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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실력자' 소진세는 왜 교촌치킨에 둥지를 틀었나
롯데의 '실력자' 소진세는 왜 교촌치킨에 둥지를 틀었나
  • 노철중 기자
  • 승인 2019.04.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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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강 전 회장과 오랜 친분...롯데에선 세대교체 바람에 밀려나
소진세 교촌치킨 회장이 지난 22일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촌치킨
소진세 교촌치킨 회장이 지난 22일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촌치킨>

[인사이트코리아=노철중 기자] 소진세 전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2일 교촌치킨 회장에 취임했다. 소진세 회장이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로 옮기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 회장은 롯데그룹 내에선 손가락 안에 드는 실세였기 때문이다.  

소진세 교촌치킨 회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교촌이 가진 상생의 가치를 발전시키고, 글로벌 교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변화와 혁신에 모든 역량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 시스템 확립 ▲글로벌 기업 도약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 형성 ▲상생의 가치 발전 등을 향후 경영 방향으로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소 회장이 교촌으로 간 배경으로 권원강 전 교촌치킨 회장과 오랜 친분을 들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권 전 회장의 '삼고초려'를 소 회장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의 친분과 배경에 대해서는 확인 된 바 없다”며 “다만 소 회장의 40년 유통업계 경력과 능력이 접목되면 교촌의 경영 혁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사업적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진세 회장은 왜 롯데를 떠났나

소진세 회장은 지난해 말까지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12월 정기 임원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과 글로벌사업을 강하게 추진하고 그룹에 혁신을 일으킬 새로운 인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같은 분위기에 미루어 소 회장이 ‘떠날 때가 된 사람’으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소 회장은 1950년생으로 1977년 호텔롯데에 입사해 롯데쇼핑 창립멤버로 롯데 유통부문의 성장을 이끌었다. 롯데슈퍼, 코리아세븐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롯데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을 맡기도 했다. 소 회장과 함께 물러난 인물로는 허수영 롯데케미칼 부회장과 이재혁 식품BU 부회장이 있다. 허 부회장은 1951년생, 이 부회장은 1954년생이다. 모두 40년 이상 롯데에 헌신했고 60대 후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 회장은 사장단 중 가장 맏형으로 분류된다. 재계에서는 소 회장이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과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롯데그룹에서 소 회장이 이끌었던 사회공헌위원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 확인 결과 사회공헌위원회는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에 흡수돼 책임급 사원이 배치돼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회공헌위원회는 2016년 롯데 경영권 분쟁, 경영 비리와 박근혜 게이트 연루로 시끄러울 때 신동빈 회장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직접 팀을 구성하고 위원장을 맡았던 조직이다. 사장급 인사 3명의 내부위원과 학계·법조계 전문가 3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조직이 사라졌다고 해도 신동빈 롯데 회장이 소 회장을 필요로 했다면 다른 곳에 배치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빈 회장이 확실하게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세대교체와 함께 '올드보이'들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6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생명존중 롯데 선포식’에 소진세(왼쪽 첫번째) 회장과 황각규(왼쪽 다섯번째) 부회장이 함께 참석했다. 뉴시스
지난해 9월 6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생명존중 롯데 선포식’에 소진세(왼쪽 첫번째) 회장과 황각규(왼쪽 다섯번째) 부회장이 함께 참석했다.<뉴시스>

 

최순실 게이트 등 위기의 순간 신동빈 회장 보좌

소진세 회장은 2006년부터 롯데슈퍼를 이끌면서 2013년 롯데슈퍼가 매장 수 350여개, 매출 2조3000억원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0년부터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대표이사를 맡아 취임 당시 1조3000억원이었던 매출을 2013년 2조5500억원까지 늘렸다.

업계에서 소 회장은 ‘불도저’로 통한다. 추진력이 강하고 성격도 저돌적이고 화통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목표 달성 의지가 강하고 전국 점포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현장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이나 롯데그룹이 위기에 처했을 땐 전면에 나서 사태를 수습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에 따른 고초도 많이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3년 세븐일레븐 점장이 불공정거래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2014년 초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같은 해 8월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유는 당시 롯데월드타워 주변 석촌호수 인근에서 싱크홀이 발견돼 ‘붕괴설’까지 돌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유의 언변과 마당발 인맥으로 정부기관, 언론, 시민단체 등과 소통하며 롯데월드타워가 무사히 완공되는데 일조했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난' 때는 신동빈 회장의 참모 역할을 하며 경영권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라이벌로 평가되던 황각규 부회장이 신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으면서 밀려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주류로 알려진 ‘황각규 라인’이 존재한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황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 구속 때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경영 수업을 받던 1990년 당시 부장으로 근무하며 신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황 부회장은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로 소진세 회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신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황 부회장은 1954년생으로 소진세 회장과는 4살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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