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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을 글로벌 브랜드로 설계하다
방탄소년단을 글로벌 브랜드로 설계하다
  • 이일호 기자
  • 승인 2018.11.3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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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코리아가 선정한 '2018 BEST CEO' 방시혁 빅히트 엔터 대표
히트 엔터테인먼트(Bighit Entertainment)를 이끄는 방시혁(47) 대표는 대중에게 ‘천재 작곡가’ ‘히트송 제조기’이자 방탄소년단을 만든 프로듀서, 소속사 대표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식어로는 방시혁의 역할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엔터 산업이라는 게 그렇다.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발을 빠르게 휘젓듯, 빛나는 스타들의 뒤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게 팀의 존재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 대표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결과물’에 앞서 ‘과정’과 ‘리더십’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방시혁 빅히트 엔터 대표와 방탄소년단.<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인사이트코리아>는 ‘2018 올해의 CEO’로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뽑았다. 빅히트 엔터의 ‘경영인 방시혁’ 뿐만이 아니다. 국내 산업계에 두드러진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리더 방시혁’의 역량이 돋보였던 한 해라는 평가다. ‘경영인 방시혁’으로서의 빅히트는 방탄소년단을 통한 실적 향상, 시가총액 등 투자가치와 같은 결과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리더 방시혁’의 행보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서 엔터 업계에 본보기가 됐음이 분명하다.

빅히트 엔터의 방시혁 대표는 회사에서 직함이 두 개다. 첫째는 회사 지분의 절반을 갖고 사업을 이끄는 오너이자 대표이사다. 2005년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독립해 세운 빅히트는 오늘날 엔터 업계를 주름잡는 ‘거물’ 기업이 됐다. 방탄소년단 하나만으로 2017년 기준 연 매출 1000억원에 순이익 400억원을 올렸다. 단연 업계 최고 실적이다. 증권가에선 올해 순이익이 최소 지난해의 ‘더블스코어’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1000억원대 순이익이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서도 시가총액 1~2조원대 100위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프로듀서 방시혁

방시혁 빅히트 엔터 대표.<빅히트 엔터>

하지만 그는 여전히 대표가 아닌 ‘총괄 프로듀서’, 더 편하게는 ‘피디(PD)’로 불린다. 방탄소년단 멤버를 비롯한 빅히트 식구들도 방시혁을 줄곧 ‘대표님’이 아닌 ‘피디님’이라고 부른다. 본인도 “대표보단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편하다”고 밝혔다. 딱 떨어지는 정장보단 티셔츠와 카디건을 입고 빅히트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며 장난치는 그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는 직함이다.

SM, YG, JYP, 큐브 엔터 등 소위 잘나가는 연예기획사 가운데 프로듀서로 불리는 대표자는 박진영(JYP 엔터)과 방시혁 둘이다. 이들은 JYP엔터에서 ‘사제지간’으로 한솥밥을 먹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 방시혁’이 아닌 ‘피디 방시혁’으로 불리길 원하는 그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한 시상식에서 “박진영으로부터 프로듀싱의 ‘A부터 Z까지 배웠다”고 밝힌 방시혁 대표는 JYP엔터에서 독립한 지 10년여 만에 스승을 능가하는 청출어람을 이뤄냈다.

방시혁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통제하지 않았다. 반대로 연습생 시절부터 멤버들을 풀어주고 그들이 자유롭게 음악 작업을 하게 만드는 ‘자유방임형’ 피디에 가까웠다. 이에 대해 방 대표는 “(방탄소년단의) 연습 시간을 강제하지도, 생활을 통제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에 자율을 주고,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매니지먼트 시스템 아래서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길러지는 여타 그룹과는 판이하다.

대신 방 대표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정체성과 철학을 심어줬다. 시장에서 팔리는 음악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전달하라’고 주문했다. 피디로서의 방 대표 리더십이 두드러지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작사·작곡을 모두 멤버들에게 맡겼고, 그 과정에서 소위 ‘겉멋’ 든 음악들은 모두 쳐냈다. 그들의 첫 음악적 산물이 이른바 ‘학교 3부작’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데뷔곡 ‘No more dream’에서 “얌마 네 꿈은 뭐니 네 꿈은 겨우 그거니”로 시작되는 가사는 마치 1990년대 10대 청소년의 방황을 표현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연상시킨다.

