 동이족
4대문명에 1000년 앞선 홍산문화, 그 주인공은 동이족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20.03.01 1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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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량·하기점촌·오한기·의무려산에서 찾아낸 선조의 고대 유적지

흥륭와 유적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20세기 초부터 근간에 이르기까지 중국 만주 서부의 랴오닝성과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에 걸치는 랴오허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 이래의 고대 유적지와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특히 1980년대에 우하량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고대 국가 유적이 발견되자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발굴 작업과 연구를 진행했다. 이 일대에서 일어난 고대 문명을 요하문명遼河文明이라 하는데 그 핵심이 홍산紅山문화이며 세계 4대 문명보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앞서는 고대 문명으로 입증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난관의 연속이었던 홍산문화 답사기

홍산문화는 넓은 의미로는 라오허 일대의 문화유적을 모두 포함하는데 동쪽으로는 차오양朝陽(조양) 넘어 의무려산, 서쪽으로는 연산 산맥 넘어 내몽골 초원, 남쪽으로는 발해만, 북쪽으로는 시라무룬강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시대적으로는 신석기 시대-동석병용기 시대-청동기 시대를 망라하며 가장 오래된 문화는 기원전 8000~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내몽골 자치구와 랴오닝성 접경 지역인 츠평, 차오양, 링위안, 카쭤, 젠핑 등의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이전인 기원전 3500년경에 이르는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것을 말한다.

필자는 홍산문화 지역을 몇 차례 답사했는데 교통 여건이 열악해 RV 차량과 기차 등을 다양하게 이용했다. 현지 전문가의 도움을 계속 받았음에도 가장 고생이 많았던 답사 여행이었다. 우선 답사 지역이 굉장히 넓게 분포돼 있고, 비포장도로로 가야 하는 외진 곳도 많은 데다가 네비게이션이 잘 작동하지 않거나 안내판이 없는 등,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홍산지역의 일부인 츠펑 시만 해도 면적이 9만㎢로 거의 우리나라만 한 크기이다.

적봉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하량에서 적봉까지 RV 차량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내린 폭설로 고속도로가 폐쇄돼 국도로 향했으나 국도마저 공사 중이란 팻말을 세워진 채 막혀버렸다. 어렵게 당국과 연락이 돼 물어보니 고속도로와 국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달라 서로 막아버린 줄 몰랐다 한다.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마침 차고지가 우리 목적지인 적봉 시내여서 폭설 속에서도 우회로를 찾아서 돌아간다는 현지 택시를 만나 안내를 받게 되었다. 건평과 적봉을 길게 가로지르는 노노아호산努魯兒虎山을 통과하면서 잘 연결돼 있지도 않은 험한 길을 10시간 이상 달려 간신히 적봉 시내에 도착했다. 적봉 답사 후 다시 선양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폭설로 인해 도로는 물론 공항까지 폐쇄돼 열차 편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남았다.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 어렵게 완행열차표를 구해 15시간 정도 걸려 선양에 도착했다.

또 두 번째 여행에는 의무려산에서 아오한기로 이동하던 중 네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아서 해 저문 산길을 무작정 달리기도 했고, 어렵사리 길을 찾아 포장도로에 당도하니 공사로 길이 막혀 수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가점촌에서는 목적지 부근에 당도해도 유적지를 못 찾아 인근 동네를 찾아 지리를 잘 아는 사람에게 동행을 부탁해야 했다. 아무튼 쉽지 않은 답사였으나 그만큼 보람도 컸다. 이 지역 탐사에 대해서는 경로를 따로 설명하지 않고 탐사 지역별로 소개를 하려 한다.

한반도 문화와 연결된 우하량 고대유적

신락 유적지.<지평인문사회연구소>

홍산지역 본격 탐사는 두 차례 모두 선양(심양·瀋陽)에서 시작했다. 선양은 랴오닝성 성도로 만주지방 최대 도시이며 고조선 이래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이후에도 북방 기마민족의 나라 요遼·원元·청淸으로 이어지면서 한민족 방계 역사의 터전이 됐다. 선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도 답사하지 못했던 고대 유적지인 ‘신러(신락·新樂) 유적’을 찾았다. 신러 유적은 선양 시 북쪽 근교에서 1973~1978년에 걸쳐 발굴된 신석기 시대 유적인데 집자리 유적과 함께 마제석기·타제석기·세석기 등 각종 석기, 토기, 옥공예품 등의 유물이 발견됐다. 가장 오래된 하층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7200년 전, 중층 문화는 5000년 전, 상층 문화는 4000년 전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상층 문화가 고조선과 같은 시기이다.

