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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家 2세 막내 조정호, '메리츠금융 제국' 일구다
한진家 2세 막내 조정호, '메리츠금융 제국' 일구다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9.05.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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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창업주 별세 후 작은 증권사 넘겨받아 자산 52조원대로 키워...인재경영으로 남다른 수완 발휘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메리츠금융>

[인사이트코리아=이일호 기자] 범 한진그룹에서 파생된 4개 기업 가운데 가장 주목받아온 곳은 단연 얼마 전 별세한 조양호 회장이 이끌어온 대한항공이다. 하지만 인지도를 떼놓고 실적만 놓고 보자면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가 두드러진다.

조정호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2002년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한진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와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을 받아 국내 첫 보험지주사인 메리츠금융으로 탈바꿈했다. 창립 초 증권과 보험이 전부였던 메리츠는 이제 6개 계열사를 품은 지주사가 됐다.

나머지 세 형제(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고 조양오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가 이끄는 회사가 모두 부침을 겪는 와중에도 메리츠금융은 성장해왔다. 계열 분리 당시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조 회장의 주식 자산 가치는 최근 1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룹에서 가장 작은 금융업을 물려받은 게 오히려 약이 된 셈이다.

조정호 회장 인재중심 경영, 성과로 증명

조 회장이 한진그룹에서 가장 소외된 금융업에 뛰어든 것은 그의 커리어와도 무관치 않다. 1983년 대한한공에서 구주지역본부에서 일해온 그는 6년 뒤인 1989년 한일증권(한진투자증권 전신)으로 적을 옮겼고, 이후 동양화재와 한진투자증권을 왔다 갔다 하며 한진그룹 내 금융계열사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지금 형태의 메리츠금융은 2000년 모습을 드러냈다. 1967년부터 한진그룹 금융계열사였던 동양화재 지분을 조 회장이 넘겨받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 한진투자증권도 푸르덴셜그룹 자회사인 PAMA와 합작해 합병법인 메리츠증권으로 재탄생했다. 2005년 동양화재가 메리츠화재로 최종적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비로소 메리츠금융 계열 분리는 마무리된다.

지금은 총자산 52조원에 달하는 메리츠금융이지만 초창기 사세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계열 분리가 끝난 2005년 고 조양호 회장이 물려받은 대한항공 총자산이 13조5000억원이었던 반면 메리츠화재는 2조6000억원, 메리츠증권은 7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초창기에는 조 회장의 낮은 지분 문제로 적대적M&A에 노출되기도 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부회장과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부회장.<각 사>

조 회장은 2007년 화재·증권·종금을 포함한 메리츠금융그룹 세웠고 이후 2008년 메리츠자산운용, 2010년 메리츠종금증권이 출범했다. 2011년에는 지금 형태의 지주사를 설립했고 이후 메리츠캐피탈 설립(2012년), 아이엠투자증권 편입(2014년), 메리츠대체투자운용 설립(2016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의 인재경영이 빛을 발했다. 2009년 골드만삭스 출신 최희문 현 메리츠종금증권 대표를 영입해 투자 부문 전권을 맡겼고, 2011년에는 현 메리츠화재·메리츠금융 대표이사인 채권전문가 김용범 부회장을 데려왔다. 두 대표는 현재까지 그룹의 양대 축인 종금과 보험을 맡아 수익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룹 주력인 메리츠화재의 경우 수익성이 낮아지는 자동차보험보다는 장기 인보험(사람보험)에 투자를 늘렸다. 지난해 메리츠화재 인보험 시장점유율은 19.1%로 업계 1위인 삼성화재를 맹추격할 정도로 성장했고, 덕분에 지난 1분기 보험업계 수익성이 모두 하락한 와중에도 홀로 순이익 방어에 성공했다. 자산운용에서도 그룹 강점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저금리 기조에서 수익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성과는 더 눈부시다. 투자은행(IB) 부문에서 부동산 PF와 해외 IB 등을 적극적으로 늘리며 분기 수익 1000억원을 넘어섰고, 여기에 금융수지도 600억원대까지 올린 상태다. 지난해 거둔 순이익 4339억원은 증권업계 1~2위인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에 이어 3위로, 2011년 당시 업계 최하위권이었던 회사가 채 10년도 안 돼 대형 증권사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정호 회장은 계열사에 필요한 인재라면 반드시 데려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IB와 자산관리(WM), 트레이딩 등 부서를 가리지 않고 파격적 성과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에 나섰는데, 증권업계에선 이에 대해 ‘블랙홀’처럼 인력을 빨아들이는 데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각 계열사 경영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량 있는 전문경영인들을 데려온 만큼 그들을 믿고 전권을 맡기며, 성과에 따라 임기를 보장하고 최대치의 보상을 하는 것이다. 김용범 부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정호 회장은 회사에 필요한 인재와 몸값 흥정을 하지 않고 연봉은 달라는 대로 주고 업무를 믿고 맡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진그룹 경영권 문제와는 거리 둬

조정호 회장이 한진가 출신이지만 메리츠금융과 한진그룹의 관계는 전혀 없는 수준이다. 2005년 한진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네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유산 분배 과정에서 선친의 생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수차례 소송을 걸기도 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이 지난 4월 별세한 조양호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뉴시스>

조 회장은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일이 없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없으며 그의 발언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것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4월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조문과 발인에 모두 참석하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대한항공 지원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최근 행동주의 펀드 KCGI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양호 전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이 박탈된 채 작고했고, 그 후 KCGI는 한진칼 지분을 14.98%로 늘리며 2대 주주로 뛰어오른 상태다. 그룹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진가 2세인 조정호 회장이 조카들의 ‘백기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조 회장이 ‘복심’ 김용범 부회장을 통해 한진그룹 지원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 회장이 금융업을 제외한 타 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점, 금산분리에 따라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에 투자할 수 없는 점, 금융에 올인하고 있는 만큼 개인 자격으로 투자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개입 불가의 이유로 들었다.

조 회장은 과거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남호 회장이 한진중공업 위기로 손을 내밀었을 때도 “회삿돈은 내 돈이 아니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투자 대상으로서도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주가가 크게 뛴 상황에서 실적 부진으로 인한 가치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고려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atom@insight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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