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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생활가전 여왕'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부활한 '생활가전 여왕'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18.06.29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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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조기졸업하고 재기 꿈...스탠드형 다리미 '듀오스팀'으로 승부수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이필재>

 

지난 3월 한경희생활과학이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를 조기졸업 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국내 1호 생활가전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위기를 맞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 해외 투자 실패로 인한 자금난 등이 원인이었다. 그 와중에도 스팀청소기 등 일부 제품은 꾸준히 이익을 냈다. 사실 핵심 경쟁력을 잃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엔 ‘듀오스팀’이라는 새 제품을 내놓았다. 무릎 꿇고 손 걸레질 하는 나라에 ‘서서’ 청소하는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이 회사가 개발한 ‘스탠드형’ 다리미다. 세탁소에서 쓰는 압력식 다리미를 가정용으로 개발했다. 기존 스탠드형 다리미와 달리 칼 주름을 잡을 수 있고 강력한 분사력으로 두꺼운 청바지도 쉽게 다릴 수 있다. 이 제품은 홈쇼핑에서 론칭한 날 추가 물량까지 완판 됐다.

매출 줄었으나 고객이 외면하진 않았다

스팀은 ‘한경희’가 전문성을 확보한 기술이자 이 회사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다. 이 회사는 상호·제품명과 CEO의 브랜드가 일치한다.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는 “이번 위기를 디딤돌로 이제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전 국민에게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기에 정말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가전 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애프터서비스 등에 대한 우려로 매출이 급감합니다. 그런데 ‘한경희 그 회사가 어렵다는데 내가 물건을 사줘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고객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녀는 “자금 운용의 편의를 위해 잘나가는 제품 위주로 공급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제품 공급이 원활치 못해 매출이 줄었을 뿐 고객들이 ‘한경희’를 외면한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한 비결로는 회사를 구조적으로 효율화한 것을 첫손에 꼽았다. 그녀는 “회사의 펀더멘털 자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소비자와 협력사들의 신뢰 덕도 컸습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은 잘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그 원인이 무엇보다 해당 회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죠.”

기업회생 과정에서 구조조정도 했다. 100여명이었던 인력은 절반 수준인 50명으로 줄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이익이 났다. 그녀는 “기업 회생 절차는 지속가능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재기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기 발로 떠난 사람들 말고, 어려웠던 회사 형편 탓에 타의로 떠난 사람들과는 언젠가 다시 같이 일하고 싶어요.”

그녀는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가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회사가 더 커지고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많이 배웠고, 회사의 성장에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경험을 했어요.”

매출 1000억, 성공한 벤처 여성 CEO의 위기

한 대표는 한때 여성 벤처 신화였다. 성공한 벤처 1세대 여성 CEO로 일찍이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등 글로벌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창업 전엔 국제올림픽위원회와 미국 기업에 근무했다. 그 후 교육부 5급 사무관을 거쳐 창업을 했다. 1999년 스팀청소기를 들고 혜성처럼 나타난 그녀는 가전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걸레질이 힘들었던 한 워킹맘이 대한민국 주부들을 걸레질에서 해방하겠다고 나서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창업 10여년 만에 ‘한경희’는 매출액 1000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간 시도한 사업 다각화가 지지부진했다. 화장품, 음식물 처리기, 전기 프라이팬 등의 판매가 저조했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느라 백화점 쪽과 홈쇼핑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도 자금난을 가중시켰다.

2014년 당시 유행했던 탄산수 제조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막대한 영업손실을 냈다. 이듬해 300억원 대 순손실을 기록하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386세대로, 사업을 하면서도 나름 이상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상주의만으로는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웠어요. 바르게 살려는 노력이 기업 탈취의 위험에 회사를 노출시킬 수도 있죠. 법정관리를 겪고서 이상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경영을 하는 그런 기업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는 “기업은 고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경희’는 경영난에도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신제품 듀오스팀은 옷 한 벌을 1~2분이면 다릴 수 있는 스팀 다리미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하다.
“회생에 들어간 기업이 새로운 도약을 하려면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 놓아야 합니다. 이번에 듀오스팀으로 압력식 다리미라는 새 시장을 창출했는데 고객 만족도가 높아요. 200만 대 이상 팔릴 거로 내다봅니다.”