이곳에서 한반도에서도 널리 발굴된 신석기 문화 유적이자 북방민족 고유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발굴됐다. 요서, 요동 지역과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빗살무늬 토기의 분포는 한반도와 북방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밝히는 지표유물 중 하나이다. 신러 유적 발굴지에는 복원된 집터, 토기, 공예품, 장식품 등을 전시하는 유적지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선양의 랴오닝성 박물관에도 이곳에서 발굴된 신러 유물이 다수 전시돼 있다.

차오양(조양·朝島)은 선양 동쪽 약 250km 지점 다링허(대릉하·大凌河) 중류에 위치한 도시이다. 차오양 시는 인구 약 340만명, 면적 약 2만㎢로 한족 외에 몽골족, 회족, 만주족, 조선족 등 북방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시내를 이루는 2개 구, 북표·능원의 2개 시, 차오양 젠핑의 2개 현 등이 있다. 차오양은 선양과 베이징의 가운데 있는 도시로 기 원전 3세기경부터 역사에 등장했고 기원후 4~5세기경 5호 16국 시대에는 전연, 후연, 북연의 땅이었으며, 당나라 시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정치 · 경제·문화의 중심도시 기능을 했던 곳이다.

차오양 역시 고대 한민족의 활동 무대로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고구려 발해 시대에는 중국과의 접경 지역이었다. 6세기경에는 이름이 영주였으며, 실크로드의 동북아 최대 국제무역도시로 성장하면서 고구려와 서역 간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서양인들의 모습은 이 시대에 이곳을 거쳐 들어온 페르시아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고분(황남대충남분)에서 발굴된 유리 제품들과 비슷한 유물이 인근 지역인 베이파오(북표·北票)에서 발굴돼 한반도와 페르시아와의 고대 교역 경로를 밝혀주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하가점하층 문화는 홍산에서 처음 발굴됐으나 차오양 일대에서도 다수의 유적·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차오양 시내에는 남탑과 북탑 2개의 전탑이 있는데 13층으로 45m에 달한다. 남탑은 요나라 때, 북탑은 당나라 때 세워졌다. 북탑은 동북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탑이다. 뉴허량(우하량·牛河梁)은 차오양 시내에서 약 120km 남서쪽으로 링위안(능원·凌源) 시에 있는 마을로 젠핑(건평·建平), 카쭤(객좌·客左) 등 주요 홍산 유적지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또한 이곳은 랴오닝성, 내몽골 자치구, 하북성이 만나는 접경 지역이기도 하다.

우하량 유적은 1930년대에 발굴이 처음 시작됐는데 1970년대 말부터 발굴 작업이 본격 추진돼 1979년 대형제단 등 신석기 시대의 원시종교 유적이 카쭤현 동산취에서 발견됐고, 이후 1983년에서 1985년에 걸쳐 세계를 놀라게 하는 우하량 홍산 유적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단, 여신묘, 적석총 등 수많은 유적과 토기, 옥기 등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의한 결과, 연대가 기원전 3630(±110)년까지 거슬러 가는 고고학적 발굴이었다.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 이 유적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은 우하량 유지 박물관을 세우고 유적지 안내판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약 5500년 전에 갖춘 유적지”라 소개하고 있다.

우하량 16개 발굴 지점 중 제2지점은 총·묘·단이 완비된 140m에 달하는 유적지가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굴되어 세인을 놀라게 했고 지금은 유적지 전체를 철골 돔으로 덮은 박물관을 세웠다. 필자가 도착했을 당시 ‘휴관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고 더구나 그 기간이 6개월이어서 크게 실망했으나 현지에서 동행한 전문가가 나서서 책임자를 수소문해 부탁해서 특별히 내부를 상세히 볼 수 있었다. 여신묘는 우하량 북쪽 구릉 위에서 발굴됐는데 연대가 5575(±800)년이라 한다. 이 여신묘에서 발견된 몽골인의 얼굴을 한 여신상은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이다.

