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의 ‘4N’ 재건 전략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의 ‘4N’ 재건 전략
  • 강민경 기자
  • 승인 2019.10.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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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名家의 본때를 보여주마
나성균 대표.인터넷 캡처
나성균 대표.<인터넷 캡처>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창간 22주년을 맞은 <인사이트코리아>가 동갑내기 기업을 찾았다. 1997년 설립돼 국내 4대 게임업체로 자리 잡은 ‘네오위즈홀딩스’다. 네오위즈 창업자인 나성균(47) 네오위즈홀딩스 대표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돼지띠 CEO 중 한 명으로, 1997년 이후 여전히 네오위즈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설립 당시 네오위즈는 벤처붐을 타고 승승장구했다. 특히 나 대표가 기획한 인터넷 자동접속 프로그램 ‘원클릭’과 채팅 커뮤니티 ‘세이클럽’ ‘아바타’ 서비스로 대박을 쳤다. 2003년 이후 게임 사업에 집중하면서 ‘스페셜포스’ ‘피파온라인’ 등으로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선 게임 퍼블리싱 재계약에 잇따라 실패하며 하락세를 보였으나 나 대표는 자체 개발력을 강화해 개발사로의 체질전환에 나섰다. 이는 서서히 빛을 발했다. 지난해 네오위즈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5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한때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와 함께 ‘4N’으로 불렸던 게임 명가 네오위즈의 재건에 나서는 나성균 대표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1996년 여름, KAIST 8명의 선후배가 어울려 창업 모임 ‘신 마법공작실’을 결성했다. 이 모임을 이끈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크래프톤 의장)과 함께 이듬해인 1997년 6월 네오위즈를 세웠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KAIST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 대표가 경영을 맡았고, 장 위원장이 KAIST 출신들을 대표해 기술 개발을 맡는 형식으로 공동 창업했다. 초기엔 투자금 마련부터 쉽지 않았다. 당시 국내 벤처투자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나 대표는 시스템통합(SI) 용역과 노동부의 SI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자금을 모았다.

원클릭·세이클럽·아바타, 잇따른 대박행진

업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7년 12월부터다. 인터넷 자동접속 프로그램인 ‘원클릭’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세계가 활짝 열렸다. 모뎀으로 PC통신을 사용하던 당시엔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통신환경 설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네오위즈가 개발한 원클릭은 말 그대로 클릭 한 번에 인터넷 접속을 가능케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출시 8개월 만에 원클릭으로 올린 매출만 1억원을 넘어섰다.

1999년 6월에는 웹 기반 채팅 서비스인 ‘세이클럽’을 내놓았다. 세이클럽은 별도 설치 없이 빠르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금세 사용자가 늘었고, 회원 수가 16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이른바 ‘대박’을 쳤다.

매출 상승세에 힘입어 2000년 6월 네오위즈가 코스닥에 상장된 이후, 나 대표는 새로운 유료 서비스 개발에 공을 들였다. 매출 창출을 위해선 획기적인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나 대표가 구상한 아이템은 사용자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온라인 가상 인물, ‘아바타’였다. 나 대표는 이 아바타 서비스를 기존 세이클럽에 도입시키고자 했다.

2000년 11월 세이클럽은 세계 최초로 ‘아바타’ 유료 서비스를 도입했다. ‘유료’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아바타는 1년 만에 매출 130억원을 올리며 여러 우려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아바타가 최초 유료화 모델로 성공하게 된 배경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나 대표의 뚝심 덕분이었다는 게 당시 업계의 평가다.

네오위즈가 본격적으로 게임 사업에 뛰어든 때는 2003년. 나성균 대표는 기존에 운영되던 ‘세이게임’을 ‘피망’이라는 새로운 게임포털 브랜드로 바꿔 게임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게임 사업에 발을 들인 초창기에는 한게임(현 NHN엔터테인먼트)과 넷마블 등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고스톱, 포커 등 사행성 게임과 간단한 보드게임을 주로 서비스했다.