그녀는 좋은 기업이란 “회사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기 인생에서 성공하는 직장”이라고 말했다.

“모름지기 기업은 구성원들이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고 가정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CEO가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구성원들에게 급여를 제대로 줄 수 있어야 하죠. 지속적인 성장이 없는 기업은 차츰 쇠락해 갈 수밖에 없어요. 기업 경영의 현장은 한 순간도 나태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되는 치열한 전장이에요.”

‘한경희’는 왜 한 우물을 파지 않나

‘한경희’는 전기 레인지, 의류 건조기 등의 신무기를 개발 중이다.

청소기 회사로서는 이런 다각화가 외도 아닐까? ‘한경희’는 왜 한 우물을 파지 않을까?

“한경희는 다이슨 같은 청소기 회사가 아닙니다. 주부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업이죠. 앞으로도 주부와 가정에 꼭 필요한 제품을 내놓을 겁니다. 주부의 머릿속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제품을 눈앞의 현실로 구현하는 게 저희 회사의 비전이자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한경희’가 청소기에 주력할 수 없는 건 진공청소기는 다이슨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고 스팀청소기는 글로벌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전제품은 휴대전화와 달리 개인이 소비의 주체가 아니다.

한 대표는 법정관리를 통해 이익이 나는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는 한 흑자도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레슨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규 사업에서 적자가 났지만 주력 제품은 여전히 잘나가 곧 좋아질 거라 생각한 게 패착이었습니다. 새 사업에 투자를 할 땐 사전에 투자액과 기한을 정해 그 한도를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새 사업이라고 절대 목숨 걸 듯 올인 하면 안 돼요. 정책적으로 정한 기한까지 이익이 안 나면 손절매 하듯이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그녀는 지난해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당시 고소인은 그녀가 회사채를 발행해 8억여 원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그 후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종결됐다. 법정관리는 이 과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기는 오히려 제가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외부와의 계약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문서가 아니면 CEO가 절대 사인을 하면 안 됩니다. 서류 작성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말은 사라지고 서류만 남아요.”

그녀는 위기 상황에서 ‘정의가 이긴다’는 신념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번도 회사를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직원들도 제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게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법제도 하에서는 사기를 당하고도 저처럼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어요. 아니 어쩌면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여봐란 듯이 경영을 잘해 회사가 잘되는 게 그 억울함을 푸는 길죠.”

회사 안정되면 ‘사기 백과사전’ 펴내고 싶다

그녀는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사기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사기 백과사전’을 펴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사기는 보통 신뢰하는 사람에게 당합니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대부분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죠. 경제적 피해 못지않게 정신적 피해가 커요. 심지어 엄청난 스트레스 탓에 암에 걸리거나 피해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런 피해를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당하지 않도록 돕고 싶어요. ‘사기 백과사전’을 낸다면 피해자뿐 아니라 사기꾼까지, 쌍방의 입장을 다 다루려 합니다.”
그녀는 앞으로 재고 부담이 큰 홈쇼핑보다 1 대 1 대면 판매 등 직접 유통과 렌털 사업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수도권에서 직판 유통을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렌털 시장은 지난 4~5년 급속도로 성장했고 어느 정도 안정화됐습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좋은 편이죠. 렌털 사업 비중을 장차 20% 이상으로 키울 겁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이 인가 받은 회생계획안엔 10년에 걸쳐 채무를 상환하게 돼 있다. 한 대표는 “착실히 갚아 나가겠지만 가급적 5년 안에 상환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경영 좌우명은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이다. 2004년 회사가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 이 경구를 접했다.

“회사가 잘나가면 올챙이 시절을 잊고서 초심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은 그럴 때 평상심을 유지하게 해주죠. ‘한경희’의 초심은 고객, 특히 여성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다짐이에요. 기업은 위기를 맞을수록 기술력과 고객 기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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