우하량 유적지의 돌무지 무덤(적석총)은 돌을 쌓아 만든 무덤 양식으로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의 초기무덤 양식이다. 적석총은 중국식 토광묘나 목관묘와는 확연히 다른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나타나는 한민족의 고유 유적이다. 우하량 유적지는 기원전 35세기경에 이 지역에 고대 국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중국 사서에는 이 지역을 북방 오랑캐의 땅이라 하여 기록된 내용이 없다. 따라서 이 유적은 우리가 그동안 배달국으로 추정해왔던 단군조선의 선대 문화인 배달국 문화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북부와 요서·요동은 단일문화”

츠평(적봉·赤峰)은 내몽골 자치구의 동남부에 있는 직할 시로 시 중심지는 우하량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거리에 있다. 면적이 9만km에 달하는 츠평 시에는 시 정부가 있는 홍산구를 비롯해 아오한기, 파림좌기(바린좌기·巴林左旗), 파림우기(바린우기·巴林右旗) 등 12개 구·현·시로 구성돼 있다. 랴오허 지역 일대에서 1000여곳 이상의 고대 유적지가 발굴됐는데 그중 700여곳 이상이 츠평 시에 밀집되어 있다.

초원 실크로드에 자리 잡은 츠평에서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와 토기, 청동기 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대거 발굴되자 고대 문화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2014년 츠펑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츠펑 홍산구 시가지에 거대한 바위산인 홍산紅山이 있다. 원래 주인이었던 몽골인들은 붉고 큰 바위라는 뜻인 ‘울란하다’라 불렀으며 중국에 편입되면서 홍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홍산에서는 1930년대에 수많은 신석기 시대 유적들이 발굴됐는데 중국의 신석기 문화인 황허 유역의 앙소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으로 밝혀져 ‘홍산문화’라고 불렸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홍산을 바라보면 경이로운 느낌마저 든다.

김석동 대표가 하가점하층문화 발굴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지평인문사회연구소>

적봉 시내에서 동쪽으로 15km 지점에 있는 하가점촌에서는 기왕에 발굴된 홍산문화와는 다른 청동기 문화층이 1960년대에 발굴되었다. 이 문화층은 기원전 14세기를 기점으로 먼저 있었던 하층 문화권 유적과 나중에 있었던 상층 문화권 유적으로 나눠진다. 먼저 존재했던 청동기 문화가 하가점하층 문화인데 이 문화권은 시대적으로 기원전 2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츠펑 박물관에는 각종 토기와 비파형동검 등 이 지역에서 출토된 다수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곳은 여러 문헌에서 고조선 문화권으로 밝히고 있는 지역으로 빗살무늬 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 치가 있는 석성 등 한민족 고유의 유적으로 간주하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다. 이 유물들은 연대적으로도 고조선 시대와 일치하는 만큼 고조선의 문화유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답사하기를 기다렸던 곳이다.

한편 상층부의 하가점상층 문화는 초원 제국의 특성이 나타나는 동물 문양의 장식 등이 출토되어 후일 유라시아 대초원을 장악하는 기마군단의 출범을 예고했다. 하가점 문화가 이렇게 중요한 발굴임에도 하가점촌에 와서도 발굴 지역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곳 지리와 발굴 내용을 아는 주민을 찾아 안내를 받아 발굴 지점에 이르니 ‘하가점 문화 유지’라는 표지석 외에는 안내판이나 발굴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인근에는 대추나무가 가득 있어 주민에게 물어보니 유적지 발굴 후 오래전부터 과수원이 됐다고 한다.

아오한기(오한기·救漢族)는 츠평 시 남동부의 현급 행정구역으로 ‘아오한’은 몽골어로 ‘맏이’라는 뜻이다. 아오한기는 고대 문화의 보고다. 소하서, 흥륭와, 조보구, 홍산, 소하연, 하가점하층 상층 문화 등 홍산문화의 핵심적인 유적들이 나타난 곳이다. 특히 소하서, 흥륭와, 조보구 문화유적은 아오한기에서 처음 발굴됐다. 아오한기 시내에서 남서 쪽 약 50km 지점에 흥륭와興隆몇 유적지가 있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6200~5000년경의 고대 문화유적인데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옥기를 발견하면서 알려졌고 1983~1994년에 발굴했다. 4만km나 되는 면적에 175개의 집터가 발견됐는데, 신석기 시대의 대규모로 계획된 주거단지의 흔적이 역력하며 주위는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다. 세계 최초의 계획주거 지역이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취락지라 하여 ‘중화 제1촌’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도 옥결(옥 귀걸이) 등 옥 장식품이 출토됐다. 흥륭와 유적지의 옥은 동쪽으로 450km나 떨어진 수암에서 출토되는 수암옥으로 이때 이미 만주 일대에서 교류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산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옥 문화다. 옥 귀걸이 등 다양한 형태의 옥 제품이 홍산문화 지역에서 발굴되었는데 고성군 문암리와 여수시 안암리 등 한반도에도 비슷한 시기의 옥결이 발굴된 바 있다. 또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이곳에서 대거 발굴돼 한반도 문화와의 연결 관계를 증명해주고 있다.

