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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50세에 사업 시작해 ‘인도의 트럼프’ 꿈 이루다
50세에 사업 시작해 ‘인도의 트럼프’ 꿈 이루다
  • 오화석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승인 2018.11.30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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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샬 팔 싱 DLF 회장의 늦깎이 도전…재산 7조6000억 부동산 재벌

2007년 7월 5일 인도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뭄바이(옛 봄베이) 증시가 열리기를 학수고대했다. 이날은 인도 최대 부동산 재벌인 DLF가 뭄바이 증시에 상장하는 날이었다. DLF의 증시 상장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도 부동산 시장의 향배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인도 경제의 향방까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DLF 주가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날 내내 꾸준히 오른 DLF 주가는 종가기준 9% 상승했다. 성공적 증시 데뷔였다. 상승세는 이날로 끝이 아니었다. DLF 주가는 이후 지속적으로 올랐다. 이 회사 주식 시가총액은 2018년 3월 현재 250억 달러를 기록했다. DLF 주식의 26.5%를 소유한 쿠샬 팔 싱(Kushal Pal Singh) 회장은 66억(약 7조6000억원) 달러에 달하는 갑부가 됐다. 

싱 회장은 1931년생으로 인도 북부 지역인 우타르 프라데시 주 태생이다. 인도 미루트(Meerut)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선 항공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인도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항공공학을 전공하다 갑자기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싱 회장은 “당시 폴로(말에서 공치기 하는 경기)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싱은 자신의 희망대로 기병부대에 자원했다. 저명한 데칸기병대에서 9년간 복무했다. 육군사관학교를 포함해 10여 년간의 군 생활은 그에게 후에 비즈니스에서 큰 도움이 되는 리더십과 규율, 엄격한 생활태도를 갖게 했다.

1960년 군에서 퇴역한 그는 장인이 경영하던 부동산 회사인 델리 토지금융(Delhi Land & Finance)에 들어갔다. 바로 현재 DLF의 모체 회사다. 그러나 당시 인도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 사업은 침체 일로에 있었다. DLF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 잘 나가던 회사였지만 정부의 규제에 부딪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사업거리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0여 년간 전기 모터와 자동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미국계 아메리칸 유니버설 일렉트릭 등 여러 회사에 적을 두었다. 

이들 회사의 최고경영자도 역임한 바 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는 내지 못했다. 잠깐 한눈을 판 이들 사업에서 그는 비록 성공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서구식 경영기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 기간은 후일 성공을 위한 훈련과 준비 기간이었던 셈이다.

50세 때 글로벌 부동산 재벌 꿈 가져 

1979년 싱은 장인이 하던 부동산업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아메리칸 유니버설과 DLF 유니버설이 통합하자 그는 통합회사의 대표가 된다. 통합회사는 부동산개발 사업체였다. 통합회사라고 해보았자 자본금은 일천했다. 통합회사 사장이 된 그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글로벌 부동산 재벌이 되겠다는 꿈을 꾼다. 그 때 나이 50세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그는 ‘글로벌 부동산 재벌’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며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것도 맨 손으로. 무모하다 싶은 꿈이었다.

싱 회장이 ‘제2의 도널드 트럼프’를 꿈꾸며 도전에 나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토지 개발에 대한 규제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사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정부 규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농지를 상업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부만이 토지 개발권을 가진다는 법률을 개정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는 낙담하고 실망했다. ‘제2의 도널드 트럼프’가 되겠다던 꿈을 접을까도 생각했다. 이런 상태에선 글로벌 부동산 재벌로 큰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다. 

구르가온 타운십은 구르가온에 자리잡은 ‘DLF City’를 의미한다. 구르가온은 뉴델리 남부서 자동차로 20~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신도시다. 바로 싱 회장이 1990년대 후반 ‘DLF 시티’를 개발하고부터 신도시로서 모양을 갖추었다. 그전까지 구르가온은 허허벌판에 황량한 논밭에 불과했다.

이 허허벌판에 세계적인 타운십을 세운다는 것이 싱 회장의 계획이었다. 이 타운십 안에 수만 채의 고급주택, 테크놀로지 기업단지, 상업시설을 비롯한 대단위 쇼핑센터, 선진국 수준의 레저오락 공간, 세계적인 골프장 등을 건설하는 것이 주된 골격이다. 이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했다. 우선 인적을 찾기 힘든 황량한 벌판에 세계적인 타운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가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수도인 뉴델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르가온으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전략을 구상했다. 예를 들어 ‘일터에 걸어 갈 수 있는 곳(walk to work)’ 혹은 ‘걸어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walk to leisure)’이란 슬로건을 내걸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또 DLF시티 내에는 주택에서부터 사무실, 레저공간, 학교, 쇼핑센터, 병원, 골프장 등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춰 걸어서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그는 잠재 고객들에게 교통편을 무료로 제공하고, 쇼핑센터에서의 다양한 할인혜택도 주었다. 또 DLF시티 내 주택 입주 시 융자혜택도 대폭 제공했다. 인근을 지나는 고속도로가 구르가온을 거쳐 가도록 정부에 요청해 실현시키기도 했다.

허허벌판을 금싸라기 땅으로 바꾸다

그 결과 DLF시티는 인도에서 가장 성공적인 타운십으로 자리 잡았다. 그 이면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자회사들의 DLF 입주가 큰 역할을 했다. GE는 1997년 GE 캐피털 인터내셔널 서비스와 GE 메디컬 시스템의 백 오피스를 이곳에 입주시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당시 구르가온은 도로도 열악했고, 주변에 변변한 식당도 없었으며, 직원들이 타고 다닐 버스 등 교통수단도 매우 취약했다. 그런데도 GE가 이곳에 입주한 것은 뉴델리 시내에 비해 가격이 싼 데다 사무실 공간이나 시설 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GE가 DLF시티 안에 둥지를 틀자 다른 세계 유명 기업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국 브리티시항공(British Airline), 네덜란드의 네슬레(Nestle), 미국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IBM, 스웨덴의 에릭슨(Ericsson) 등 많은 다국적 기업이 잇따라 들어왔다. 그만큼 DLF시티가 시설 면에서 우수했다는 것을 뜻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구르가온으로 몰려들자 인도 IT 기업들도 덩달아 입주 러시를 이뤘다.

기업들이 밀려옴에 따라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자 사람들이 DLF시티 내 주택단지에 거주하고 주변 상가와 쇼핑몰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델리서 온 수많은 쇼핑과 위락 인파로 구르가온은 몸살을 앓을 정도가 됐다. 후발 부동산 개발업자들도 개발에 나서면서 구르가온 땅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싱 회장이 에이커당 평균 2000달러를 주고 산 구르가온 땅값은 수백만 달러를 주고도 사지 못할 만큼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구르가온에 세계적 타운십을 만들겠다던 싱 회장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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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배재대학교 글로벌교육부 교수)

오화석 소장은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도 네루대(JNU) 국제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배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슈퍼코끼리 인도가 온다> <100년 기업의 힘 타타에게 배워라> <마르와리 상인> 등 인도 관련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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