방탄소년단은 ‘학교 3부작’을 직접 만들며 자신들이 갖고 있던 ‘꿈’ ‘사랑’ ‘억압’ 등과 같은 고민을 음악 속에 집어넣었다. 비록 그것이 ‘학생들의 반항’과 같은 과거 진부한 주제들이라도 상관없었다. 방 대표는 이에 대해 “‘철 지났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고 밝힌 바 있다. 다소 올드한 주제라도 그것이 진정성을 갖고 있으면 시장에서 먹힐 것이란 판단에서다.

방탄소년단 리더 랩몬스터(RM)도 2017년 빌보드 기자간담회에서 “음악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저희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우리 이야기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도 공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권(황인) 그룹’과 ‘한국어’라는 약점에도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공감을 이끌어내는 메시지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이후 음악적 행보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청춘 2부작’으로 불리는 화양연화(花樣年華) 시리즈에선 갓 20대가 된 자신들의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청춘 이야기를 녹여냈고, ‘Love Yourself’ 4부작에선 과거 작품들에서 이어져 온 서사들을 세계관의 수준까지 확장했다. 작사·작곡까지 하는 아이돌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앨범 콘셉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그것을 유기적으로 이어나가는 그룹은 음악계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방탄소년단이 특별한 팀으로 거듭난 데는 빅히트의 초창기 시행착오도 영향을 미쳤다. 방시혁 대표는 임정희·케이윌·에이트(8eight)·2AM 등 유망주들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도 2010년 들어서야 첫 월급을 받을 만큼 사업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성공을 위해선 다양한 시도를 하기보단 하나의 콘셉트를 기반에 둔 ‘뮤지션 아우라’가 필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선 음악성이 단단하고 일관돼야 한다고 봤고, 이 같은 철학이 반영된 첫 아이돌그룹이 바로 방탄소년단이었다.

‘하나의 팀’을 만든 리더십

방탄소년단.<빅히트 엔터>

“각기 재능과 실력을 갖춘 일곱 명의 멤버들이 멋진 스타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길 바랐다. 팬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긴밀히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리더십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길 바랐다.” (방시혁, 2018년 2월 23일, KBS1 ‘명견만리’에서)

케이팝 프로듀서는 아이돌의 첫 탄생부터 데뷔, 활동으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그리는 ‘설계자’다. 빅히트의 육성 시스템과 회사 운영방침은 대외적으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지만 방탄소년단의 설계부터 데뷔, 활동 전반까지 방시혁을 구심점으로 한 100여 명의 빅히트 팀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은 확실하다. 방탄소년단이 스티브 아오키, DJ스위벨 등 해외 음악 프로듀서들과 협업할 때도 빅히트 차원에서 곡 설계에 관여했다고 한다.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디제이(DJ)들이 빅히트의 방향성에 맞게 움직인다는 게 이례적이다.

빅히트 내에서 방 대표의 역할은 ‘지휘자’라기보다는 ‘조언자’에 가깝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싱 전반은 방 대표에게 리더 RM을 추천한 피독(Pdogg)과 슬로우 래빗(Slow Rabbit), 슈프림보이(Supreme Boi) 등 내부 작곡가들과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도맡았다. 방 대표는 의식적으로 후방으로 빠진 채 전반적인 제작자로서의 기본적 역할 설정에만 집중했다. 2017년 한 수상식 자리에서 방 대표 자신도 빅히트 내 본인의 역할을 ‘주제넘지 않은 지렛대 자리’라고 말했을 정도다.

방 대표가 말한 ‘지렛대 역할’은 무엇일까. 그의 행보로 짐작하자면 두드러지지 않게 팀의 성장을 받쳐주는 존재로 읽힌다. 이에 대해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는 “방시혁 프로듀서님은 늘 열린 자세로 우리의 음악과 생각을 수용해주신다”고 말했다. 돈 되는 아이돌그룹을 만들기 위해 보채기보단,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멤버들 안에 담겨있는 ‘씨앗’을 발현하도록 돕는 걸 택한 것이다.

