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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8 13:52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명품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코리아 서부석 대표
명품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코리아 서부석 대표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8.10.31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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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프랑스 사람들이 얕봐?...“10년 안에 사장 되겠다”

[인사이트코리아=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서부석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는 2010년 국내에서 쌤소나이트 레드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쌤소나이트 오리지널의 서브 브랜드. 세계적인 여행가방 메이커가 이 브랜드로 백팩을 만들어 팔았다. 서 대표는 TV홈쇼핑에도 진출해 유통 채널을 다각화했다. 쌤소나이트 레드를 통해 가방의 카테고리를 확장했고 TV홈쇼핑에 진출해 한국 고객의 니즈에 맞춘 것이다. 그는 “패션 기업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글로벌화와 현지화(localization)를 조합한 전략이죠. 국경이 없는 시대 국내 기업은 외국에 진출할때, 외국 기업은 국내시장에 진입할 때 현지화를 병행해야 합니다.”

서 대표는 단품으로 팔리는 여행가방을 홈쇼핑 채널에선 세트로 팔았다. 그러기까지 “여행가방 장만은 목적 구매라 사람들이 세트로는 안 산다”는 회사 내부의 인식,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샤넬·발리·프라다 거쳐 쌤소나이트에 둥지

론칭 결정 후 4개월 만에 선보인 쌤소나이트 레드는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내 대기업이었다면 새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1년 이상 스터디를 했을 것이다. TV홈쇼핑에서 쌤소나이트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95%에 달했다. 홈쇼핑 시장 진입은 서 대표가 주도하는 멀티채널 전략에 따른 것이다. 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패션업계에 진출했다. 당시에도 남들이 보통 가지 않는 길이었다. 4대 대기업과 금융사에 갈 수도 있었다. ‘카투사 출신에 어학연수도 다녀왔는데 경험 삼아 외국계 기업 취업 면접에 가 보라’는 모교 취업보도실의 권유를 받은 것이 취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계적인 명품인 샤넬·발리·프라다를 거쳐 쌤소나이트에 몸담았다. 여기서 11년 만에 서른일곱의 나이에 CEO 자리에 올랐다. 전 직장에서 그는 회계, 판매·마케팅, MD(상품기획), 점포 디자인, 영업 등을 섭렵했다. 이렇게 명품 회사에서 제너럴리스트로 경력을 쌓은 그는 2005년 4월 1일 프라다 부장에서 쌤소나이트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지인들에게 이런 내용의 단체 문자를 보내자 몇 사람이 ‘오늘은 만우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4~2016년엔 쌤소나이트 아시아 사장을 지냈다.

“명품 회사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좀 우습게 봤어요. 걸핏하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통에 자존심이 상했었죠. 그때 10년 안에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꿨어요.”

그는 글로벌 본사가 모두 결정하고 로컬 지사는 집행만 하는 사업 방식이 수긍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무슨 제안을 하면 본사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안 맞는다, 너무 로컬스럽다고 했어요. 로컬스러운 게 결국 답인데 말이죠. 글로벌 차원에서 브랜드 이미지가 같아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입니다.”

쌤소나이트에 입성하면서 그는 연간 300억 원 수준이던 매출액을 10배 규모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8배 수준인 2390억원. 그는 “10배가 다 돼 가니 할 일을 한 셈”이라고말했다.

쌤소나이트는 1910년 설립된 미국의 여행가방 전문기업이다. 창립 100년이 넘은 이 회사는 국내에서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리뽀, 하트만, 투미, 하이시에라 등 10개 브랜드로 사업을 벌인다. 다(多) 브랜드 전략은 위험을 분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그는 모든 기업은 차별화된 혁신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착오 거치며 구성원들 내성 생겨 쌤소나이트 레드를 4개월 만에 론칭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다.

“브랜드 포지셔닝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생겼을 때가 있는가 하면 제품 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있었어요.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구성원들로서는 내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생깁니다.” 여행가방 회사가 백팩을 만드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행가방은 테러, 사스, 오일 쇼크, 환율변동 같은 외부 환경 요인에 취약합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매출 변동이 극심해요. 회사의 장기 비전에 대해 고민하다 ‘왜 여행가방만 팔아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무렵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책 대신 폰을 들여다보는데 손이 자유로워지려면 백팩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는 쌤소나이트 레드에 대해 상당히 글로벌화 된 만큼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거로 내다봤다. 백팩도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볼륨감 있는 백팩이 잘 팔리지 않는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성향 때문이다. 가방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온라인에서 팔리는 여행가방 브랜드가 무려 170개에 달한다. 글로벌 기업의 로컬 CEO인 서 대표로서는 로컬 시장에서의 매출 실적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 간의 밸런스를 적절히 유지하는 게 과제다. “어떤 브랜드는 가격이 쌤소나이트 저가 브랜드의 절반도 안 됩니다. 매출 실적이 중요하기는 하죠. 그렇다고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떨어뜨려서 는 안 됩니다.”

국내에 가방공장 설립하는 게 꿈

그는 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패션 산업에도 불어닥치고 있다고 했다. 장차 브랜드 론칭도 인공지능(AI)이 하게 될 거로 전망했다. “앞으로 3D 프린팅이 활짝 꽃피우면 여행가방도 맞춤으로 제작해 1주일이면 배송할 수 있습니다. 꿈같은 얘기죠. 그때가 되면 고임금 탓에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한 가방공장도 국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에요. 언젠가 국내에 가방공장을 설립하는 꿈을 꿉니다.”

