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스토리] '기생충'의 숨은 조력자, 이미경의 할리우드 파워
[비하인드스토리] '기생충'의 숨은 조력자, 이미경의 할리우드 파워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2.12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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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석권까지 홍보전 온 힘 기울여...동생 이재현 회장과 'CJ 문화제국' 이루는 게 꿈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아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뉴시스
영화 '기생충'이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영화 '기생충'이 기념비적인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르면서 배급사 역할을 담당했던 CJ그룹과 이를 진두지휘했던 이미경 부회장의 역할에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특정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아닌, 전 세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8000여명의 투표로 선정되기 때문에 ‘로비전’에 가까운 홍보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매해 전 세계 최대 이목이 쏠리는 홍보무대인 아카데미 시상식에 많게는 수천만 달러, 글로벌 인맥, 공격적인 프로모션 등을 총동원하는 이유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엔 아카데미 캠페인 전담팀이 따로 있을 정도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기까지 투자‧배급사 CJ ENM과 북미 현지 배급사 네온의 적극적인 홍보전도 한몫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캠페인에 뛰어든 CJ ENM은 지난해 칸영화제 이후부터 외신 인터뷰와 영화제·시사회 참석, 관객과의 대화, 파티 등으로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배우‧감독‧프로듀서 등 할리우드 조합원들의 마음 잡기에 나섰다. 물론 '기생충'이 워낙 뛰어난 영화라서 아카데미를 석권한데 대한 이견은 없지만 그 상이 비영어권 영화엔 인색했던 터라 온 힘을 들여 홍보전을 펼쳤던 것이다.

지난 9일(현지시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 아시아 영화 최초 각본상, 아시아계 역대 두 번째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영화의 신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92년 역사를 뒤집은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CJ의 전폭적인 뒷받침 없이는 '기생충'의 글로벌 흥행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기생충'의 올해 아카데미상 독식은 한국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의 공이 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현지시각) 보도하기도 했다.

북미 마케팅에 100억원 투자..."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이었다"

아카데미상은 영화에 대한 전 세계 관객 반응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산업을 이끌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 약 8000여명 회원들의 표심이 중요하다. ‘아카데미 캠페인’은 예산·인력·글로벌 영화계 네트워크·공격적인 프로모션이 모두 결합돼야 하는 복합적인 글로벌 프로모션인 셈이다.

인력·예산·경험이 부족한 CJ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몸으로 부딪히기’였다. 아카데미 캠페인을 총괄한 CJ는 우선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맡고 있는 네온(NEON)과 역할을 나눴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해외배급팀에서 전체 캠페인 전략을 총괄하며 캠페인 예산 수립부터 전 세계 '기생충' 개봉 현황 관리, 관객·오피니언 리더 대상 타깃 시사회 개최, 광고, 이벤트와 같은 현지 프로모션 등을 펼쳤다. 현지 노하우가 풍부한 네온은 북미 프로모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시사회 진행, 북미 영화제 출품 등 실무를 맡았다.

무엇보다 직접 투표권을 가진 오피니언 리더들의 표심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지난해 6월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 공식 상영에 이어 그해 9월부터 2020년 1월 사이에 영화예술아카데미 회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시사회만 수십회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감독조합과 배우조합, 프로듀서조합 등 미국 영화계 주요 직능단체를 대상으로도 시사회를 개최했고, 그 전후엔 리셉션, 파티 등 이벤트를 열어 소위 ‘기생충 대세론’ 만들기에 집중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은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 북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 이후 한국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배우 송강호가 콜로라도에서 열린 텔루라이드 영화제를 돌아다니다가 쌍코피가 터졌다는 일화를 밝힐 정도로 바쁘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다.

CJ가 북미에서 '기생충'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원 가량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전 세계 53개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15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골든글로브(외국어영화상), 전미 비평가위원회(외국어영화상), 뉴욕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LA 비평가협회(작품상·감독상·남우조연상) 등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총 30여개의 상을 휩쓸었고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CJ 관계자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생충' 관련 모든 활동이 넓은 범주에서는 모두 ‘아카데미 캠페인’ 일환이라 할 수 있다”며 “미국 할리우드의 거대 스튜디오는 아카데미 후보 선정이 빈번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캠페인 전담팀’이 있는 반면 '기생충'은 한국 최초로 조직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고 후일담을 털어놨다.

'블랙리스트' 올랐던 이미경 부회장, '기생충'으로 화려한 부활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이자 투자자 역할을 맡았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뒤 제작진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이 부회장은 지난해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와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을 때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번엔 직접 나서서 소감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음악 프로듀서 데이비드 게펜이 공동 설립한 ‘드림웍스’와의 투자 협상을 주도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등장했다.

당시 이 부회장이 할리우드 거물의 마음을 산 덕에 CJ(당시 제일제당)는 큰손들이 투자를 위해 줄을 서는 드림웍스의 파트너가 됐고, 현재 이 부회장의 영향력 역시 할리우드 곳곳에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의 영어 이름인 ‘미키 리(Miky Lee)’는 미국 문화산업 인사들에게는 꽤 익숙한 이름이다.

이 부회장은 영화 '광해' 제작과 '변호인' 투자 등으로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2014년 타의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국내 그룹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짝 물러났지만,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계속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을 시작으로 '마더'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까지 인연을 이어왔다. 201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된 이 부회장은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기생충'을 알리는데 아낌없는 지원을 쏟았다.

'기생충'을 무려 18번 봤다고 밝힌 이 부회장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에게 정말 감사하다. 봉준호라서 감사하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영화를 사랑하고, 우리 영화를 지원해주고,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주저하지 않고 의견을 말해준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함께 꿈을 꾸고 지원해준 내 동생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언제나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

이재현-이미경 남매가 이끄는 ‘문화경영’

이재현 CJ그룹 회장.CJ그룹
이재현 CJ그룹 회장.<CJ그룹>

이 부회장이 수상소감에서 동생인 이재현 회장에 대한 감사의 말을 여러 번 한 이유는, 이 회장 역시 문화사업을 총괄하는 총 책임자로서의 공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CJ가 지난해 아카데미 캠페인 준비에 돌입했을 때 CJ그룹의 최고경영진인 이재현-이미경 남매는 투트랙으로 힘을 보탰다. 이재현 회장이 그룹 문화사업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한 뒤 대규모 투자와 지원 등을 책임졌고, 이미경 부회장은 글로벌 문화산업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와 문화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 회장의 비전을 실행했다.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오너 남매가 이끄는 CJ의 ‘문화사업’의 역사는 25년간 이어져왔다. 이들은 문화콘텐츠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하고 오랜 시간 꾸준히 지원하고 투자했다.

이재현 회장은 30대 때부터 사업 다각화를 고민했고, 그의 주요 관심사는 문화사업이었다. 이 회장의 주문 아래 CJ는 지난 1995년부터 여태까지 300편이 넘는 한국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해 아시아 배급권을 따냈고, 1998년엔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 ‘CGV’를 선보였다. 2000년엔 영화 배급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 영화사업부문)를 설립해 영화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4000만 달러가 투입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촬영을 앞두고 해외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는데 이때 이 회장이 제작비 전액을 책임지기로 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CJ가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투자한 금액은 대략 7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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