그는 방탄소년단을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팀이 없으면 개인도 없다’는 게 방 대표의 지론이다. 리더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하도록 했고 팀 단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쳤다. 회사가 없이 팀원들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지에 대해 자율학습형 수업도 많이 시도했다. 이 같은 방식은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열어주면서도 그들이 팀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방탄소년단 퍼포먼스 영상.<유튜브 '1theK' 캡쳐>

팀의 자발적 의사결정을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2013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방탄소년단이 첫 무대에 섰는데, 하필 카메라워크 문제로 무대가 제대로 송출되지 못했다. 퍼포먼스의 채 반절도 못 보여준 게 아쉬웠던 멤버들은 뮤직비디오 수준으로 퍼포먼스 영상을 찍어 올리자고 회사에 제안했고, 돈 안 되는 일이지만 방 대표는 이를 쿨하게 허락했다. 금전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판단이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됐음은 물론이다.

방 대표는 나아가 팀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싸우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곱 명이 함께 갈등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방 대표는 한 방송에서 “싸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갈등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어느 날 방 대표를 쪼르륵 찾아와선 ‘저희가 이걸로 싸웠고, 이러이러하게 해결했다’고 설명해 방 대표가 흐뭇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리더십이 빛나는 대목이다.

방시혁 대표는 2013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경영자로서 실패만 하지 않으면 (방탄소년단)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중요한 아티스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며 “방탄소년단은 어느 정도 통제를 받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직접 곡을 만든다. 지금처럼 간섭하지 않고 성장하는 판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스스로 두드러지지 않고 훌륭한 팀원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지렛대 역할을 자처했던 게 바로 방 대표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판’을 뒤집다

과거 케이팝은 미국에서 ‘서브컬처’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소녀시대·원더걸스·빅뱅·비 등 몇몇 아이돌들이 미국에 진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케이팝은 미국에서 나름의 지평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SM, YG, JYP라는 거대 기획사의 지원에도 대다수 아이돌이 성공하지 못하고 정체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작은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그룹의 뛰어난 성취는 국내 케이팝 시장 전반에 ‘이젠 자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던져줬다.

비슷한 관점에서, 한국 아이돌 산업은 방탄소년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H.O.T.와 젝스키스, 신화, 지오디(god) 등이 산업의 문을 열어젖힌 1세대 아이돌이라면,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빅뱅, 원더걸스 등 2세대 아이돌은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틀에 맞춰져 화려한 군무를 선보였다. 이후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의 다변화된 콘셉트, 유튜브·트위터 등 플랫폼 업체와의 협업으로 대별되는 3세대 아이돌도 등장했다.

방탄소년단은 이 같은 ‘세대론’ 자체를 뭉개버린다. 소속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여타 아이돌그룹과는 다르게,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자유방임적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방 대표는 ‘내면의 목소리를 음악에 담으라’며 그들에게 철학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물은 바로 정체성에 기반을 둔 ‘메시지’였다.

2018년 9월 24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 맴버들이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인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br>
2018년 9월 24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 맴버들이 뉴욕 유엔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에서 열린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인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파트너십 출범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방탄소년단은 지난 9월 뉴욕 유엔(UN)본부에서 유니세프의 새로운 청소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Generation Unlimited)’ 출범식에 초대돼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리더 RM은 “우리의 메시지가 그들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들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데(start loving themselves)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들었다”며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책임감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디스코그라피(Discography)는 연속적이다. 꿈·행복·사랑을 주제로 한 ‘학교 3부작’ 시리즈, 청춘의 아름다움을 담은 ‘화양연화’ 시리즈, 현재진행형인 ‘러브유어셀프(Love Yourself·기승전결)’ 등은 이들의 ‘피·땀·눈물’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멤버들의 재능이 노력과 맞물리면서 여타 아이돌그룹과는 차별화되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이 탄생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2018년 행보를 보자. ‘Love Yourself’ 4부작 중 승(承)·전(戰)-결(結)로 빌보드 메인차트인 ‘빌보드200’ 1위에 두 번이나 올랐다. 아시아 출신 가수로 빌보드200 1위에 오른 건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이전까지 싸이의 ‘강남스타일’ 2위가 최고였다). 하반기부터는 미국 뉴욕 시티필드, 영국 O2아레나 공연 등 두 달여에 걸쳐 글로벌 투어에 나섰다. 뉴욕타임스, 타임, 가디언즈, 롤링스톤즈, MTV 등 해외 유수의 언론도 그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나섰다.

