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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일자리 약탈은 범죄다
공기업 일자리 약탈은 범죄다
  • 윤길주
  • 승인 2018.10.3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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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모럴 해저드가 도를 넘고 있다. 각종 비리로 혈세를 탕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新)판 고용세습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에 아연할 따름이다.

한국은 공기업 부채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올해 말 국내 공공부문 부채비율은 70%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이다. 국제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 공기업 부채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S&P는 “공기업 부채가 GDP의 30%에 달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기업 CEO·임직원은 사익 챙기기에 바빴다. 국민이 주인인 곳간에서 돈만 빼먹는 게 아니라 일자리까지 도둑질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추악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중 108명이 임직원 친인척이다. 임직원 자녀, 형제·남매, 배우자, 부모, 심지어 며느리까지 자리를 꿰찼다. 이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려면 서류·필기·면접·인성·신체 등 5단계를 거쳐야 한다. 무기계약직은 서류·면접·신체검사만 통과하면 된다. 실력을 가늠할 필기시험 없이 주관적 판단으로 무기계약직을 뽑아놓고,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빈틈을 악용해 친인척을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여기에 노조까지 가세해 숟가락을 얹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강원랜드는 ‘씨족사회’를 방불케 한다. 조배숙 의원에 따르면 1988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랜드에 입사·재직 중인 직원 26%가 친인척 관계다. 직원 4명 중 한명은 친인척인 셈이다.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일반의 상식으론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지역 국회의원들이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리듯이 빨대를 꼽고 일자리를 약탈했으니 썩은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공사, 한국마사회 등에서도 채용 비리가 드러났다. 대다수 공기업에서 친인척 채용 잔치를 벌였을 개연성이 높다. ‘신이 내린 직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신도 탐내는 직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10%로 1999년 외환위기 이래 최악이다. 취업준비생 등 ‘실질적 실업자’를 포함하면 청년 4~5명 중 한 명은 백수 상태다. 자신이 철밥통인 것도 모자라 철밥통을 대물림하는 공기업 임직원의 탐욕은 이들을 절망케 한다. 급기야 대학가에 ‘현대판 음서제’를 규탄하는 대자보까지 나붙는 등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학생들은 화가 나는 걸 넘어 허탈하고 허무하다고 했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촛불혁명 두 돌을 맞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기업 임직원 아들·딸, 친인척으로 태어났으면 될 일을 이력서를 수 십장 써도 안 되는 암울한 현실은 전혀 바뀐 것 같지 않다.

국정조사든, 감사원 감사든 공기업 친인척 채용비리는 뿌리 뽑아야 한다. 관련자들은 끝까지 추적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 뒷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그것이 일자리를 약탈당한 젊은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는 일이다. 그것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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