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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거래 없이도 1면 톱기사 만들 수 있다
뒷거래 없이도 1면 톱기사 만들 수 있다
  • 문기환 전문위원 겸 새턴PR컨설팅 대표
  • 승인 2019.02.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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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벗어난 어느 홍보대행사 대표의 ‘일탈’
<픽사베이>

얼마 전에 종합일간지 임원을 지낸 선배와 점심을 함께 했다. 필자가 종합상사 (주)대우 홍보과장이던 시절 고참 출입기자로 처음 만났으니 교류한 지가 어언 20년이 훌쩍 넘는다. 선배 집 근처 강북의 유명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선배가 불쑥 물어본다. 요즘 떠들썩한 언론계 뉴스를 보았냐고.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 초기 화면에 등재되었다면 당연히 알았을 텐데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러자 딱하다는 듯 힐긋 보더니 스마트폰으로 어느 인터넷언론 사이트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 다름 아닌 수년 전에 창간된 이른바 탐사보도 전문 매체이다.

Top 기사로 처리된 기사는 계속 연재되는 시리즈로 돼 있었다. 어느 홍보대행사 대표가 주요 언론사 간부들과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마치 일급 로비스트처럼 종횡무진 활약한 내용들이었다. 일부 기업의 특정 기사들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마치 거래된 것처럼 보이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다수 공개 되었다. 안타깝게도 거론된 언론사 중진들 중에는 필자와 교분이 두터운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의 얼굴 사진과 진위 여부를 묻는 기자와의 통화 녹음도 생생하게 공개되었다.

본인들과 가족들이 겪었을 곤혹감을 생각하니 참으로 안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일부 대기업의 중요 기사나 칼럼 등이 광고나 협찬들과 교환되고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 탐사 보도 여파로 소문이 사실로 판명된 것 같아 홍보인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심정이다. 적어도 필자가 대기업 홍보맨이던 시절에는 전혀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홍보맨과 출입기자의 순수한 노력으로 유명 경제신문에 1면 Top 기사를 보도하게 만든 에피소드이다.

“우리 한번 1면 톱기사 만들어 봅시다”

때는 1994년 9월. 당시 국내외 경제 상황은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성공에 이어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그리고 중국과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이래 대우, 현대, 삼성, 럭키금성 등 대기업들이 앞 다투어 세계화 전략을 세우고 글로벌 비즈니스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오후 모 경제신문 A출입기자가 ㈜대우 기자실을 방문했다. A기자는 최근에 출입처가 종합상사로 변경된 중견 기자였다. 남북한 민간경제교류를 비롯해 큰 이슈들이 지난 3~4년 동안 종합상사를 둘러싸고 벌어져 당시 종합상사 출입기자는 산업부나 경제부의 베테랑 기자가 담당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여튼 종합상사 출입기자가 4년 만에 바뀐 것이라 A기자도 전임 기자 못지 않은 성과를 내려고 의욕이 넘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1면 Top 기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대우 홍보팀장을 맡은 이래, 산업면이나 경제면 Top기사는 노력해서 만들어 보았으나 1면 Top 기사는 한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룹 기사나 김우중 회장님 기사 말고 계열사인 ㈜대우 기사가 1면에 그것도 Top으로 보도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 아니냐.” 이런 식의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A기자의 반론이 있었다. “아니다. 종합상사 기사라도 그 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1면 Top 기사로 쓸 수 있다. 다만, 신문사 내부 조율 및 추가취재 등에 필요한 3~4일의 말미를 주어야만 한다. 앞으로 좋은 기사거리가 있으면 보도자료 쓰기 전에 나와 상의해 달라.” 필자는 내심 ‘아무리 생각해도 1면 Top 기사는 불가능하다. 그냥 한번 해 보는 소리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잘 알았다. 출입기자로 계시는 동안 우리 한번 1면 Top 기사를 만들어 봅시다.”라고 하며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몇 주일이 흘렀다. 어느 날인가 필자는 사보 담당자로부터 다음 달 사보 기획안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기획안 중에서 눈에 번쩍 띄는 제목이 보였다. “물류, 유통의 세계화, 소형백화점 대우플라자 추진”이라는 기사였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회사 물류사업본부의 중장기 계획을 취재했는데, 내용이 재미있어 기획기사로 크게 다뤘으면 한다는 답변이었다.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을 검토해 보니, 1996년 말까지 ㈜대우의 해외영업조직을 활용해 러시아, 중국, 미얀마, 베트남 등 전세계 200여 곳에 소형백화점인 ‘대우플라자’를 설립할 계획이며, 이르면 연내에 1호점을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오픈 할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소형백화점에는 계열사에서 생산한 가전제품을 비롯, 국산 가공식품, 일상용품, 의류 등을 판매할 예정이며, 이 계획이 성공하면 2000년까지 무려 1000개의 ‘대우플라자’를 설립한다는 물류사업본부의 미래가 담긴 원대한 계획이었다.

필자는 사보담당자에게 당분간 이 기사의 출고를 보류시키는 한편, 곧바로 물류사업담당 임원에게 달려갔다. 물류 임원으로부터 이 계획이 이미 최고경영층에게도 보고된 사항이며, 그렇지 않아도 12월쯤 대우플라자 1호점 개설 이전에 언론홍보를 요청하려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라, 이거 잘 하면 1면 Top 기사감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판단한 필자는 즉시 A기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시내에 있었는지 30분도 채 안되어 바람과 같이 필자 앞에 나타났다.

사보담당자의 파일과 함께 필자의 설명을 들은 A기자는 “데스크와 상의를 해봐야 되겠지만 잘 하면 1면 Top으로도 될 수 있겠다”며 급히 신문사로 돌아갔다. 그 동안 필자는 홍보팀 전체 회의를 소집해 이 기사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자료의 보안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서 1주일 가량 지났다. 그동안 몇 차례 추가 자료 요청과 관련자 인터뷰가 있었기에 필자는 ‘정말 1면 Top 기사가 나오나 보다’ 하는 기대감에 들떠 있을 때였다. 그때 A기자로부터 흥분에 찬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원래 월요일자 신문으로 밀어 붙였으나 금요일자로 결정되었다. 약속한대로 1면 Top이다.”

마침내 A기자의 예고대로 금요일자 신문에 ‘대우, 96년 말까지 전세계 200여 지역에 소형백화점 개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컬러 지도와 함께 1면 Top으로 보도되었다. 이후 아쉽게도 ㈜대우의 두 번째 1면 Top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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