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만들기 30년 답게출판사 장소님 대표
‘좋은 책’ 만들기 30년 답게출판사 장소님 대표
  • 강민경 기자
  • 승인 2019.10.01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려 책다운 책을 낸다"
장소님 대표.답게출판사
장소님 대표.<답게출판사>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법관을 꿈꾸던 소녀가 전업주부이던 40세에 출판업계에 발을 디뎌 30년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나이 70세인 장소님 답게출판사 대표는 ‘나답게, 책답게, 우리답게’를 슬로건으로 1990년 출판사 문을 연 후 30년 째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그 사이 낸 책이 400여종에 이른다. ‘전 국민 집집마다 소장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국민 지침서를 만들겠다’는 게 장 대표의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의 소망이다.

장 대표는 1992년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새>를 복간하고, 1993년 육관도사의 <터>를 출판하며 주목 받았다. 그는 줄곧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국민도서를 만들고자 교양서적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근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청소년을 위해 ‘청소년 소설’을 기획해 출판하기도 했다. ‘청소년이 잘 자라나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9월 11일 장 대표는 <인사이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10명이 보든 100명이 보든 혹은 사비를 투자해서라도 정말 좋은 책을 내야한다는 소신으로 30년간 일 해왔다. 좋은 책은 영원히 좋은 책으로 남는다. 종이책은 절대 죽지 않는다.”


- 출판업계에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됐나.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를 준비했는데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다. 30대 후반 무렵, 대학동기 중 한명이 법률서적 전문 출판사 운영을 시작했다. 그 친구로부터 출판업계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호기심이 생겼다. 그 즈음에 인사동에 있는 ‘귀천’이라는 찻집을 자주 갔는데, 거기서 고(故) 천상병 시인을 알게 됐다. 주위에 천상병 시인과 친한 지인들이 많았다. 자주 드나들다 보니 천상병 시인의 사모님도 알게 되고, 여러 문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그런 마음이었는데, 문인들을 한 명 두 명 알게 되면서 책의 세계와 출판에 대해 큰 관심이 생겼다. 나도 책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딱 나이 40이 되던 해에 출판업계에 발을 들였다.”

- 40대 전업주부가 창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일단 집에서 반대를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책을 만든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다가 작가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 ‘저 분들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 천상병 시인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출판업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그 분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참 많이 얻었고, 이후 그 분의 책을 8권 이상 출판했다.”

- 천상병 시인은 어떤 사람이었나?

“한마디로 ‘천재 시인’이자 ‘기인’이셨다. 천상병 시인이 돌아가시지 않고 계속 계셨으면 노벨문학상을 타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수개월간 고문을 심하게 당하신 이후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오래 사시지는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자자했다. 정치적 희생을 당하신 분이다. 시대가 그럴 때였다.”


#.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대한민국에서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간 194명에 이르는 유학생과 교민 등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고 간첩교육을 받으며 대남적화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지목한 인물 가운데 천상병 시인, 윤이상 작곡가, 이응노 화가 등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했다. 1967년 12월 3일 선고 공판에서 관련자 가운데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 최종심에서 간첩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결국 1명도 없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히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 천상병 시인과의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은 일은 유고시집 <새>와 관련된 얘기다. 과거 동백림 사건으로 천상병 시인이 행방불명이 되자 성춘복 시인과 고(故) 강민 시인 등 그의 친구들이 주축이 돼 1971년 천상병 시인의 유고시집 <새>라는 책을 만들었다. 2년여 간 연락이 없자 ‘천상병이 세상을 떠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주요 일간지에 소개가 됐는데 서울시립정신병원서 ‘천상병 씨가 여기에 있다’고 연락이 왔다. 거리에서 쓰러진 그를 행려병자로 판단한 공무원이 시립병원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는 유고시집 <새>를 1992년에 내가 복간(復刊)했다. 당시 이슈가 돼서 지상파 채널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고 인기를 참 많이 끌었다. 무엇보다 천상병 시인에게도 뜻깊은 책을 복간했다는 데 의미가 매우 컸다.”

- ‘답게’라는 출판사 이름이 인상 깊은데 어떤 의미인가.

“처음엔 방배동에서 ‘방배 출판사’로 시작했다. ‘방배 출판사’로 서초구청에 등록까지 했는데,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모 방(方)자에 등 배(背)자가 붙은 ‘방배’는 ‘세상을 등에 엎는다’는 뜻이라며, 짊어지는 짐이 많아 사업이 망할 것이라는 말들이었다. 징크스인지 상호에 ‘방배’를 붙여서 잘 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하더라. 다시 구청에 가서 상호를 바꾸러 왔다고 하니, 담당자가 ‘안 그래도 방배식당, 방배다방 사장님들도 다 이름 바꾸러 왔었다’고 해 쓴 웃음이 절로 났다. 뭐로 바꿀까 고민하다가 ‘사람답게 살자’는 뜻을 넣고 싶었다.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자고.”

-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어떤 기억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20대 때 잠시 직장생활을 했는데 사장 동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사람답지가 않고 야비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 광경을 20대 때 보고,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그게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을 많이 했다.”