1인칭 슈팅·스포츠 게임으로 ‘게임 명가’ 반열

이후 네오위즈는 비주류 게임이던 1인칭 슈팅 게임(FPS) ‘스페셜포스’와 스포츠 게임 ‘피파온라인’을 대중화시키며 국내 대표 게임업체로 도약했다. 롤플레잉게임(RPG)과 캐주얼 장르가 대세이던 2004년, 네오위즈는 ‘스페셜포스’의 퍼블리싱을 시작해 동시접속자 수 13만명에 달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마니아 장르로 인식되던 FPS를 일반 게이머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었고, ‘서든어택’ 등 후발주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오위즈는 ‘크로스파이어’를 통해 2000년대 국내 게임업계를 이끄는 대형 게임사로 성장했다. 네오위즈는 또 다른 FPS ‘크로스파이어’의 국내외 퍼블리싱을 맡으며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당시 크로스파이어가 중국 FPS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5년 네오위즈는 1021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가운데 84%가 온라인게임에서 나왔다.

2006년엔 국내 업계 최초로 글로벌 게임기업인 EA와 콘솔 타이틀을 온라인 게임으로 공동개발에 나섰다. 첫 작품 ‘피파온라인’은 공개 서비스 시작 두 달이 채 안 돼 동시접속자 수 15만명을 돌파하는가 하면, 2006년 월드컵 시즌을 맞아 최단기간 동시접속자 수 18만명을 넘어서 당시 스포츠게임 중 최고기록을 세웠다.

‘피파온라인2’ 역시 동시접속자 수 22만명을 기록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스포츠 장르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온라인 대표 야구게임 ‘슬러거’도 흥행에 성공하며 네오위즈에게 스포츠게임 명가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네오위즈는 2007년 4월 네오위즈홀딩스의 기업분할을 통해 게임 전문 기업(옛 네오위즈게임즈)으로 재탄생했다.

자체 IP 강화로 반격 나선다

승승장구하던 네오위즈는 2010년대 들어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피파온라인2’ 퍼블리싱 재계약 실패에 이어 ‘크로스파이어’ 서비스 재계약마저 무산됐기 때문이다. 2013년 네오위즈의 주요 매출원이던 피파온라인2의 서비스권이 넥슨으로 이전되고, 크로스파이어와의 계약변경, 웹보드 게임의 규제강화라는 악재가 겹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나성균 대표는 네오위즈의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15년 NHN엔터테인먼트에 벅스뮤직(현 NHN벅스)을 875억원에 매각했고, 이보다 앞서 2014년엔 농협은행에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에 위치한 옛 사옥과 토지를 630억원에 팔았다. 주요 자산을 매각하고 게임 등 중점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네오위즈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자체 지적재산권(IP) 강화에 나섰다. 2016년 2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PRG) ‘블레스’ 출시를 시작으로 퍼블리싱에 집중됐던 사업구조를 자체 개발 타이틀과 모바일 중심 사업으로 전환했다. 이어 ‘브라운더스트’ ‘탭소닉 시리즈’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등 자체 제작 게임들을 선보이며 개발사로의 체질전환에 나섰다.

전통의 강자로 꼽히는 ‘피망포커’ ‘피망뉴맞고’ 등 보드게임 역시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에서도 선두게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변화하는 규제 환경에 맞춰 이용자들이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와 편의성을 높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소셜카지노 게임을 통해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네오위즈는 5년 만에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자체 IP매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등 과거 퍼블리싱 중심의 사업구조를 완전히 바꿨고, 해외 매출도 전년 대비 64% 증가한 1073억원을 거뒀다.

네오위즈는 자체 IP 강화에 이어 인디게임사들을 단순 지분투자가 아닌 네오위즈에 합류시켜 도전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전략도 구상 중이다. 나성균 대표가 이끄는 네오위즈가 재도약에 성공해 비상할지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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