우실하 교수는 홍산지역 옥 유물과 빗살무늬 토기 등을 한반도 출토 유물과 비교하면서 “기원전 6000년에 흥륭와 문화 단계에서는 한반도 북부 지역과 요서, 요동 지역이 하나의 단일문화”라고 밝혔다. 흥륭와 유적지를 발굴한 후 다시 흙을 덮어버려 지금은 풀밭이지만 사각형 집 자리의 흔적은 표시해두고 있다. 파림우기는 츠펑 시 북부에 있는 인구 18만명의 작은 현급 도시로 북방민족이 다수 거주하는 홍산문화 출토 지역이다. 파림우기 박물관에는 홍산문화의 옥기와 거란 시대 이래 금·원·명·청대까지의 민속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파림좌기는 파림우기의 동쪽에 연접한 인구 36만명의 현급 도시이다. 이곳 역시 북방민족이 많이 살고 있고 홍산문화 옥기가 출토된지역이 다. 요나라 도성이었던 상경임황부가 있던 곳이다. 거란이 일으킨 요나 라의 건국자 야율아보기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요사에 의하면 요나라가 (고)조선의 옛 땅에서 일어나 고조선을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땅이 고조선의 땅이었다는 뜻이다.

츠평 시내로 오면 골동품 상점가에서 다양한 출토유물과 민속품을 구경할 수 있다. 당국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출토 유물의 거래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박물관급 유물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한 가게에서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석상이 나타났다. 돌의 재질은 달랐지만 외형은 영락없는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다. 츠펑에서 수집된 유물이라 한다. 사진을 찍어 남겨뒀다.

학자들, 의무려산을 한민족 주산으로 보다

의무려산.<지평인문사회연구소><br>
의무려산.<지평인문사회연구소>

만주 지역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랴오허 서쪽인 랴오닝성 북진北疑에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의무려산(이우뤼산·医巫閭山)이 있다. 순임금이 봉해진 곳이라 하며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조가 제사를 지냈다. 의무려산은 중국의 12대 명산, 동북부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곳인데 이 산은 고조선의 핵심 지역의 하나로 옛 도읍지였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는 한민족의 진정한 주산주이 의무려산이라 한다. 조선조 이래 많은 학자가 요녕성 북진 시에 있는 의무려산을 고조선의 주산으로 보고 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을 크게 치료하는 산’이란 뜻의 의무려산은 흰 바위로 돼 있어 백악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명산이다.

‘진산 의무려산 아래 고구려 주몽이 졸본부여에 도읍하다’(허목), ‘의무려산은 동이족과 중국족이 만나는 곳으로서 동북의 명산이다’(홍대용), ‘북방 영토의 주산이 의무려산인데 그 내맥이 백두산이 됐다’ 장기연), ‘의무려산이 고조선이 활동 무대로 삼은 중심축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리 민족의 진정한 주산은 백두산이 아니고 의무려산이다.’ (김두규 교수의 국운풍수, <조선일보>)

이종호 박사는 고조선이 평양에서 도읍을 옮겼던 백악산 아사달이 바로 이 지역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의 팔도총론에서 조선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곤륜산 한 지맥이 대사막의 남쪽으로 뻗어 동쪽으로 의무려산이 되고 요동벌판을 지나 다시 솟아난 것이 백두산으로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됐다”라고 하여 의무려산이 한민족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홍산문화의 발굴은 인류의 문화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한민족 문화의 원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한 계기가 되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중국의 화하족華夏族이 아니며 한민족 계열의 동이족東夷族이다.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빗살무늬 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은 중국의 중원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 유형으로 랴오허 지역과 만주, 한반도에서 오래전부터 활동해온 동이족의 문화유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암각화, 옥결 등은 이 지역과 한반도의 연결 관계를 증명하는 유물이다. 홍산문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를 통해 베일 속에 가려진 한민족 고대사가 그 빛을 밝히기를 기대해보면서 어려운 여정을 마무리했다. 홍산문화 지역을 탐방할 때마다 윤규섭 지린은행 부행장이 현지 전문가를 섭외해주고 안내와 통역 등도 맡아주어 어려운 탐사 여행을 해낼 수 있었다.

&nbsp;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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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완 2020-05-25 17:57:13
김석동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 새롭게 알게 된
우리나라 상고사 관련 유투브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보세요~~!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함께 지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uJXK1co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