- 교양서적을 주로 출판하는데, 이것도 역시 ‘사람답게’와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책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시집·영역(英譯) 시집·청소년 도서 등을 주로 출판하고 있다. 출판사를 열면서 내겐 세 가지 꿈이 있었다. ‘국민교과서’ ‘국민도서’를 제작해 4000만 국민 모두의 집 책꽂이에 꽂히게 하겠다, 우리나라 최초로 답게출판사에서 노벨문학상 작가를 만들겠다, 인간다운 인간을 배출할 수 있는 아카데믹의 장을 만들겠다, 이 세 가지가 나의 꿈이었다.”

- 꿈은 얼마큼 이뤄지고 있나.

“노벨문학상을 타진 못했지만 영어로 낭송되는 ‘영역시’라는 것을 만들었고, 모든 국민의 집 책꽂이에 꽂히진 못했지만 50만 국민의 집에 답게출판사의 책이 꽂혀있는, 그 정도는 이룬 것 같다. 지금도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국민지침서’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요새는 청소년 도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선 청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최근 청소년 도서를 새롭게 기획했다. 작가 9인의 9색 개성이 담긴 청소년 소설과 시, 9권을 펴냈다.”

- 자녀들에게도 ‘사람답게 살라’는 것을 기반으로 교육했나.

“당연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특별히 가르친 것이 없다. 인성교육과 열린 대화를 하니 아이들이 알아서 성실하게 잘 커줬다.”

- <터>라는 소설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1993년에 출판한 <터>라는 책은 단순히 보면 풍수·명당 이야기 혹은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묘터 등 풍수지리에 얽힌 얘기를 재밌게 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은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일을 해야 망자가 됐을 때 명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 얘기가 핵심이다. 아무리 잘나고 돈이 많아도, 망자 본인이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메시지의 책이다. 기획을 내가 직접 했는데, 그 시대에 히트를 쳤던 책들이 <목민심서> <토정비결> 등이어서 그러한 트렌드를 이어 풍수와 관련된 책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 <터>의 저자인 ‘육관도사’도 이 책을 통해 아주 유명해졌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풍수지리와 관련된 책을 만들려고 전국 방방곡곡 지관들을 찾아다녔는데, 누구 한 명 마음에 드는 분이 없었다. 그러다가 육관도사 손석우 선생을 만났는데 마음에 아주 딱 들더라. 이 분이 <터>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의 통치기간 49년과 사망일을 정확히 예언했다. ‘김일성의 운이 1994년 9월에 끝난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해 7월 김일성이 사망했고, 그러면서 육관도사도 유명세를 탔고, <터>도 대박을 쳤다. 그렇게 1992년 1995년 유고시집(복간) <새>에 이어, 1993년 <터>를 통해 답게출판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요새 출판업계가 전반적으로 힘든데 경영은 어떤가.

“힘든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좋은 책은 10명이 보든 100명이 보든 내야한다’는 소신으로 살아왔다. 사비를 투자해서라도 꼭 필요한 책은 출판돼야 한다. 이것이 좋은 책에 대한 자부심이다. 가끔 누군가 ‘돈이 어디서 나서 투자를 하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좋은 책을 내면 또 어떻게든 굴러가기 마련이더라. 단순히 돈을 벌려고 했으면 출판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현금서비스라도 받아서 제작비를 줘야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내 나이가 60이 지나고 벌써 70이 됐다. 그런 소신으로 30년간 일 해왔다.”

- 여류 문인들과의 교류도 끈끈하다고 들었다.

“나는 우리 출판사가 사랑방처럼 언제든 와서 편하게 얘기하고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됐으면 했다. 그래서 언제든 작가들이 오면 차를 마시면서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출판사는 문인들과 가까워야 한다. 화요일·목요일 이렇게 날을 아예 잡았다. 그땐 언제든 오셔서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자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지내고 있고,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든 환영한다.”

- 30년 출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정말 좋은 책을 냈다’고 사람들에게 전화 받을 때, ‘이 책을 읽고 너무 감명 받아 내 삶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다. 독자들은 굉장히 예민한 눈을 갖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좋은 반응이 오면 참 기분이 좋다. 최근엔 청소년 소설을 읽고 ‘올 여름 내내 행복했다’는 10대 독자의 후기가 있었는데 그 때 희열을 느꼈다.”

- 미래의 출판업계는 어떨까.

“사람들은 ‘출판업계는 힘들다’ ‘스마트폰 때문에 망할 것이다’ 이렇게 얘기들 하는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좋은 책은 꾸준히 팔릴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종이책은 절대 죽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e북을 보는 것과 종이책을 보는 것은, 가독성부터 읽고 나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느낌까지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출판업의 부흥은 나라의 부흥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야 나라가 잘된다. 또 경험에서 느낀 바로, 좋은 책은 아무리 적어도 100만 독자는 확보돼 있다는 것이다. 가끔 영화계에서 ‘1000만 관객 돌파’ 이런 소식이 들리면 솔직히 참 부럽기도 하다. 우리 책도, 우리 출판업계도 그렇게 돼야 한다. 출판업계가 부흥하면 우리나라는 달라질 것이다.”

- 앞으로의 포부는?

“무엇보다 청소년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끔 하는 좋은 책을 계속 만들어 낼 예정이다. 청소년,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야말로 한 권의 책으로 정신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잘 자라나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 좋은 작가들이 훌륭한 원고를 많이 보내주면 좋겠다. 그럼 나는 성심을 다해 청소년들의 지침서, 나아가 국민 지침서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