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기마군단,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지배하다
북방 기마군단,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지배하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9.11.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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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초원·실크로드·만주대륙에서 찾는 한민족의 대 여정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위키피디아>

유라시아 대초원은 동에서 서로 연해주, 만주, 몽골, 내몽골, 중앙아시아, 남부시베리아,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지에 이르는 8000km의 대평원이다. 기원전 시대부터 북방 기마민족은 유라시아 대초원을 무대로 세계사를 써왔다. 그들은 뜨거운 여름, 혹한의 겨울, 비가 오지 않아 경작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을 이기고 살아왔다. 광활한 목초지에서 가축을 키웠고 이동 수단이자 생활의 필수 장비로 말을 활용하면서 기마유목 문화를 만들어냈다. 말을 생활 수단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유목민의 생활양식은 급격히 변화했다. 말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살아가는 문화 자체가 바뀌게 됐다.

과거 몽골 제국 시대에는 말이 하루 200km 이상을 달릴 수 있었다. 8000km에 달하는 유라시아 대초원도 불과 40일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은 나무안장, 등자, 활 등과 더불어 강력한 전투 무기로 변모했고 이어 공포의 기마군단이 등장해서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중앙아시아, 몽골 고원, 만주 등지에서 출현한 기마군단은 2500년에 걸쳐 유라시아 대초원과 중국·인도·러시아·유럽 등지까지 정복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동쪽 끝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북방 기마유목민족과 끊임없이 교류해왔고, 그 역사도 유라시아 스텝 제국들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 이들이 역사를 써온 현장인 유라시아 대초원은 긴 시간의 흐름과 넓은 공간적인 방면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또 한민족의 형성과 삶을 넓게 읽음으로써 현대의 기적을 이룬 국가인 대한민국을 해석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동서 문명 교류의 대통로 실크로드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Richthofen)은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다.<위키피디아>

고대로부터 유라시아를 연결하여 인간의 삶과 문명의 소통을 이룩한 교역로 또는 이동로가 있었다. 이를 광범위하게 일컬어 ‘실크로드’라고 한다. 실크로드는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와 서역간의 정치·경제·문화 교류가 진행된 통로를 총칭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Richthofen)이 붙인 것이다. 그는 1869~1872년 중국을 답사하고 <CHINA>를 저술했는데,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트란스옥시아나와 인도로 수출되는 상품이 비단이기에 이 길을 자이덴 슈트라센(Seiden Streassen)이라 명명했다. 이후 지중해 동안에서도 비단이 발견되자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Albert Herrmann)은 실크로드 개념을 시리아 등지까지 확대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동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지나 이스탄불·로마까지 그 개념이 확대됐다.

실크로드는 고대 동서 문명을 연결한 대통로이다. 수많은 민족의 삶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역의 중심이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문화·문명이 교류하는 통로가 됐다. 이렇게 동서를 광범위하게 잇는 교역로는 크게 세 갈래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갈래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 넓은 초원 지대에서 유목민이 이동했던 ‘초원길’ 또는 ‘초원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길이다. 가장 오래된 교역로로, 역사 시대 전에 주로 유목민이 이용하였다. 동유럽에서 카스피해 북안-카자흐 초원-준가얼 분지-몽골 초원-대싱안링 산맥-만주 그리고 한반도까지 이르는 이 길은 뜨거운 여름과 혹한의 겨울, 그리고 연간 강수량이 350mm 내외에 불과한 척박한 자연조건을 가진 곳이다. 이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서 스키타이 이래 흉노·선비·돌궐·몽골 등 기마군단이 바람같이 이동하면서 제각기 역사를 써 내려갔다. 바로 이 길이 고대 한민족의 이동 경로 및 활동 무대와도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다.

다음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서 육상 교역의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오아시스 길’이다. 중국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로 동서 교역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험준한 산과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야 하는 6400km에 달하는 길이다. 이곳에는 오아시스 도시들이 있어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교역로가 연결되었으며, 전한 시대 한 무제가 북방의 흉노를 막고 서역으로 통하는 교역로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 한 무제가 BC 139년 서역으로 파견한 ‘장건’은 흉노에 붙잡히는 등 곤경을 겪다 14년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행 경험을 토대로 서역 정벌을 계속하여 BC 60년 흉노를 축출하고 서역으로의 통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후 이 길은 동서 교역의 중심이 되었고, 당나라 시대(618~907년)에 최대로 번성하면서 동서 무역과 문명 교류의 핵심축으로 기능했다. 