쌤소나이트 레드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연 매출액 500억 원 대의 효자로 성장한 건 한류 스타를 모델로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 ‘별에서 온 그대’를 찍기 전의 김수현, 이민호·김우빈·이종석 등 라이징 스타를 뜨기 전의 몸값에 모델로 기용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 일로 그는 “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여행가방 이미지에 올드 브랜드라는 인상이 강한 쌤소나이트는 이들 한류 스타의 이미지를 딛고 레드를 통해 젊은 고객에게 다가갔다.

“한류 스타를 모델로 쓴 TV 광고를 하기 위해 본사를 설득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명품 브랜드 중 한국에서 TV광고를 하는 데가 없다는 것이 본사의 반대 논리였습니다.”

그는 그러나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는스타 마케팅은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또래나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PPL(product placement)도 더 이상 잘 안 먹힌다. 서 대표는 중동까지 담당하는 아시아 사장을 맡았을 때 중국·일본 법인 등에 레드 같은 자체 제품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기존 제품을 판매만 하다 디자인은 물론 생산까지 하는 것에 대해 이들 법인의 저항이 심했다. 주저하는 중국법인 사장을 그는 “모든 브랜드의 생산 기지가 중국인데 당신도 할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이들 나라도 그의 글로컬 전략을 받아들였다.

미래숲과 손잡고 내몽골에 나무 심어

“비즈니스의 시작과 끝은 소비자를 제대로 이해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혁신 전략을 세워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스피드와 혁신이 키워드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공 스토리를 다른 나라와 셰어해야 합니다.”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사단법인 미래숲과 손잡고 중국 내몽골 쿠부치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사막화를 막는 한편 황사를 차단하는 방풍림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쌤소나이트로서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이 사막은 부근에 황하 지류가, 사막 밑엔 지하수가 흐른다. 그래서 1미터만 파면 사막이지만 젖은 모래가 나온다. 그 덕에 적합한 수종을 골라 심고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면 평균 80%가 생존한다고 한다. 이 사막 동쪽에 남북으로 16킬로미터, 폭 0.6킬로미터의 방풍림(녹색장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중 두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역사에 참여한다. 10억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인데 지금까지 약 1000만 그루를 심었다. 이 가운데 900만 그루가 생존해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이 가운데 쌤소나이트코리아가 심은 것이 15만8000 그루다. 서 대표가 제안해 이 일은 그 후 쌤소나이트 글로벌 프로젝트가 됐다. 2년 간 설득해 중국 법인도 참여한다.

우리나라에 도달하는 황사량의 37%는 중국 내몽골에서 발생한다. 이 황사의 주 발생지가 바로 쿠붙이 사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사막이다.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국내에서도 나무를 심는다. 폐자재, 쓰레기, 오수 위에 만들어진 난지도에 8년째 심고 있다. 나무가 살아 숨 쉬면서 이곳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 이 숲에 토끼와 뱀도 산다. 살아 있는 숲을 볼 때마다 그는 자연의 복원력을 실감한다. “명품 브랜드가 로컬 시장에서 벌어 기부 조금 하고 본사에 송금하기 바쁘다면 직무를 유기하는 겁니다.”

그는 취임 14년째인 장수 CEO다. 과거 한 인터뷰때 10년 안에 아시아 사장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9년 만에 그 꿈을 이뤘다. 그는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꿈을 이루면 그게 또 누군가의 꿈이 됩니다.”

예순에 은퇴해 여든까지 NGO 몸담고 싶어

그가 꾸는 다음 꿈은 예순에 은퇴해 여든까지 20년간 NGO에 몸담는 것이다. 아시아 사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본사 방침으로 동남아 파트를 맡은 직원을 두 번 해고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때 ‘덕장’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로 덕장의 꿈을 접었다. 그는 “너무 착한 리더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고령의 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근무처인 홍콩에서 주말에만 집에 오는 생활이 부담돼 아시아 사장도 2년 만에 그만뒀다. 그의 집 가훈은 ‘착한 일 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勿怠爲善·물태위선)이다. 그는 ‘즐기면서 일 하자 주의’를 추구한다. 100여 명의 구성원들에게 제안하는 인재상은 PEPSE다. 열정(Passion), 재미(Enjoy), 자부심(Pride), 빠른 일 처리(Speed), 실행(Execution)의 머리글자를 땄다. 11년만에 사장이 된 비결로 그는 70%의 운과 30%의 PEPSE를 꼽는다. “어린 나이에 사장이 돼 사내에 저보다 연장자가 많았어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는 한편 그분들을 존중하려 나름 애썼습니다. 또 저 자신이 입 밖에 낸 말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미팅 땐 팀장뿐 아니라 평사원도 참석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회의를 하면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젊은 세대에게 주는 조언을 구했다. “첫 직장인 샤넬 면접 때 면접관이 대기업 출신의 관리본부장이었습니다. 이분이 외국계 기업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 줬죠. 대기업 면접처럼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양방향 대화를 하시는 그분에게서 뭔가 배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대기업보다 연봉이 더 적고 제가 원한 마케팅직도 아니었는데 그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저의 직감을 믿었기 때문이죠. 그 후 관리 업무를 하면서 도운 영업본부장이 아예 영업직으로 직종을 바꿔 도와달라고 해 영업을 하게 됐어요.

산 좋고 물 좋은 여행지가 없듯이 연봉도 높고 ‘워라밸’도 좋은 직장은 거의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마음이 끌리는 분야에서 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몇 번 이직을 한 건 보스 때문이었다. 자신의 윤리적기준으로 수용할 수 없는 문제를 보스가 일으켰을때 그는 직장을 옮겼다.

“좋은 보스를 여럿 만났지만 그렇지 않은 보스도 저에게는 반면교사였습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셋이 함께 길을떠나도 그 중에 스승이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반면교사일지도 모른다. 둘을 구분하는 데는 사람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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