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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천재 슈베르트는 베토벤 곁에 묻혔다
젊은 천재 슈베르트는 베토벤 곁에 묻혔다
  • 이석렬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 승인 2018.07.02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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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슈베르트는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장티푸스와 매독이라는 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예술을 사랑했고 직업 음악가로서의 성공을 꿈꿨으나 경제관념은 무딘 편이었고 운도 따라주지 않아 출세 길이 열리지 않았다.

음악가가 되기 위해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슈베르트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나중에 화해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들은 마음이 맞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아버지는 교사로서의 자격을 위해 음악을 가르친 것이었지 음악가가 되기를 바란 게 아니었다.

슈베르트는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노래 실력 덕분에 11살이 되어 궁정 신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빈 궁정교회의 합창단에도 들어갔다. 노래 실력을 뽐내는 독창회를 갖기도 했지만 1810년에는 변성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창단을 나와야 했다.

17살 때 슈베르트는 테레제 그로브라는 여성을 만나 첫사랑에 빠졌다. 사랑의 기쁨에 빠져 낭만적인 시간을 가졌지만 이 사랑은 실패로 끝났다. 테레제의 부모가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한 것이다. 테레제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미사곡을 노래한 소프라노 가수이기도 했다. 그녀는 후에 제빵사 요한 베르그만이라는 남성과 결혼해서 1남 3녀를 두게 된다.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슈베르트의 작곡 역량은 급속하게 발전했다.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다수의 가곡들을 만들어냈는데 가곡 ‘마왕’도 이 무렵에 만들어졌다. 작곡을 할 때는 친구들이 와서 아는 체를 해도 상대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1815년에는 무려 140개 이상의 가곡과 2개의 교향곡이 만들어졌다.

슈베르트의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즉흥적으로 악보에 악상을 적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단숨에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작품이 되곤 했던 것이다. 그는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렸고 무려 998개의 작품을 작곡했다. 그렇지만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고 경제적 사정은 풀리지 않아 삶의 종말이 비교적 일찍 찾아왔다. 1827년에는 그 유명한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우울한 서정으로 가득 찬 가곡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병에 걸린 슈베르트는 시골로 내려가 요양 치료를 했다.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갔는데, 생을 마감할 때의 편지는 우리에게 당시의 애달픈 마음을 전해준다. ‘잘 있었어? 나는 너무나도 아프다네. 고열과 어지러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네. 음식을 먹어도 즉시 토해버리고 계속해서 물만 마시고 있어! 지금은 마지막 모히칸이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네!’

1828년 11월 19일 슈베르트는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공무원이던 둘째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그는 생을 마감하면서 베토벤을 찾았다고 한다. 한 친구에 의하면 형 페르디난트가 슈베르트의 얼굴을 만지면서 심하게 오열했다고 한다. 작곡가의 바람대로 유해는 존경하던 베토벤 곁에 묻혔다. 그의 유해가 이처럼 베토벤의 곁에 묻히게 된 데에는 후원자이던 존 라이트너 백작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31살에 세상을 떠난 가곡의 왕은 지금도 베토벤의 곁에 누워있다.

 

글 | 이석렬

2017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2017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https://www.facebook.com/sungn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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