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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송광익, 만물의 본성 영혼의 정화
서양화가 송광익, 만물의 본성 영혼의 정화
  • 권동철 전문위원
  • 승인 2018.11.21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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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物(지물), 240×160㎝ 한지 테이프 풀 아크릴, 2012
紙物(지물), 240×160㎝ 한지 테이프 풀 아크릴, 2012

“전통이 단순히 되풀이해 기억해야 하는 앎의 차원이라 한다면, 전승은 시대마다 공동체마다 공동체의 가치와 더불어 가장 적합함을 구하는 가운데 달리 이해되며 해석되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승은 전통과 달리 시대의 가치가 하나로 적용되며 있는 것이기에, 전승과 더불어 이해하며 해석하며 적용하며 자기를 실현하며 나오고자 하는 존재들은 이미 가치 판단을 하며 있는 것이다.”<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著, 과학시대의 이성, 박남희 옮김, 책세상 刊>

한옥의 문살문양 같은 그리드(grid)형식을 기본으로 화면은 맑고 정제된 깊이의 시적조형미를 선사한다. 수직과 수평, 좌우의 대칭, 빛의 투과와 시간의 흐름에 투영되는 음양대비, 철학자 들뢰즈가 제시한 관계원리인 리좀(rhizome), 자기유사성의 프렉탈(fractal) 등을 함의 한 기하(幾何)패턴은 자연계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흥미들로 가득한 보고(寶庫)로서의 잠재성을 품는다.

부분이 전체로 또 수많은 존재가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는 화면의 기하학적 격자구조는 마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창(窓)들의 조합, 엷은 나뭇잎을 투과한 빛의 굴절, 때론 원석덩어리가 뿜어내는 천연광채처럼 활발한 생명성의 움직임으로 숨 쉰다.

 

140×110㎝ 한지 아크릴, 2018
140×110㎝ 한지 아크릴, 2018

그런가하면 장엄한 꽃의 장식, 화엄(華嚴)이 불현 듯 피어오르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로지 손으로 한지(韓紙)를 재단하고 찢고 붙이는 촉각성이 부여된 미감은 과정자체가 하나의 지난한 고행의 수행성을 동반한다.

“처음에 흑백 작업에서 출발했다. 약간의 색채를 가미하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나는 흑백작품을 많이 하는데 동양적인 느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성이라는 채색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한지조각들을 크거나 작게 또 높거나 낮게 접거나 세우는 작업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리듬성의 표출이다.”

 

(왼쪽)140×110㎝ 한지 먹 (오른쪽)140×110㎝ 한지 아크릴, 2017
(왼쪽)140×110㎝ 한지 먹 (오른쪽)140×110㎝ 한지 아크릴, 2017

◇한국인의 정체성형상화

1990년대 후반 일련의 작업에서 엿보였던 종이물성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느 날 송광익 화백(서양화가 송광익,송광익 작가,한지작가 송광익,ソン・グァンイック,ARTIST SONG KWANG IK)에게 강렬한 영감으로 일깨운다. “작업실 입구 성황당 신목(神木)에 새끼줄과 종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에 강렬하게 끌렸다. 그것을 형상화시키고 싶었다. 지금의 한지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정월에 저고리나 두루마기 옷고름을 나무에 매달고 제(祭)를 올림으로써 마을의 액운을 막았던 ‘서낭당’ 민속(民俗)은 마을의 공동체 삶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한국인의 영혼에 살아 숨 쉬는 맥박이지 않은가!

이러한 ‘지물(紙物)’시리즈는 동서남북이라는 방위(方位)의 기본인 ‘ㅁ’형태 등 개별단위의 개체성을 부여한다. 촘촘히 붙이는 반복과 지속성의 필연적 노동을 요구하는 화면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한번 걸러줌으로써의 한지가 갖는 모성애적 헌신성을 놀랍도록 담백한 동중정(動中靜)으로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날숨과 들숨의 행간(行間)의 자취까지 아우름으로써 총체로서의 세계를 담고 있는 한지추상미학의 결정체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권동철 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
권동철 전문위원, 미술칼럼니스트, 데일리한국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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