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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보다 소중한 것들
‘빨리빨리’보다 소중한 것들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2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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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새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 출시 연기 사태는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던진다. ‘세계 첫 폴더블 폰’이라며 폼 나게 내놓으려다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출시를 연기한 것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기업답지 않은 뼈아픈 실책이다.

불과 3년 전, 2016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로 전량 리콜에 이은 단종 조치란 홍역을 치르고도 품질관리에 허점이 있음을 노출했다. 세계 최초 기록에 매달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사실 ‘빨리빨리’라는 말로 대변되는 속도전과 ‘업계 최초 기록’ 등 조기성과주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대기업들과 산업현장은 물론 정부, 정치판, 교육현장에 이르기까지. 조금 더뎌도 꼼꼼히 내실을 다지며 변화하는 과정을 살피기보다 조급해하며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와 외형을 중시하는 단기 업적주의에 매몰돼 허둥댄다. 그 결과는 빈발하는 안전사고와 부실공사, 산업재해, 주입식 교육과 인문학 푸대접 등으로 나타나 사회를 후퇴시킨다.

문재인 정부의 ‘과속 3종 세트’ 정책을 보자.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매달려 이태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을 감행하자 음식숙박업과 도소매 유통업, 사업시설관리(아파트경비원 등) 및 임대서비스업 등 3대 최저임금 민감 업종에서 일자리가 급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또한 탄력근로에 대한 보완 없이 시행하니 산업현장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탈원전 정책도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완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탈(脫)’이란 강한 표현을 앞세워 추진하자 원전산업 자체가 흔들리는 형국이다.

이런 과속정책 시리즈를 주도한 전·현직 정책입안자들이 예사로 하는 발언은 더 어처구니없다. “이렇게 빨리 올라갈지는 나도 몰랐다” “부작용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 못했다” “나는 이상주의자였다” 등등. 그러고선 단시일 내 실업자를 줄이고 고용률도 높이겠다며 조(兆) 단위 재정을 쏟아 붓지만, 정부가 자초한 일자리 재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차세대 먹거리라는 5세대(5G) 통신 상용화도 밤 11시에 소란을 벌이며 미국을 두 시간 차로 제쳤다. 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세계 최초 타이틀 획득을 자축했지만, 고객들은 서비스가 불통되거나 데이터 전송이 끊긴다며 불만이다. 이동통신 3사의 기지국 설치 부족 등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서둘러 서비스를 개시한 탓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도 우리가 너무 조급하게 성과가 나오길 기대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볼 때다. 7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어온 남북·북미 관계 개선과 북한 정권의 체제보장 문제가 걸린 비핵화는 정상회담 한두 번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이다.

최초 기록과 빠른 속도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더 중요한 가치를 놓쳐선 안 된다. 최초 타이틀보다 더 값진 것은 최고의 기술과 품질이다. 눈앞의 단기적 결과물이나 물질적 이익을 좇는 태도에서 중·장기적 변화와 미래사회, 사람을 중심으로 보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긴요하다.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넘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외형보다 내실, 속도보다 품질, 결과보다 과정, 물질보다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빨리빨리’의 조급증만으론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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