방탄소년단을 ‘세대론’과 같은 기존 엔터 산업의 틀 안에서 정의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멤버 전원이 스스로 자신들의 노래를 ‘셀프 프로듀싱’하는, 돈이 아닌 작품이자 유기적 서사로서의 음악을 만드는 그룹. 과거 여느 아이돌그룹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방탄소년단의 등장과 함께 ‘엔터 3대장’으로 불리던 SM, YG, JYP의 10여 년에 걸친 ‘삼국지’가 깨지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고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포스트 방탄소년단’ 시대는 누가 열까

물론 방탄소년단의 성취에도 케이팝(K-POP)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류 가도에 올랐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에 팝 음악을 원류로 두고 군무 중심의 퍼포먼스와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가미하는 방식을 온전히 ‘케이팝의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만간 빅히트의 육성 방식을 벤치마킹한 경쟁그룹이 수년 내 국내외에서 등장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방탄소년단 이후 케이팝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재 미국 내 케이팝 시장을 유의미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외의 회사들이 방탄소년단의 힙합·청춘·군무·유튜브를 미국 진출의 답으로 여긴다면, 미국의 보이그룹이 그것을 못 할 이유 역시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방시혁 대표가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빅히트는 내년 초를 목표로 새로운 보이그룹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 다음 그룹이 방탄소년단만큼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데뷔 직전인 2012년 여성 힙합 아이돌그룹 글램(GLAM)을 선보였지만 실패한 바 있다.

빅히트의 수익 구조도 문제다. 소속 연예인이 방탄소년단과 ‘옴므(HOMME)’ 둘뿐이고 이마저도 매출의 99%가 방탄소년단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여타 연예기획사들이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여러 팀을 데뷔시키고 있지만, 빅히트는 현재까지 방탄소년단 한 팀에 회사의 운명을 걸고 있다. 다시 말해 방탄소년단 이후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행히 빅히트는 향후 7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지난 10월 방탄소년단 전 멤버들에게 업계 최고 대우와 함께 7년 재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올해로 데뷔 6년차인 방탄소년단이 통상 해체 기로로 꼽히는 ‘7년차 고비’를 조기에 넘긴 데 대해 업계에선 소속사와 그룹 멤버들 간의 깊은 신뢰 관계가 바탕이 된 계약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방시혁 빅히트 엔터 대표.<빅히트 엔터>

하지만 남자 아이돌을 발목 잡는 군대 문제도 남아있다. 한 그룹의 군대 문제가 회사 전체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YG엔터의 빅뱅 사례로 이미 여실히 나타난 바 있다. 10~20대에 데뷔하는 아이돌그룹이 그렇듯, 방탄소년단 멤버들 또한 모두 군 미필 상태다. 당장 내년부터 멤버들의 입대 영장이 날아오면 기약된 2026년이 끝나기 전에 팀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의 ‘단물’에 취해 안주할 수 없는 노릇이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과거 혜성처럼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진 아이돌그룹의 전례를 봐도 이 같은 고민은 타당하다. 지난 2년간의 성취가 방시혁 대표에게는 큰 놀라움이자 즐거움이었다면, 그의 향후 몇 년은 현재의 성공 사례를 ‘모델’로 정착시키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비단 방시혁 대표만의 숙제가 아닌 케이팝 전체의 고민거리, 나아가선 ‘업(業)’으로서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물어야 할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은 참 뿌듯하지만 동시에 참 절망스럽다. 일곱 명의 멤버가 저렇게 결합했을 때 이 정도의 시너지가 날 것이란 걸 데뷔 전엔 몰랐다. 앞으로 다른 그룹을 이토록 잘 만들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방시혁, 2018년 2월 23일, KBS1 ‘명견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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