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식으면 8000억 손실, 정부의 답 없는 '탁상행정'
용광로 식으면 8000억 손실, 정부의 답 없는 '탁상행정'
  • 노철중 기자
  • 승인 2019.06.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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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현대제철에 ‘고로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업계 현황 무시한 공장 '사형선고'"
지난 5월 21일 국립환경과학원은 드론을 띄워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3고로 브리더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의 농도를 측정했다. 뉴시스
지난 5월 21일 국립환경과학원은 드론을 띄워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3고로 브리더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일산화탄소·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황산화물 등의 농도를 측정했다. <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노철중 기자] 최근 지방정부가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철강업계에 과도한 행정처분을 내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포항·광양·당진 제철소 등에서 고로(용광로)를 운영하는 포스코(포항·광양)와 현대제철(당진)에 관할 지방정부인 경상북도·전라남도·충청남도 등은 사실상 제철소 가동 중단을 의미하는 ‘고로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내렸다. 고로 블리더(안전벨브)를 열어 대기오염 물질을 방출했다는 이유다.

철강업계는 환경을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가혹한 행정처분을 받아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업계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행정처분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속출하자 지방정부는 업계 의견을 듣는 청문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 18일 전라남도는 광양제철소의 의견을 듣는 청문절차를 진행했다. 경상북도도 포항제철소를 상대로 청문절차 진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충청남도가 청문 절차를 주지 않아 바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 및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환경부는 지난 19일 블리더 개방 문제에 대해 관련 민관 협의체를 발족해 ▲배출가스의 오염물질·배출량 파악 ▲해외 제철소 현황 조사 ▲오염물질 저감 방안 마련 ▲제도개선 등을 철저히 조사해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의 경우처럼 청문 절차 없이 행정심판 소송에 들어간 업체가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철저히 조사 하겠다'고 정부가 나서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고 ‘탁상행정’ ‘뒷북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철강업체들이 대기환경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환경부는 업계·지방정부와 함께 민관 협의체를 발족한 만큼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청문에서 ▲블리더 개방은 고로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 ▲배출 가스는 잔류가스가 미미하고 수증기가 대부분이라는 점 ▲자체조사 결과 지역 내 환경영향은 극히 적다는 점 ▲블리더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적용해 온 안전 프로세스라는 점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인사이트코리아>와 통화에서 "행정처분 수준이 낮아질지 철회될지 확신할 수는 없다"면서도 "업계와 정부는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다같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업체들은 법 조항에 폭발 위험이 있을 시 예외 조항을 들어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철강협회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업체들은 법 2조에 '폭발 위험이 있을 시'라고 명시돼 있어 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한국철강협회>

 

진짜 문제는 ‘조업정지 10일’⋯회사 경영 위기 초래

철강업계가 이번 제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진짜 이유는 고로 조업정지 10일은 회사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사실상 사형 선고와 같기 때문이다.

21일 업계의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조업정지 기간이 4~5일을 초과하면 고로 안에 있는 쇳물이 굳어 고로 본체가 균열될 수 있다. 이 경우 재가동 및 정상조업을 위해서는 3개월, 경우에 따라 6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처분에 따른 조업정지 10일은 실제는 수개월 이상 조업이 중단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른 피해는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할 때 약 120만 톤의 제품 감산이 발생하고 8000여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철강업계는 환경 이슈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터에 이런 일이 벌어져 더욱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각각 1조600억원, 5300억원을 대규모 환경 설비에 투자계획을 이미 실행하고 있으며, 국가·사회적 요구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고로의 안전밸브를 대체할 기술을 확보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그럼에도 국내외 철강사, 해외 고로 전문 엔지니어링사, 환경 전문가 및 단체, 지역기관, 정부 등과 협업해 안전밸브 운영과 관련해 다른 기술적 방안이 있는지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고로 특성상 고로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블리더 개방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만,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