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기업은행 노조는 왜 윤종원 행장을 거부하나?
‘국책’ 기업은행 노조는 왜 윤종원 행장을 거부하나?
  • 이일호 기자
  • 승인 2020.01.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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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행장 적극 소통 의지에도 노조 "10년 전 ‘낙하산‘ 인사와 상황 달라졌다" 보이콧
지난 3일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첫 출근을 하려다 기업은행 노조 측 저지로 발길을 돌렸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이일호 기자]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은 6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고(故) 강권석 전 행장의 묘소를 참배했다. 노조가 그의 출근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낙하산’ 논란으로 노조로부터 회사 출근 저지를 받고 있는 신임 윤 행장이 이번 사태를 정면 돌파할 것이란 의지를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 강 전 행장 묘소를 전격 참배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은행 노조 또한 결사 반대 태세로 직접적인 대면 소통조차 거부하고 있어 기업은행 새 리더십 ‘갈등’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6일 기업은행은 윤종원 신임 행장이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메모리얼파크를 찾아 고 강권석 행장을 추모했다고 밝혔다.

윤 행장은 이날 추모 자리에서 “(강 전 행장은) 시중은행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중소기업금융 리딩뱅크로서 지금의 기업은행을 만드는 데 초석을 놓으신 분”이라며 “고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혁신금융을 통해 국가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나아가 기업은행이 초일류 은행으로 발돋움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강권석 전 행장은 기업은행 임직원들이 추앙하는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2004년 행장을 맡아 기업은행에 ‘상업 DNA’를 심었다는 평을 받는다. 취임 당시 70조원대였던 은행 총자산은 2년 만에 100조원을 넘겼고,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2200억원에서 5배나 급증했다. 기업은행 역사에서 단 두 명밖에 없는 연임 CEO이기도 하다.

강 전 행장 또한 정부의 ‘낙하산’ 인사였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과 재무부, 재정경제원,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임 윤 행장도 행시 출신으로 재무부와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IMF, OECD에 이어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강 전 행장과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노조가 보이콧 하는 두 가지 이유

같은 금융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임에도 기업은행 노조가 10년 만에 180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노조 측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기업은행 상황이 10년 만에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부 출신 행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부족했고, 또 국책은행으로 대관 업무를 적잖게 수행해야 하는 만큼 외부 인사라도 능력 있는 인물이라면 환영했다.

하지만 지난 9년간 노조 내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최근 잇단 3명의 자행 출신 CEO로도 기업은행이 별 탈 없이 성장해 왔는데 왜 갑자기 외부 인사를 앉히냐는 것이다. 특히 외부 출신인 윤용로 전 행장 체제에서 노사 관계가 악화한 전력이 노조에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금융관료 출신인 윤용로 전 행장 취임 당시 노조는 힘 있는 관료가 와서 잘 경영하면서 노사 관계를 잘 아우를 것이라 믿었다”며 “하지만 주택청약 업무 압박을 비롯해 실적 압박이 크게 들어오면서 노사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고, 그 당시 경험으로 자행 출신 CEO가 선임돼야 한다는 노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더 근본적인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밀실 인사’를 들고 있다. 기업은행 행장은 별도의 임원추천위원회 없이 금융위원장이 추천해 대통령이 임면하는 구조다. 은행장 선임 절차에 있어 정부 입김이 반영될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행장 선임에도 이 같은 우려가 여실히 드러났다. 김도진 전 행장의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음에도 금융당국 출신 인물이 수차례 거론됐고, 지난해 막바지에는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 수석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도진 전 행장 퇴임 후에도 새 행장이 선임되지 않자 금융권에선 정부의 밀실 인사가 극에 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우리 노조는 신임 행장과 다투는 게 아니라 금융위, 정부의 밀실 인사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2018년 문재인 정부 취임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금융노조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는 내용의 정책협약을 맺었음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한 밀실 인사를 벌이는 건 ‘내로남불’의 태도”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소통하겠다는 윤 행장, ‘패싱’하겠다는 노조

6일 오전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고 강권석 기업은행장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기업은행>

앞서 지난 3일 윤 행장은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함량미달, 낙하산이라 지적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며 “중소기업과 기업은행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 앞으로 노조 이야기를 듣고 말씀도 나누고 그렇게 하겠다”며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윤 행장이 노조의 마음을 얻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노조가 아예 대화 창구조차 닫아놨기 때문이다. 노조는 오는 4월 15일 총선거에서 이번 이슈를 정치화할 것이란 뜻도 밝힌 상태다. 금융노조 가입원 수만 10만명에 달하는 만큼 윤 행장을 둘러싼 갈등은 총선에서 여당에 적잖은 압박이 될 수 있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윤 후보자(신임 행장) 임명을 강행할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맺은 정책 협약을 파기하고 지지 철회를 할 의사도 있다”며 “바뀐 금융노조 집행부와 추후 행보를 적극 협의하고 있고, 한국노총과도 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 행장은 지난 3일 본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금융연수원에 임시 사무실을 꾸리고 부행장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다.

atom@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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