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주도 성장’에 중독됐나
‘재정주도 성장’에 중독됐나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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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0%에 턱걸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2차 석유파동이 닥친 1980년(-1.7%),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5%), 2009년(0.8%) 등 3차례로 모두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위기로 불릴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성장률 2% 턱걸이’는 2019년이 처음이다. 성장률 자체가 낮을뿐더러 그 내용은 훨씬 고약하다. 지출항목별 기여도를 보면 정부 부문이 1.5%포인트인 반면 민간 부문은 0.5%포인트에 그쳤다. 성장의 75%를 재정이 담당했다.

민간 부문이 부진한 것을 정부가 재정지출로 메우며 끌고 갔다. 문재인 정부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을 일구겠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 ‘재정주도 성장’이다. 문제는 재정에 의존한 경기부양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가 침체하면 기업들이 납부하는 법인세 등 정부의 세금징수액이 줄어든다. 민간 부문의 부진을 메우려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세수가 부족하니 국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채무를 증대시키고, 부담이 후대에 전가된다.

경기가 순환하며 어려울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차별 재정확장 정책만이어선 곤란하다. 정부지출이 현금성 복지에 집중되면 신산업이나 인력 양성 등 민간투자를 북돋우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지출 확대가 민간 부문 투자를 유도하는 마중물은커녕 되레 위축시키는 구축효과를 유발할 소지도 있다.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이 그러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에게 현금과 상품권을 지급하고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는데 1000조원 이상을 퍼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무(無)성장 내지 역(逆)성장이었고, 남은 것은 ‘다람쥐 도로’(차는 거의 없고 다람쥐가 다님)였다. 1990년 47%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훌쩍 넘어섰다. 이때 등장한 신조어가 사방이 꽉 막힌 느낌이라는 ‘폐색감(閉塞感)’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당시 일본과 닮은꼴이다. 현금과 지역상품권을 쥐어주는 식의 복지수당이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채 SOC 공사를 밀어붙인다. 세금징수만으론 부족하자 국채를 역대 최대인 60조원 발행해 올해 512조3000억원 규모의 초 슈퍼 예산을 짰다. 4월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상반기 예산집행 목표를 역대 최고인 62%로 정했다. 특히 총선 후보자들의 지역개발 공약과 밀접한 SOC 예산집행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어도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한국은행 2.3% 전망)에 머물 전망이다. 2018년(2.7%)부터 3년 연속 2%대 성장은 6·25전쟁 이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4년 이래 처음이다.

한국 경제가 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한국은행 2.5~2.6% 추산)에도 못 미치는 2% 언저리 성장장벽을 뛰어넘으려면 민간 부문, 기업활동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연결되는 신산업 태동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자. 그래야 부동산으로 쏠리는 부동자금이 생산적 분야로 흘러들어 미친 집값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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