서쪽으로 중국을 넘어서는 곳이 중앙아시아 지역인데 이곳 역시 사막이 즐비하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도 카라쿰 사막, 키질쿰 사막 등 광활한 사막 지대에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등 오아시스 도시를 연결하여 교역이 이루어졌다. 오아시스 실크로드 또한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활동 무대가 되어 왔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나중에 생긴 길인 ‘바닷길’ 또는 ‘바다 실크로드’가 있다. 이 길은 1세기 중엽 계절풍을 이용한 항해술의 발달로 아테네-홍해-인도양-동남아-중국에 이르는 항로가 개척되면서 중국·동남아·인도·이슬람 상인들이 왕래했던 곳이다. 중세 이후에는 가장 활발한 교역로 역할을 했으며, 명나라 정화가 원정에 나섰던 길이기도 하다.

북방민족 문화의 요람, 만주-홍산문화 지역

북방민족은 유라시아 대초원과 실크로드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 그동안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곳으로 취급돼왔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최근까지 놀랍게도 북방민족의 요람인 중국 내몽골 자치구와 라오닝성 일대의 랴오허(요하) 지역에서 세계 4대 문명권에 앞서는 이른 시기의 훌륭한 문화유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방민족이 얼마나 일찍부터 세계사의 중심에서 역사를 써왔는지 웅변하고 있는 증거이다.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시 근교 초원.<뉴시스>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의 내몽골 자치구 접경 지역인 우하량(牛河) 및 제2지구 유적지에서는 드넓은 땅에 지붕을 올린 채 발굴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붉은 흙으로 넓게 다져진 이 땅에는 옛 신전이 들어섰던 터와 여신의 묘가 있던 터 등이 곳곳에 남아있다. 1983~1985년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3500~3000년경 초기 중앙집권 국가의 흔적을 보여주는 적석총, 여신묘, 대형제단, 옥기 등 유적·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유물의 발견은 계급이 완전 분화되고, 사회적 분업이 이뤄진 중앙집권 국가가 존재했음을 입증한다. 

이 문명은 중국사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동안 중국이 자신들의 문명이나 문화라고 주장한 바 없었던 지역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세계 4대 문명권보다 적어도 1000년 이상 앞서는 고대 문명으로, 세계 역사와 문화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이것이 ‘홍산문화’다.

내몽골 자치구 츠펑 시 인근 하가점이란 촌락에서 발굴된 ‘하가점하층 문화’는 기원전 2400~1500년 청동기 시대에 지금의 환허·랴오허 사이의 요서 지방에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이 문화 역시 중국의 황하 문명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북방민족 문명권이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 문화는 한민족 고대 국가인 배달국 고조선의 존재와 직결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 유래와 고대사가 밝혀지는 무대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홍산 지역 일대에서는 많은 적석총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는 한민족 고대 묘제 그대로다. 이곳 사람들은 예로부터 적석총을 ‘까오리 무(고구려 묘)’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필자가 홍산문화 지역을 탐방할 때 현지인들에게서 직접 듣기도 했다. 이 지역은 한민족 고대 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북방민족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이곳이야말로 기마유목민들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한민족의 고조선은 그동안 소개한 기마군단보다 훨씬 앞서 유라시아 스텝 동부 지역에 기념비적인 고대국가를 건설하고 동북아를 장악하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몽골 고원과 대싱안링(大興安嶺·대흥안령) 산맥을 건너 남하하면서 문명권을 이뤄낸 한민족의 삶의 흐름이 2500년의 유라시아 기마민족의 역사로 이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마군단의 역사 재평가 받아야

유라시아 대초원과 실크로드, 그리고 만주 대륙에서 ‘기마군단’의 역사가 전개되고, 북방민족인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 등은 최강의 제국을 건설해 세계사의 중심 무대에서 대활약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고, 유럽은 이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인색했으며, 중국은 이들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폄하했다. 기마군단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당연히 새롭게 평가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이 활약하면서 세계사를 써온 유라시아 대초원과 실크로드 등지에서 한민족과 북방민족이 활약한 흔적을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땅의 과거를 기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의 삶의 흐름을 보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만 바라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유라시아 대초원 지역과 실크로드는 우리 삶의 흐름을 돌아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한민족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홍산 지역의 대발굴은 이 지역이 북방민족 문화의 근거지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홍산 지역은 그야말로 한민족 고대사와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고대 문화의 보고다. 한민족 고대 국가의 존재에 대한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유라시아 대초원과 실크로드, 그리고 만주 대륙과 홍산문화 지역, 동부유럽, 시베리아 등을 비롯한 역사의 현장을 수십 차례 다녀왔다. 특히 한민족 고대 문화의 시원지로 추정되는 홍산문화 지역을 탐방하는 것은 가슴을 뛰게 하는 여정이었다. 이제 그 현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김석동이 쓰는 한민족 경제 DNA'는 매월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nbsp;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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